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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즐거운 꿀벌 May 28. 2024

나를 치유해 준 엄마 밥

엄마 밥의 효능

출처 Pinterest

고등학교 이후 서울에서 객지 생활, 자취 생활을 하면서 엄마 밥을 먹지 못했다. 

덕분에 장을 이것 저것 봐다가 국을 끓이고 메인 요리를 하고 반찬을 이것 저것 만들어서 먹으면서 요리 실력도 늘었고 돌아보면 그 시간은 즐겁고 행복한 추억이다.

형편이 넉넉치 못했고 이런 저런 일들로 분주히 살다보니 자주 김밥을 사먹었다. 일주일에 몇 번을 제외하고 모든 끼니를 김밥으로 먹을 때도 많았다. 자주는 아니었지만 대형마트 시식 코너를 여러번 돌면서 끼니를 때운 적도 있었다. 신기하게도 김밥을 그렇게 먹어도 먹어도 질리지가 않았다. 스스로 참 징하다 생각할 즈음 어떤 일화를 접하고 이해가 되었다. 


미국에서 자수성가 하신 어떤 사업가가 전세계를 다니면서 비싸고 맛있는 것은 많이 먹어봤지만 평생 가장 맛있었던 것이 어릴때  미군 부대 앞에서 먹었던 꿀꿀이 죽이었단다. 쓰레기와 뒤섞인 꿀꿀이 죽과 김밥은 비할 바가 아니지만, 공통점이 있다면 배고픔이 베이스로 깔려 있다는 것이다. 그래서 인생은 공평하고 삶의 어려움과 고난이 가치가 있나보다.


대학교를 졸업할 때 즈음 부모님이 지금있는 이곳으로 오셨기에 나는 엄마밥을 오랫동안 잊고 지냈다. 어떤 직장에서는 너댓명 여직원들이 집에서 도시락을 싸와서 먹었다. 나는 항상 김밥을 사서 먹었는데 그 너댓명의 직원이 나에게는 세상의 표준이 되어 나만 엄마 밥을 먹지 못하는 서러운 신세같아 마음앓이를 했다. 엄마 밥에 뭐가 들어있길래 그 밥을 못먹었다고 내 마음까지 구멍이 났는지 모르겠다. 


한 번은, 대학생 때 어느 선생님 집에서 영어 새끼과외를 했는데, 시작하면서 선생님이 와서 밥을 먹어도 된다고 했다. 집 밥이 너무 그리웠던지 흡입하듯 두 그릇씩 먹었던 것이 지금도 기억이 난다. 두어 번을 그렇게 먹었는데 선생님이 여기 앞에 김밥집 있으니까 다음부터는 사드시라고 그러더라.ㅎㅎ 먹는 거 가지고 그러는게 제일 치사하다는 말을 그 때 좀 느꼈던 것 같다.


한 번은, 왕복 3시간 정도 걸려서 과외를 했는데, 자매 2명 과외가 끝나고 식사를 같이 했다. 매일 다른 반찬과 메뉴로 한 상을 차려서 주시는데, 나중에는 너무 멀어서 고민을 했지만 밥을 먹는 것 때문에 기쁜 마음으로 참고 즐겁게 일을 했던 적이 있었다. 밥은 나에게 이런 의미가 있었나 보다.

  

그렇게 엄마밥의 존재를 거의 잊고 20여년이 흘러 내가 이곳에 왔다. 


그때는 우리가 식당을 하고 있었기에 삼시 세끼를 엄마가 해 준 밥을 먹었다. 

오자마자 직원들 교육시키느랴 하루 하루 장사하느라 눈코뜰새 없이 보냈다. 식당을 하는 3년 동안 식당 근처를 한번도 산책을 못해봤을 정도다. 일을 하거나 쓰러져서 쉬거나 그게 다였다. 물론 내 게으름 때문이기도 하지만 어쨌든 그 때는 빠르게 돌아가는 쳇바퀴 속에서 넘어지지 않으려고 계속 속도를 맞추어 돌며 지냈었다. 


