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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유미작가 Jan 20. 2022

크리스마스 파티가 끝나고 찾아온 아이

Joy 때문에, Joy 덕분에

웰컴 푸드는 핫도그와 홈메이드 애플에이드, 샐러드는 색감이 예쁜 카프레제와 훈제연어 말이 그리고 개운한 무쌈말이 , 메인은 새우감바스와 라자냐 그리고 찹스테이크, 크리스마스 파티라면 빠질 수 없는 칠면조 구이 대신 전기구이 통닭, 맛있는 음식에 곁들일 품질 좋은 레드와인까지 모든 준비가 끝났다. 부엌과 식탁을 수도 없이 오가며 바쁜 오후를 보냈다. 초인종이 울렸다. 문을 열기 전부터 왁자지껄한 소리가 현관문 너머로 들렸다. 성실하게 빨간색 옷을 챙겨 입은 두 부부의 손에는 마니또 선물이 한 아름 들려있었다. 엄마 아빠를 따라온 아이들이 빨리 친숙해지길 바라는 마음에 따뜻한 핫도그부터 부지런히 내왔다. 엄마 손에 이끌려 코트를 벗어놓고 겨자소스와 케첩이 어우러진 소시지를 한 입 베어 물더니 쭈뼛쭈뼛하며 굳어있던 표정이 한결 부드러워진 눈치였다.


창밖의 공기는 차갑고 거실의 조명은 따뜻했다. 와인은 맥주와 위스키로 이어졌다. 말과 말 사이 틈이 빌 때마다종류별로 늘어놓은 치즈와 견과류를 번갈아가며 입에 넣어 우물거렸다. 문장은 이쪽에서 저쪽으로 다시 저쪽에서 이쪽으로 빠르고 느리게 옮겨갔다. 크리스마스의 밤은 끝나지 않을 듯 흐르고 또 흘렀다. 모두가 한껏 취했을즘 쪽지가 담긴 통을 높게 들어 올렸다.


"자 이제 선물 추첨할까? 이건 왕 게임과 마니또의 결합 버전이야. 다들 만원 이하 선물 준비했지?"
"역시 유미다. 이건 또 뭐니?"
"보면 알아~ 두구두구두구 첫 번째 당첨자는 C!! C가 왕이라면 어떤 행동을 시키고 싶어?"
"어머 나야? 글쎄 뭘 시키지? 맥주 원샷이나 할까? 아니다. 나는 이 사람이 앞사람에게 수고했다고 말하고 안아줬으면 좋겠어"
"뭐야~ 이 오글거리는 지시는.. 좋아, 그럼 이제 당첨자를 뽑아볼까? 쪽지에 적힌 이름에게 선물을 주면서 시키면 돼"
"내가 뽑은 사람은 바로바로 D!! D야 내가 준비한 선물이야. 근데 D 앞에 앉은 사람이 하필 나였네. 어서 내게 수고했다고 말해죠."


술이 얼큰하게 취한 E는 왕놀이라면 러브샷이나 키스가 나와줘야 한다고 외쳐댔다. 그의 손에 뽑힌 쪽지에는 H의 이름이 쓰여있었다. 남편이었다. 그는 못 이기는척 나를 일으켜 세웠다. 결혼식 이후 사람들 앞에서 하는 두 번째 입맞춤이었다. 모두가 불에 녹은 마시멜로처럼 말랑하고 달달한 밤이었다. 이대로 헤어지기엔 아쉬운 눈치였다. 너 나 할 것 없이 '이 멤버 Remember'를 외쳐댔다. 크리스마스 파티는 겨울 휴가 작당모의를 끝으로 막을 내렸다.


해가 바뀌어도 겨울바람은 변함없이 매서웠다. 단톡방 알람이 쉴 새 없이 울려댔다. 이번엔 호텔 예약 소식이었다. 발 빠른 친구 덕분에 항공권 예약은 물론 호텔 예약까지 일사천리였다. 기대로 들떠있는 분위기를 깨는 건 아닌지 조심스러웠다. 그러나 더 늦기 전에 얘기해야만 했다. 썼다 지우다를 반복하다 톡을 보냈다. "있잖아, 나 여행 못 갈 것 같아. 임신이래"


기쁘고 축하할 일이었지만 아쉬운 마음도 들었다. 쿵작이 잘 맞는 이들과의 부부 동반 여행이 얼마나 재미있을지 가보지 않아도 알 만했다. 먹고 마시고 춤추고 노래할 생각에 마냥 부풀던 마음이 펑 하고 터졌다. 조금 더 일찍 와주었더라면, 조금만 더 늦게 와주었더라면 하는 무용한 가정과 푸념을 계속 늘어놓았다. 실망이 잦아들고 궁금해졌다. 대체 언제 임신이 된 거지? 역시 크리스마스인가? 기쁨이 차고 넘쳤던 그날이었다면 이 아이는 Joy가 되어야겠네.



영화 <인사이드 아웃>에서 11살 소녀 라일리의 머릿속 감정 컨트롤 본부의 대장을 맡고 있는 기쁨이를 떠올렸다. 슬픔이도 소심이도 까칠이도 버럭이도 아닌 기쁨만을 느끼고 전하는 아이가 되기를 바랐다. Joy의 소식을 양가 부모님께도 전했다. 느껴지지도 않는 이 작은 아이가 그분들께 주는 기쁨은 어마어마했다. 나의 바람은 벌써 이루어진 것만 같았다. Joy 때문에 친구들과의 마닐라 여행은 가지 못했지만, Joy 덕분에 엄마 아빠가 되는 인생 여행을 시작할 수 있었다. "Joy는 왠지 밝고 명랑한 딸일 것 같아. 영화에서 기쁨이는 여자였거든. 게다가 라일리도 소녀였잖아. 분명 딸일 거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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