현실과 이상 사이
누구에게나 인생의 굴곡과 못다 이룬 꿈, 예상 밖의 일들이 있듯, 내 인생에도 그런 부분들이 있었고 극과 극의 요소들을 경험을 할 때면 내가 마치 신데렐라가 된 것 같은 기분이 들 때가 있었다.
중학교를 하위권으로 입학해서 전교 4등으로 졸업을 하면서 전설적인 존재라는 말을 들었지만 외고 시험을 낙방해 패배감에 젖어 살았다.고등학교에서 상위권이었지만 가고 싶었던 유학을 가지 못해 죽지 못해 공부만 하며 폐인처럼 살았다.
지방 고등학교에서 전국 3%안(수능성적)에 들어 서울로 대학을 간 손에 꼽힌 학생이었고, 학원이나 과외없이 공부한 유일한 학생이었을 것이다.
그렇게 최선을 다해 내가 가진 배경에서 빛을 내며 서울로 왔지만 잘 나고 잘 사는 수많은 사람들 앞에 초라함, 인생의 허무감, 박탈감, 우울증을 경험했다.
중학교 때부터 미국으로 유학을 가고 싶어 영어와 사랑에 빠져 미친듯이 공부를 하면서 영어를 마스터했고 대학 졸업 후, 영어로 밥벌이를 하게 되었다. 결국 유학을 못가게 되었지만 원어민과 대화를 하다보면 어김없이 영어를 어디서 이렇게 잘 배웠냐며, 미국에서 얼마나 살다왔는지, 심지어는 고향이 미국 어디인지 물어보곤 했다. 책을 씹어먹듯 거의 독학으로 배우다시피 했던, 수없이 꿈을 꾸며 분투했던 과정이 주마등처럼 스쳐지나가며 사람들의 칭찬과 대비가 된다.
하루 벌어 먹고 살기에 항상 바쁘신 부모님, 우울증으로 평생을 집에서만 지내는 언니, 이런 환경에서 나는 물질적, 정신적으로 척박한 토양에서 자랐지만, 그 안에서 내면의 갈급함과 배고픔이 나를 더 열심히, 처절히 살도록 내면의 힘을 주었던 것 같다. 마치 비가 오지 않는 땅에 식물이 뿌리를 더욱 깊이 내리는 것 처럼 말이다. 살아오면서 내 인생은 왜 이런가에 대한 끊임없는 질문을 하며 왔지만, 불혹의 나이 정도가 되니 인생을 보는 시야가 조금은 넓어져서 그런 요인들이 나를 붙잡아 주고 긍정적인 부분을 많이 길러주었음을 받아들이게 되는 것 같다. 물론 결핍도 있고 그것 또한 인정하고 받아들이고 있다.
사회 생활을 하면서, 외국 언론사에서 취재인턴으로 잠깐 일하며 매일 9시 뉴스에 나오는 정재계 현장들을 돌아다녀보고 각국정상들, 여러 활동을 하는 분들을 보며 세상의 고지를 구경할 수 있었다. 그리고 영어 교육계에 몸을 담으면서는 우리나라 중산층 이상의 부모들이 자녀들에게 가지는 영어에 대한 기준, 환상등을 보며 드라마 스카이 캐슬 비스무래한 그런 세계 또한 일부를 경험할 수 있었다. 또한 외국인들과 일을 하면서 영어 뿐만 아니라 서양 문화의 많은 것을 배울수 있었고 너무 행복한 시간이었다.
밖에서는 이렇게 살며, 집 안에서는 우울증인 언니와 처절히 몸부림을 치는 시간들이 있었다.
대학에서는 유럽언어를 전공했기에 나는 항상 영미권, 유럽에 관심이 많았고 결혼도 당연히 서양인이랑 할 거라고 생각을 했었다. 그런 내가 이 가난한 동남아에 와서 사업을 하고 있다니 참으로 인생은 알 수 없다.
이곳에서도 나의 신데렐라 증후군은 계속 되었다.
자기 이름도 못쓰는 그런 직원들을 데리고 일을 하면서, 매일 말을 안듣고 거짓말하고 훔쳐가는 모습들에 분노하다가 가끔씩 고급 호텔, 대형 몰, 슈퍼체인 담당자들, 법인장, 이 나라의 고위급 인물들을 만날 때 낯설지 않은 이 요상한 느낌이 스물스물 올라오곤 했다.
여기 온지, 부모님은 21년, 나는 7년이 되어 지금은 여러가지로 많은 부분이 안정이 되었지만, 여전히 매일 치열히 싸우고 이놈의 성질은 죽지 않아 갈 길이 멀어 보인다.
