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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유미작가 May 17. 2022

3번의 만삭 촬영, 착각의 빙하를 깨부수며 얻은 깨달음

태교일기 [35w1d] 딱풀이에게 보내는 20번째 편지 (D-24)


"이제 만삭 사진은 다 찍은 거지?"​

"응~ 아마도 그럴걸?"​


결혼을 준비하던 그때 틀에 박힌 뻔한 사진이 싫다며 스튜디오 촬영도 마다했던 엄마가 이번에는 왜 이리 사진 욕심이 나던지. 딱풀이 네가 엄마 뱃속에 있는 모습이 너의 성장 스토리의 시작이 되어야 한다는 욕심, 너에게 그 모습을 가장 예쁘게 보여주고 싶다는 욕심. 이런 욕심에 각기 다른 콘셉트의 만삭 촬영을 무려 3회에 걸쳐서 진행했어. 그러니 아빠가 이제 진짜 끝이냐고 물어볼 만도 하지?


처음은 인스타에서 우연히 알게 된 스튜디오 A에서 진행하는 이벤트였고, 두 번째는 산부인과와 연계된 스튜디오 B에서 제공하는 무료 만삭 촬영이었어. 살다 보면 저절로 깨닫게 되는 것들이 있는데, 그중 하나가 이유 없는 혜택은 흔치 않다는 거야. 만삭 촬영을 괜히 무료로 찍어줄 리가 없겠지? 그럼 왜? 백만 원이 훌쩍 넘기도 하는 아이의 성장앨범 계약을 위한 일종의 미끼상품이라고나 해야 할까? 그러나 엄마와 아빠는 자신 있었어. 그 어떤 호객행위에도 넘어가지 않을 자신이.


뭐든 처음은 기대가 큰 법이야. 기대가 커질수록 걱정도 많아지고. 스튜디오에서 빌려주는 의상이 마음에 들지 않으면 어쩌지? 작은 스튜디오라 헤어와 메이크업 서비스 제공이 안된다는데 손재주 없는 내가 직접 해도 괜찮을까? 미용실을 못 간 지 오래인데 머리 손질부터 해야 하나? 딱풀이 아빠 의상은 어쩌지? 이런 고민이 근무 중에도 불쑥, 책을 읽다가도 불쑥, 자려고 누웠다가도 불쑥불쑥 떠올랐어. 수시로 만삭 촬영용 원피스를 검색했고, 촬영 전 주말에는 아빠 옷을 사러 쇼핑도 다녀왔어.


걱정과 기대를 모두 안고 찾은 A 스튜디오는 따뜻함이 느껴지는 공간이었어. 친절한 작가님은 엄마 아빠가 웨딩사진 대신 북촌에서 데이트 중 찍었던 커플 사진을 재현하고 싶다는 부탁을 흔쾌히 수용해주셨어. 기분 좋게 촬영을 마치고 한 숨 고르고 나니 원본 사진으로 만든 동영상을 보여주셨어. 앗, 그런데 사진 속 저 후덕한 여자는 누구지? 재택근무만 하다 보니 엄마의 몸이 그렇게 거대해졌는지 미처 인지하지 못했었나 봐. 첫 촬영의 소감은 낯섦과 충격 그 자체였어. 이 상황에서 원본 증정이라는 유혹이 먹힐 리가 없으니 당연히 성장앨범 권유도 단칼에 거절할 수 있었어.


두 번째 촬영을 했던 B 스튜디오는 만삭촬영과 성장앨범으로 업계에서 손꼽히는 곳이었어. 규모가 클수록 정해진 배경과 포즈에 얼굴만 달라지는 사진일 테니, 틀에 박힌 사진이 싫어서 웨딩 스튜디오 촬영도 마다했던 엄마가 매력을 느끼지 못하는 것은 당연했어. 유일하게 마음에 들었던 점은 헤어와 메이크업이 서비스로 포함되어 고민이 줄었다는 것이랄까? 기대 없이 B 스튜디오 본점에 도착하니 과연 소문대로 규모가 어마어마했어. 으리으리한 하드웨어뿐만 아니라 예약부터 최종 상담까지 각 단계별 매끄러운 진행 등 소프트웨어까지 완벽했어. 이쪽 업계에서 대기업으로 통한다더니 역시 다르다며 인정할 수밖에 없었어.


