약국에서 임신 테스트기를 여러 개 구매해 몇 번이고 다시 검사해보았다. 혹시나, 설마 하는 마음은 결과가 나올 때마다 힘없이 꺾였다. 결과는 바뀌지 않았다. 일 욕심도 많고 해 보고 싶은 것도 많았다. 결혼하자마자 아이를 갖고 싶어 하는 남편에게 2년 뒤를 약속했었다. 그런데 두 줄이라니. 믿을 수 없었다. 임신을 인정해야만 했다. 그 어느 때보다 기뻐해야 할 순간이라는 것을 머리로는 알았지만, 마냥 그럴 수가 없었다. 그녀는 세상을 잃은 듯 허망한 표정으로 읊조렸다. "인생에 완벽한 타이밍은 없다. 지금이 아니었다면 얼마나 좋았을까?"
출처: 카카오TV <며느라기2...ing>
드라마 <며느라기2...ing>에서 사린은 임신을 확인하고 기쁨보다 혼란과 막막함을 느꼈다. 그녀의 넋 나간듯한 표정이 곧 내 모습이었다. 회사에서 주재원 발령을 앞두고 있었다. 임신이라니 머리가 복잡해졌다. 파견 지역에 산부인과 의료수준은 어떨지, 출산 도우미나 육아도우미 고용은 수월할지, 부모님께 도움을 청해야 할지, 부모님을 자신들의 삶을 포기한 채 의사소통이 어려운 타지에서 지내시게 하는게 맞을지, 아이는 두고 나 혼자만 파견을 가야 할지, 남편의 회사는 어찌할지, 주재원 기간 중 출산휴가를 갔던 전례가 있었는지, 육아휴직도 쓸 수 있을지, 파견 전에 회사에 미리 얘기해야 할지 등등 두서없이 떠오르는 질문들에 무엇 하나 제대로 답을 할 수가 없었다. 그제야 어학연수 파견 설명회에서 임신하게 되면 즉시 복귀를 하게 되는지 질문했던 한 기혼 여직원의 마음이 조금은 이해되었다. 그때의 나는 미혼이었고 참 쓸데없는 질문이라 생각했었다. 파견이 정해졌는데 부부관계를 조심하면 될 일이 아닌가 싶었다. 그들 부부에게 어떤 사정이 있을지도 모르면서 쉽게 생각했었다.
결혼이 점점 늦어지면서 임신과 출산도 함께 늦어지고 있다. 30대 중반에 결혼한 나도 당시는 꽤 늦은 편이었는데 지금은 30대 후반이 되어도 결혼 생각이 없는 후배들이 여럿이다. 여성이 대학이나 대학원을 졸업하고 20대 중반에 일을 시작해 10년쯤 흐르면 회사에서 자신의 포지션이 조금은 분명해진다. 더 높은 성취를 위해 한창 달려야 할 그때 결혼과 임신, 출산은 그녀들에게만 적용되는 핸디캡이 된다. 그동안 그래왔던 것처럼 동일한 조건에서 남자 동료들과 경쟁할 수 없다는 뜻이기도 하다. 망설여지는 게 당연하다. 보기 드물게 가정적인 남편과 개방적인 시부모님을 만난다 해도 핸디캡이 제로가 되지는 않는다. 임신과 출산 기간만큼의 경력 단절이 누군가에게는 극복할 수 없는 큰 허들이 될 수도 있다. 실제로 많은 여성이 그 기간을 극복하지 못하고 재취업에 실패하거나 이전보다 조건이 좋지 않은 일자리를 가지게 되는 경우가 많다. 그에 비하면 적어도 복귀가 보장되는 나는 운이 좋은 경우였다. 업무 공백 기간만큼의 실력 후퇴는 배부른 투정처럼 들릴지도 몰랐다.
내 인생에서 Joy의 등장이 가져다준 이득과 손실을 자꾸만 저울질하게 되었다. 계획했던 여행 취소는 아주 작은 에피소드에 불과 했다. 지인들의 축하를 받을 때는 기뻤다가 회사에 출근하면 거추장스러운 짐처럼 느껴졌다. 급하게 회의에 참석하러 뛰어가다 아차차 싶어 속도를 늦출 때도 많았다. 야근도 마음대로 할 수 없으니 처리하지 못한 일을 곱씹으며 무거운 마음으로 퇴근해야 했다. 예전 같으면 당연히 참석해야 했을 고객이나 협력 부서와의 저녁 식사 자리에도 후배를 대신 보내야 했다. 조직에서 제 역할을 해내지 못하고 있다는 아쉬움이 점점 커졌다. 그만큼 내 위치가 흔들리고 영역이 작아지는 기분도 들었다. 새로운 프로젝트가 논의될 때면 눈치가 보이기도 했다. 물리적 제약으로 기대만큼 해낼 수 없을까 봐 선뜻 하겠다고 나설 수도 없었다. 누군가에게는 배부른 투정 같겠지만 일 욕심도 많고 책임감이 높았던 내게는 입사 후 처음 겪는 고난이자 시련이었다. 비교할 수도 없는 엄청난 일들이 닥칠 줄도 모르고 그렇게 투덜거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