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그때의 나는 알지 못했다

왜 그리 자주 아픈지, 왜 그리 자주 울음을 터트리는지

by 유미작가

그렇게 오랫동안 머무르게 될지 몰랐다. 그녀가 아메리카 원주민에 관한 박사 논문 과제를 위해 미국 남서부의 나바호족 인디언 보호구역을 찾았을 때만 해도 말이다. 논문을 위한 자료 조사가 끝나고 떠나는 날 그녀는 1년 동안 자신을 손님이자 식구로 받아주었던 인디언 가정의 식구들과 작별 인사를 나눴다. 할머니는 그녀를 따스한 눈길로 바라보시며 서툰 영어로 이렇게 말씀하셨다.

"I like me best when I'm with you."

책 《좋은지 나쁜지 누가 아는가》에 소개된 이 일화 뒤에 류시화 작가는 우리가 누군가를 좋아하고 그 사람과 함께 있고 싶어지는 이유는 단순히 그 사람이 좋아서만이 아니라 그 사람과 함께 있을 때 나 자신이 좋아지고 가장 나다워지기 때문이라고 전했다.



여러 해를 돌고 돌아 그런 사람을 만났다. 그는 재촉하거나 서두르는 법이 없었고, 덕분에 느리게 서로를 알아갔다. 그와 함께 있을 때면 나는 꾸미고 포장하지 않아도 나 자체로 사랑받을 자격이 충분하다는 느낌을 받았다. 덕분에 어색하지 않고 모든 게 자연스러웠다. 처음에는 긴가민가했지만 점점 그와 함께 있는 내가 좋았고, 그래서 그가 더 좋아졌다. 배우자 기도의 문장처럼 사랑받고 자라 마음이 넉넉한 사람이었다. 이 사람과 함께라면 모두가 치기 어린 생각이라 비웃던 영원한 해피엔딩을 어쩌면 이룰 수 있지 않을까 싶었다.



‘신부에게 우정이 비처럼 쏟아진다’라는 뜻을 가진 브라이덜 샤워의 기원은 16세기 유럽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결혼을 올릴 형편이 되지 못하는 신부를 위해 신부의 친구들이 결혼 자금을 모아 선물한 것이 그 유래로 알려졌다. 그러나 영어 공부를 핑계로 <프렌즈>나 <섹스 앤 더 시티> 같은 미국 드라마를 보고 자란 우리에게는 드라마 속 화려한 파티 장면이 더 익숙했다. 친구들이 한창 결혼하던 그때 어설프게 드라마 속 장면을 따라 파티를 준비했던 우리가 국내 브라이덜 샤워 1세대쯤 되었다. 친구들은 결혼이 가장 늦었던 나를 위해서도 브라이덜 샤워를 준비해주겠다고 날짜를 정했다. 이건 우리 사이의 일종의 품앗이였고, 드디어 내 차례가 된 것이다.



친구들이 알려준 시간에 맞춰 호텔에 도착했다. 소박한 장소였다. 벨을 누르자 어수선한 소리가 방문 너머로 들려왔다. 문이 열리고 창가에 걸린 현수막이 먼저 눈에 들어왔다. 그 아래 테이블에 케이크와 와인잔 그리고 선물 등이 예쁘게 진열되어 있었다. 그리고 시선을 왼쪽으로 돌리자 침대 위에 쪼르록 앉아 호기심 어린 눈으로 나를 빤히 쳐다보고 있는 아이들이 보였다. 모두 엄마가 된 친구들이 파티를 위해 아이들을 어디 맡기고 올 수는 없는 노릇이니 당연했다. 드라마 속 장면과 많이 다르긴 했지만, 최선을 다해준 친구들의 정성이 고마웠다. 이렇게라도 와준 게 어딘가? 아이들아~ 제발 울지만 말아 주라. 나의 이런 바람은 10분을 채 넘기지 못하고 깨져버렸다.



그때의 나는 알지 못했다. 아이들은 왜 그리 자주 아픈지, 왜 무슨 특별한 일이 있는 날이면 더 심하게 아픈지, 왜 그리 자주 울음을 터트리는지 등등 그 이유를 몰라 답답했다. 아이들은 원래 다 그렇다는 친구들의 설명은 나를 납득시키지 못했고, 나는 그냥 어려운 문제를 대하듯 답을 외워버렸다. 물론 지금도 머리로만 이해할 뿐이다. 오은영 박사가 나오는 여러 프로를 통해 지식을 입력한 덕분이다. 어느 날 반려견을 키우는 싱글 친구가 육아에 지친 또 다른 친구와 공감하며 대화를 나누는 모습에 소외감을 느낀 적이 있다. 반려견조차 키워본 적 없고 조카를 돌봐본 경험도 없으니 이해력이 부족하다고 자책할 일은 아니었지만 어쩐지 그때는 내가 세상에 뒤처지고 있다는 기분이었다. 그것도 꽤 심하게.



날씨도 장소도 드레스도 메이크업도 모든 게 만족스러웠던 그 날도 그랬다. 왜 친구들은 오겠다던 시간보다 모두 늦는 건지, 왜 갑자기 오지 못하는 상황이 벌어지는건지 이해할 수 없었다. 늘 제일 먼저 결혼식장에 도착해 폐백이 끝날 때까지 기다리며 사진을 찍어주던 나였다. 친구의 가장 아름다운 모습과 찰나의 반짝이는 순간을 모두 담아주려 애썼다. 내가 가장 예쁜 날에도 그래 주길 바랐다. 너무 큰 기대였나? 사진을 찍어주기는 커녕 함께 사진 한 장을 찍기도 어려웠다. 신혼집에 놀러 온 친구는 결혼 앨범을 넘기며 예쁘다는 감탄을 쏟아내다 단체 사진에 자신이 빠진 게 아쉬운 눈치였다. 민폐가 될까 봐 신부대기실에도 오지 못하고 복도를 서성이며 우는 아이를 달랬다는 그날의 고충을 나는 그제야 들었다.



이해의 깊이는 딱 경험의 넓이만큼이지 않을까? 소설 《피프티 피플》속 유라는 길을 걷다 유난히 불행을 모르는 듯 깨끗한 웃음을 띤 얼굴을 보면 공격하고 싶은 기분이 된다고 했다. 왜 당신들은 불행을 모르느냐고 묻고 싶어진다고 했다. 그 시절의 나는 유라가 적대감을 느꼈던 깨끗한 웃음을 띤 사람 중 하나였다. 불행까지는 아니어도 고통, 고난, 시련, 아픔, 슬픔, 그리고 삶의 고비마다 놓인 숱한 어려움 까지 제대로 경험하지 못했고, 경험하지 못한 만큼 이해하지 못했다. 앞으로 내게 어떤 일이 일어날지 모른 채 그날의 하늘처럼 맑기만 했다. 결혼식 다음 날 공항버스 유리창에 부딪히는 세찬 가을비는 겨울을 재촉하는 듯 스산했다.

keywor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