무료 촬영이었지만 제공되는 내용만큼은 무료 이벤트답지 않았어. B 스튜디오에서는 엄마가 최대한 아름답게 보일 수 있도록 헤어와 메이크업을 서비스로 제공했고, 선택한 테마에 맞는 의상과 액세서리까지 모두 적절하게 추천해주었어. 또 하나, 사전 설문으로 가장 신경 쓰이는 신체 부위에 대한 답을 받더니 촬영 후 보정팀에서 그 부분만 빠르게 작업 후 영상으로 제작해 보여주었어. 그러니 만족도가 높아질 수밖에. 평소보다 살도 찌고 붓기도 한 임산부라면 대부분 자신의 실제 모습과 보이고픈 모습이 다를 수밖에 없어. 이런 소비자의 심리를 잘 꿰뚫어 보았다고나 할까? 그 어떤 호객행위에도 넘어가지 않겠다던 호언장담은 어디 가고 우리는 어느새 딱풀이 네가 태어난 후 진행될 성장앨범을 결재하고 있었어.


B 스튜디오에서의 촬영 만족도가 이렇게 높을 줄 모르고 예약해두었던 세 번째 스튜디오 C는 셀프로 촬영하는 곳이었어. 전면에 세워진 모니터를 통해 우리의 포즈와 표정이 얼마나 어색한지 미리 체크하면서 촬영하는 게 이곳의 가장 큰 장점이었어. A나 B 스튜디오에서 그랬던 것처럼 보통은 사진작가님의 '좋아요'같은 피드백에만 의존하게 되거든. 그럼, 분명 좋다고 하셨는데 결과물에는 왜 썩소만 가득할까 좌절하기 마련이지. 그러나 C 스튜디오에서는 우리의 모습을 직접 확인하며 촬영을 이어갈 수 있으니 로봇처럼 어색했던 네 아빠의 자연스러운 웃음도 포착할 수 있었어.  


B와 C 스튜디오는 비슷한 시기에 사진 파일을 보내주었어. 가장 만족스러웠던 사진과 가장 우리다웠던 사진을 번갈아 보며 엄마는 보여주고 싶은 모습과 진짜 자신의 모습 사이에서 흔들리는 이들의 욕망을 느꼈어. 글을 쓰기 시작하면서 진짜 내 모습과 대면하기를 두려워하지 말자고 다짐하고 또 다짐했는데, 막상 후덕해진 내 모습을 직면하지 못하고 회피해버렸어. 지금 와서 생각해보니 A 스튜디오가 실력이 부족했던 게 아니라 '첫 번째'라는 순서의 불이익을 본 게 아닌가 싶어. 편견과 고정관념의 빙하를 깨부수고 나아가야 하니 처음은 어려울 수밖에. 만삭이 되어도 팔다리는 가늘고 배말 볼록하게 나온 연예인들의 모습이 내 모습일 거라는 착각의 빙하를 와장창 깨 주었던 A 스튜디오에 외려 고마워야 할 것 같지?


아이들은 있는 그대로의 자신의 모습으로도 귀여움과 사랑을 받는 존재야. 이 세상 모든 아이들이 그렇듯 딱풀이 너도 그럴 거야. 네가 웃으면 웃는 대로 또 울면 우는 대로 우린 너를 사랑할 수밖에 없겠지. 그러나 나이가 들수록 사람들은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여러 가면을 쓰게 된단다. 종국에는 가면을 쓴 모습과 가면 속 진짜 모습을 구분하지 못하는 지경에 이르기도 하지. 네가 사회적 가면을 쓰게 될 수밖에 없는 상황이 오더라도 진짜 자신의 모습을 꼭 기억하기를, 그리고 그 모습을 용감하게 대면하고 사랑할 수 있기를 엄마는 간절히 바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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