그렇게 정신없이 매일을 분노하며 가르치며 전쟁을 치르면서 나에게 가장 큰 힘을 주었던 것은 엄마가 해 준 밥이었다. 매일 수많은 문제로 씨름을 하면서 카운터에 앉아있으면 아이들이 밥을 가져온다. 소불고기, 순두부찌개, 김치찌개, 육계장, 곰탕, 삼계탕, 비빕밥, 돈가스, 오징어회무침, 비빔국수, 제육볶음, 삼겹살 등등... 


김밥이 주식이었는데 매 끼니를 바로 요리한 밥과 국, 반찬들을 먹으며 몇년을 마음으로 눈물을 흘리며 밥을 먹었던 것 같다. 그러면서 깨닫게 된 것은 그 눈물이 이전에 혼자 김밥을 오가면서 먹으며 마음으로 흘렸던 외로움과 서러움의 눈물을 씻어주고 있다는 것이다. 


또 해외에서 먹는 한식은 무엇을 먹어도 꿀 맛이 아닌가? 라면과 김치만 먹어도 엄~청 맛있다. 행복했던 추억을 반찬으로 먹어서 그런 것 같다.

해외라는 그리고 20여년이 지난, 시공간의 기막힌 세팅 안에서 나는 매일 엄마 밥을 먹으며 머리 끝부터 발끝까지 치유의 힘을 온 몸으로 경험하고 있다. 


엄마 밥을 먹으면서 심신으로 치유를 받은 것 외에 한 가지 영향을 준 것이 더 있는데, 그것은 직원들의 먹거리를 신경쓰는 것이다. 

우리 직원들은 대부분 18~20대 초반으로 시골에서 상경해 온 나와 비슷한 처지다. 아침 6시 반에 와서 배추를 자르고 나서 아침을 먹는다. 그리고 나서 야채 작업을 하고 배추를 씻고 포장 용기를 준비하고 점심을 먹는다. 그리고 나서 배추를 양념과 버무리고 포장을 하고 청소를 하고 집에 간다. 두 끼를 먹고 중간에 수박이나 망고, 닭튀김, 샌드위치 등 간식을 먹는다.


직원 식사를 위한 요리사가 있어서 매일 다른 메뉴로 영양가 있고 맛있게 요리를 하도록 하고 있다. 식사 때 아이들이 와서 밥을 너무 맛있게 먹는 모습을 보면 항상 가슴이 뭉클하거나 뿌듯하고 기분이 좋다. 김이 모락모락 나며 아이들이 둘러앉아 완전 몰입해서 너무 맛있게 먹는 표정을 보면, 나도 예전에 이렇게 먹었겠구나, 한참 성장기 때에 얼마나 맛있을까싶다. 밥을 냉면사발에 고봉으로 얹어서 먹는 아이들을 보면 엄지척을 해준다. 내가 밥 때문에 과외를 못끊은 것처럼 밥 때문에 우리 회사를 다니는 아이들도 분명 있다는 것을 나는 안다.


내가 가끔씩 아이들에게 내가 위에서 얘기했던 경험들을 이야기 해주면서 그렇기 때문에 너희들 먹는 것을 신경쓴다고 하니, 숙연하게 들으며 고마워하는 것 같다. 

같은 음식을 먹어도 그 음식이 나오게 된 배경, 내 의도와 마음을 전달하는 것은 너무 다르다는 것을 본다. 그래서 그동안 내가 겪은 모든 것이 다 자양분이 되었고 그 모든 시간들이 감사하다. 


또한 전세계적으로 한식이 엄청난 파급력으로 세계화가 되어 가는 이 시점에서 해외에서 김치와 한식을 팔면서 한식(=엄마 밥)의 힘과 저력을 안팎으로 알고 경험하는 이 일이 나에게 특별한 소명으로 다가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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