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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유미작가 May 14. 2022

임산부 재택근무의 딜레마, 삼시세끼에 대한 고찰

태교일기 [34w5d] 딱풀이에게 보내는 19번째 편지 (D-27)


덕분이라는 표현이 맞을지 모르겠지만, 가라앉지 않는 들불처럼 끈질기게 이어진 코로나라는 전염병의 유행은 너를 품은 엄마에게 괜찮은 기회이기도 했어. 왜냐면 덕분에 임신기간 중 대부분을 회사에 출근하지 않고 집에서 일할 수 있었거든. 확진자 수가 몇만 명 몇십만 명으로 늘어갈수록 조심스럽고 답답함도 커졌지만, 역설적으로 그렇게 집에만 있었기에 너를 잘 지켜낼 수 있었던 게 아닐까 싶어.


출처: Unsplash


재택근무의 장점은 무엇일까? 집에서 회사까지 이동에 걸리는 시간을 아낄 수 있다는 게 가장 큰 장점 아닐까? 엄마 같은 경우 출근 준비에 걸리는 시간과 출퇴근에 소요되는 시간을 모두 더하면 하루에 2시간 가까운 시간을 아낄 수 있었어. 물론 예전에도 출퇴근 버스에서 책을 읽거나 글을 쓰기도 했지만, 흔들리는 버스가 아니라 소파에 기대어 따뜻한 차를 마시며 읽는 독서의 질을 어찌 비교하겠니.

좀 피곤한 날에는 달콤한 늦잠을 청할 수도 있었어. 아마 모든 직장인들이 쾌재를 부를 일이겠지? 직장인에게 가장 큰 고통 중 하나는 새벽 알람 소리에 눈을 뜨는 일이거든. 게다가 편안한 실내복 차림으로 일해도 누구도 신경 쓰는 사람이 없으니 얼마나 자유롭던지. 이건 배가 불러올수록 더 고마운 일이었어. 심지어 어떤 날은 잠옷 차림 그대로 일을 시작한 적도 있었어.

임신을 하면 졸음이 많아지고 오래 앉아있으면 다리가 붓고 허리가 아프기도 한데, 점심시간을 이용해 누워있거나 잠시 낮잠을 잘 수도 있어서 고마웠어. 회사에도 임산부를 위한 휴식 공간이 있긴 하지만 내 집만큼 편한 곳이 또 어디 있겠니?

불필요한 회의에 참석하지 않을 수 있다는 것도 중요한 장점이었어. 물론 꼭 필요한 회의는 온라인으로 진행되기도 했지만, 오프라인으로 진행할 때에 비해 회의를 이어가기가 수월하지 않으니 가급적 회의를 잡지 않게 되었던 것 같아. 엄마 같은 경우는 부서원 전체가 재택근무를 하는 건 아니어서 엄마가 빠진만큼 출근하는 직원들의 회의 참석 부담은 조금 늘었을 거야. 그 부분은 동료들에게 고맙고 미안한 점이기도 해.

물론 재택근무라고 마냥 좋기만 한 건 아니었어. 우선 사외 근무 시스템이 불안정하고 느리다 보니 일을 하다 답답할 때가 꽤 많았어. 갑자기 튕겨서 한가득 쓴 메일이 날아가기도 하고, 접속이 원활하지 않은 사이트도 많았고. 사무실 노트북에 정리해둔 기존 업무 이력을 확인할 수 없으니 맨땅에 헤딩하듯 처음부터 다시 시작해야 하는 경우도 있었지.

무엇보다 부담스러웠던 부분은 삼시세끼를 챙겨 먹는 일이었어. 엄마가 평소 요리에 관심과 재능이 많았다면 괜찮았을 수도 있었겠지. 아쉽게도 그쪽 방면으로는 재능과 흥미가 부족한 편이었고, 칼로리와 영양소를 고려해 배식되는 회사 식당에 대한 만족도가 굉장히 높은 사람이었어. 그런 내가 나 자신만을 위해 삼시세끼를 챙겨 먹는 일은 상당히 귀찮고 부담스러운 일이었지. 그렇다고 홀몸도 아닌데 마냥 굶거나 대충 때울 수도 없는 노릇이라 삼시세끼는 엄마에게 그야말로 재택근무의 딜레마였어.



그럼 대체 어떻게 이 삼시세끼라는 딜레마를 해결했을까? 우선 아침은 두유나 아몬드 우유와 그래놀라의 조합으로 간단하게 영양소를 챙길 수 있었어. 통곡물식빵에 잼을 바르고 치즈와 계란을 얹은 약식 샌드위치도 애용하던 아침 메뉴였어. 시리얼과 샌드위치로 하루를 시작하던 엄마에게 점심 산책 중 발견한 동네 빵집은 큰 기쁨이 되었어.

이곳은 방부제를 전혀 사용하지 않고 좋은 재료로만 만드는 작은 유기농 빵집인데, 당일에 만든 빵이 소진되면 문을 닫는 곳이라 점심시간에 산책을 놓치면 일을 마치고 서둘러 빵집에 다녀와야 했어. 이 작은 공간에 가는 것 자체가 일상에서 벗어나는 기분이라 직원분이 추천해주시는 익숙하지 않은 메뉴도 흔쾌히 선택하는 변주를 즐겼어. 하루는 그간 먹어보지 못했던 시금치 치아바타를 추천받아 선택했어. 그 맛이 어떨지 다음날 아침까지 느낄 설렘은 덤이었다고 할까?




사실 엄마 식사의 대부분을 책임져주신 분은 너의 외할머니셨어. 외할머니께서 산타할아버지처럼 빨간색 대형 마트 가방 가득 반찬을 배달해주신 날은 한식 뷔페에서 밥을 먹는 기분이었어. 외할머니께서 큰 가방을 턱 내려놓고 냉장고 정리를 뚝딱뚝딱하시고 나면 냉장고가 할머니표 반찬으로 가득 찼어. 봄 냉이는 보약이라며 냉이 배춧국을 해다 주신 날은 건강한 봄 내음이 엄마를 통해 네게도 전해지지 않았을까?

사위인 아빠 생일에 맞춰서 할아버지 편에 바리바리 보내주셨던 미역국, 갈비찜, 잡채 등은 정작 아빠는 야근하느라 먹지 못하고 딸인 엄마만 맛있게 먹었어. 엄마가 먹는 건 너를 위한 것이기도 하니까 아빠도 서운하지 않았을 거야. 집안일에 미숙한 마흔 넘은 딸을 둔 부채라며 늘 보살펴주시는 두 분의 사랑을 이렇게 계속 받기만 해도 되는 걸까 의문이 들 때도 있어. 그분들에게 받은 사랑을 딱풀이 너에게 전하는 게 엄마가 해야 할 일이겠지. 할머니 할아버지도 그걸 바라실게 분명해. 이런 게 내리사랑이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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