얼마전에 아는 현지인이 무슨 강연회가 있다고 초대를 했다. 미국에서 리더십으로 유명한 코치가 아시아 처음으로 이곳에 온다는 것이다. 이 분은 한국에서도 모르는 사람이 없을 정도로 유명한 분이다. 한국에서 코칭 관련 출판사에서 일을 하면서 이 분야의 동향은 어느 정도 들어왔지만 이 분이 한국을 방문했다는 이야기를 들어본 적이 없었다. 그런데 이 분이 여기에 온다고? 그것도 10만원에서 몇백만원의 참석비를 내고 사람들이 모인다는 것도 참 의아스러웠다. 나는 현지인 친구가 같이 할인을 받아 10만원에 해준단다.
나는 매일 생얼에 몸빼 바지, 헐렁티 차림에 김치 생산, 배달, 판매, 회계, 마트 진열, 프로모션, 재료구입 등에 관한 일들을 하나하나 체크하며 직원들과 전쟁을 치른다. 이런 내가 리더십 강연을 초대를 받으면 가야 하나 말아야 하나?
사실 매일의 삶에서 배우는 것들이 너무도 진기명기하고 귀해서 그것 만으로 충분하고 벅차다고 느낀다. 한편으로는 내가 그 곳을 가는 것이 사치가 아닐까 생각도 해보았다. 결국 여러가지를 고민하다가 이 친구의 초대를 받아들이는 것이 좋을 것 같아 수락을 했다.
드디어 강연회가 하루 앞으로 다가왔다.
'설마 내가 여길 가려는데 못갈만한 일이 생기진 않겠지?' 이런 생각이 문득 여러번 스쳤다.
아니나 다를까... 오후에 갑자기 냉장 창고 안에서 스파크가 튀는 것이다.
감전 사고가 있을 것 같아 전기를 껐다가 켰더니 집 전체 전기가 셧다운이 됐다.
기술자를 부르고 곧 아이들이 다 퇴근을 했다.
요즘 날씨가 너무 더워서 체감온도는 40도에 육박한다. 가만있어도 땀이 눈에 들어갈 정도로 줄줄 흐른다. 몇 명의 기술자가 오가며 어둑해지고 결국은 우여곡절 끝에 오늘은 안된다고 하여, 근처 냉장창고 업체에 연락을 해서 사용 허락을 맡았다.
시간이 지나며 김치는 푹푹 익어갈 생각에 내 마음도 같이 타들어갔다. 이 더위에 냉장 창고 안에 있는 모든 물건을 옮길 일이 심난하다. 남자 직원 셋에 최근 그만둔 직원까지 불렀다. 총 4명이 전화를 하자마자 오토바이를 타고 하나 둘 도착을 했다.
자칫 잘못하면 냉장 창고의 물건들을 버려야 할 수 도 있는 바상 위기 상황에서, 나는 직원들이 하나둘씩 문을 열고 들어오는 순간 내 귓가에 이런 노래가 들려왔다.
'어디선가~ 누구에게~ 무슨 일이 생기면~~ 짜짜짜짜 짜앙가 엄청난 기운이~~
틀림없이 틀림없이 생겨난다~ 지구는 작은 세계 우주를 누벼라~
씩씩하게 잘도 나른다~ 짱가! 짱가! 우리들의 짜~앙~가~~'
'메칸더! 메칸더! 메칸더V! 랄라랄라 랄라랄라 공격개시!
'메칸더! 메칸더! 메칸더V! 랄라랄라 랄라랄라 메칸더~
정의와 평화를 지키는 우리들의 믿음직한 메칸더!
지구를 노리는 악마의 그림자야 물러가거라
날아올라 무찔러라 메칸더의 용사들아
영광의 승리는 우리 것이다~~~
메칸더 원! 메칸더 투! 메칸더 쓰리~~~
메칸더 세 용사 단결하면 무적의 메칸더 V되어
원자력 에너지의 힘이 솟는다 용감히 싸워라~~ 메칸더~~ V~~
아이들도 심각성을 인지했는지 엄청난 속도로 한 카트에 20~50키로 되는 수십 개를 불끈 불끈 들어 뚝뚝이로 여러번 옮겼다. 내 이마에서 땀이 흘러 눈으로 들어가는 것을 어깨 소매로 닦고 있는데 아이들은 온 몸은 말할 것 없고 손목 윗부분이 흥건히 땀으로 젖어있는 모습을 보며 내 귓가에 다시 위의 두 노래가 맴돌았다.
신데렐라가 파티 전 날, 이런 상황보다 더 극적인 것을 겪었을까?
나는 내일 강연회를 못갈수도 있다는 생각을 하며 집으로 돌아와 못다한 일을 하고 내일 입을 정장을 세탁하고 새벽 2시에 잠이 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