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즐거운 꿀벌 Jun 22. 2024

기준의 놀라운 힘

보물을 발견하다

7년 전, 이곳에 와서 부모님이 10여년을 운영하시던 식당에 합류했다. 자기 이름도 쓸 줄 모르는 현지인 직원들5~8명을 데리고 식당을 운영했다. 벙어리로 귀머거리로 지내며 손짓발짓하며 서바이벌 현지어를 배우며 지금까지 왔다. 


너무나 무식하고 매사에 반대로 일을 하며 말귀를 못알아듣고 실수 투성이인 직원들과 함께 일을 하면서 분노하고 이런 나 자신이 비참하게 느껴지는 수많은 순간들을 지나왔다. 


한 번은 내 나이 또래의 한국인 여자 손님이 현지인 직원 8명 정도를 데리고 와서 회식을 했다. 유창한 현지어로 대화하며 화기애애한 분위기 속에서 회식을 하는 모습을 보면서 내 스스로가 너무 비참하게 느껴졌다.

그 직원들은 다들 엘리트처럼 보였고 그 한국인 사장님은 나와 비슷한 나이였다. 내가 무엇이 부족해서, 내가 무엇을 잘못해서 이렇게 비슷한 조건 안에서 너무 다른 환경을 살아야 하는가. 그동안 내 전공인 '신세한탄'이 절로 나왔다. 


현지어로 대화를 하면서 다들 깔깔 웃으며 회식을 하던 모습이 나에게 선명하게 남아있다. 그리고 시간이 흘러 코로나 시점 즈음 우리는 식당을 접게 되었고 그동안 조금씩 팔던 김치를 현지화하여 이제는 자리를 잡아가고 있다. 


작년에 우리 직원들을 데리고 회식을 하려고 우리 김치를 납품하는 한국 식당으로 갔었다. 그 때 우리 직원은 약 스무명 정도 되었는데 몇 명이 일이 있어서 빠지고 열 댓 명이 갔었다. 식사를 마치고 계산을 하는데, 매니저님이 우리 직원들을 보더니, "직원들이 이렇게나 많아요? 와~ 무슨 회사인줄 알았네요." 그러는 것이다. 그래서 "네, 저희 김치 회사에요. 오늘 몇 명이 일이 있어서 못왔어요."라고 대답을 하고 나오는데 불현듯 위에 설명했던 장면이 떠오르며 소름이 돋으며 가슴이 찡했다. 


나에게는 절대 일어날 수 없는 일이라고 멀리서 구경만 했던 장면이, 아니 그 이상의 일이 어느 순간 나의 삶에 일어난 것을 알아차렸을 때 감동이 밀려왔다. 그동안 하루하루 전쟁을 치르며 하루살이처럼 살았는데 어느새 보니 많은 성장과 발전을 목도하니 감회가 새로웠다. 


그러나 마치 주식 차트가 장기적으로는 끊임없이 우상향해도 하루 또는 일주일 차트 안에서는 끊임없이 롤러코스터처럼 요동치듯, 지금의 내 삶도 그런것 같다.


매일 매일이 전쟁이다. 제조, 포장, 배달, 회계 등을 매일 목이 쉬도록 가르치지만 직원들은 말을 듣질 않는다. 말을 들어야 한다는 긴장감이나 경각심이 없어 보이는 것이 나를 더욱 열받게 한다. 그래서 매일 소리를 쳐대며 가르치며 이렇게까지 필사적으로 처절히 싸우는 나를 돌아보며 다시 다짐하기를 무한 반복하고 있다. 


특별히 올해 여러 직원들을 뽑고 내보내면서, 정신적 충격과 부담감, 스트레스가 많았고 그 와중에 사람을 다루는 아주 중요한 스킬들을 배우게 되었다. 


출처 Pinterst


그 중 하나가, 화를 내지 않고 기준을 세우고 그 기준을 따르는 것이다. 

식품을 다루고 있기 때문에 매 단계마다 위생과 표준을 따르는 것이 중요하다. 게다가 매일 날씨가 30~40도가 육박하는 더운 날씨에 김치를 폐기나 반품 없이 판매하기 위해서는 매일 전쟁을 치르는 것과 같다. 두세번 불러도 쳐다 보지도 않는 직원들 때문에 나는 훈련 교관처럼 말하고 행동을 한다. 정말 이러고 싶지 않다.


너무 지치고 자괴감이 들던 어느 날부터, 분명한 기준을 세우고 그 기준대로 집행해야 겠다고 마음을 먹었다. 하나씩 기준을 만들고, 공표를 하고, 그 기준을 지키지 않으면 월급을 조금씩 까기로 했다. 그리고 나서...


직원들은 예전처럼 말을 듣지 않고 계속 불량품이 나오고 서류에 실수가 있고 배달량이 다르고 생산 과정에서 오류가 있었다.

이 순간, 나는 대부분 월급을 까지 않고 화를 내며 이야기를 했다. 내가 몇번을 이야기를 했는데, 왜 또 실수를 했느냐고... 내가 이미 월급을 까겠다고 공표를 했지만 막상 월급을 까자니 내 자신이 치사한 것 같고 연민의 정으로 봐주고 넘어가려고 하니 화가 나고... 이런 악순환이 내 안에 계속 되었다. 하루 10번이상 실수가 나고 나는 잔소리를 했다. 그래서 너무 지치고 내 분노와 짜증은 숙성이 되어 갔다. 


그러나 큰 결단을 했다. 

그 기준을 따르기로. 그래서 직원별로 평가 리스트를 만들어서 장점과 단점, 실수와 대처방법을 그때 그때 기록을 하기 시작했다.


전체적으로 모든 과정과 영역별로 규칙과 방법을 알려준 다음, 개인적으로 실수를 하면, 다음부터 이렇게 하지 말라고, 같은 실수가 있을 경우 월급을 까겠다고 이야기를 하고 개별 리스트에 기록을 했다. 중요도와 실수의 강도를 분석해 페널티 액수를 정했다.

그리고 같은 실수가 반복이 되면 월급을 깠다. 몇 명을 그렇게 했다. 어떤 직원은 너댓번을 까였다. 그래도 갈등하지 않고 기준을 따랐다. 계속 월급을 깎으면서 내 마음이 차분해졌다. 신기하게도 분도가 줄어들고 있다. 게다가 직원들도 감정적이 아닌 이성적으로 받아들이고 개선이 되는 모습에 흠찟 놀랐다. 이런 효과가 있었다니...


어떻게 할까 고민하며 이렇게 해보고 저렇게 해보며 전전긍긍했던 순간들, 분노하며 소리치며 매일 가르치던 수많은 순간들, 이런 나를 자책하며 후회하고 다시 일어서는 순간들이 마치 압축파일처럼 작아지는 마법을 경험했다. 이것이 삶의 기준을 세우고 따른 결과이다.


이렇게 하면서 직원들에게 채찍만이 아닌 당근도 필요하다는 것을 알게 되었고, 복지 조건을 개선해서 여러 혜택들을 주었다. +와 -, 두 방향으로 기준을 세워서 동기부여와 긴장감을 함께 주기 위함이다. 


"기준"의 힘을 몸소 체험하니 마치 오랜 보물섬 탐험 끝에 보물 상자를 발견한 심정이다. 비록 작은 규모지만 사업체를 운영하며 수많은 분야를 감당하고 관리를 하는 입장이어서 배울수 있는 특권이라 생각한다. 


살아가면서 수많은 어려움을 경험한다. 

어려움은 해답을 발견하도록 안내해주며 해답을 발견했을 때의 기쁨과 즐거움은 또 다른 단계를 넘어갈 힘을 준다. 어려움 때문에 스트레스로 삶이 망가질 수도 있지만 그 어려움으로 더 분투하고 발전하고 더 크고 놀라운 것들을 경험할 수도 있다. 그것은 오롯이 나의 결정에 달린 것이다. 


삶이 이토록 공평하고 아름답고 즐거운 것임을 이번에 '기준'을 통해 깨닫게 되었다. 앞으로 계속 기준을 세우고 실행하는 것에 초점을 맞춰 회사 전반적인 시스템을 정비하려고 한다.  

이전 28화 사장과 직원 사이에도 밀땅이 필요한가
brunch book
$magazine.title

현재 글은 이 브런치북에
소속되어 있습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