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동안 명상에 크게 감화되어 명상 비중이 높은 요가원을 열심히 찾아보던 시절이 있었어. 그때가 언제였더라. 그래, 엄마가 2번째 유산을 하고 회사에서 보내준 마음 챙김 연수를 다녀온 직후였을거야.
외부와 단절된 깊은 산속 연수원에서 진행되는 3박 4일 과정의 명상 교육이었어. 연수 과정의 본격적인 시작에 앞 서 우리는 스마트폰부터 반납해야 했어. 스마트폰 하나로 업무부터 취미 생활까지 모든 게 가능한 시대에 무려 3박 4일 동안 핸드폰 없이 지내라는 건 세상과의 단절이자 고립이었지. 이를 견디지 못하리라 판단한 이들은 임시 휴대폰을 준비해 반납하고, 하루 일과가 끝난 후 숙소에서 개인 핸드폰을 원 없이 사용하기도 했어. 사실 마음 챙김 연수 꿀팁처럼 전해진 방법이었지만, 엄마는 왠지 그러고 싶지 않았어. 일부러 시간과 돈을 들여 명상 수업을 듣는 사람들도 많은데, 회사의 연수과정 중 하나로 이런 교육을 무료로 들을 수 있다는 게 얼마나 좋은 기회인가 싶었거든. 그렇게 엄마는 세상과의 단절을 기꺼이 수용하고 3박 4일 동안 '명상'이라는 낯선 세계 속으로 한 걸음씩 들어가게 되었어.
명상의 기초에 대한 이론 교육을 들은 후 우리는 들숨과 날숨에 집중하는 호흡 명상부터 배워 나갔어. 어떤 생각이 들면 그렇구나 알아차린 후 다시 호흡으로 돌아아 집중하는 연습을 반복했는데, 어느 순간 호흡은 안중에도 없이 생각의 흐름을 따라가느라 바쁜 나 자신을 발견하기도 했지. 가부좌 자세로 앉아서 진행하는 가장 기본적인 명상, 조용히 걸으며 내 발이 땅에 닿았다 떨어지는 감각에만 집중하며 진행하는 걷기 명상, 차를 마시며 하는 차명상 등 다양한 종류의 명상을 배우고 체험했어. 연수 기간 동안에는 식사 시간도 평범하지 않았어. 싱잉 볼이 울릴 때까지 30분의 시간 동안 대화 없이 오롯이 음식의 맛과 식감에만 집중한 채 천천히 음미하는 식사를 해야 했어. 평소 5분이면 식사를 마치던 분들에게 30분의 시간은 영원과도 같았겠지. 그래서인지 시간을 채우기 위해 식사량을 늘리는 쪽을 택한 이들도 꽤 있었어.
다음 날은 연수원 뒷산을 올라 숲 속 명상을 하였고, 근처 해변으로 이동해 바닷가를 걷거나 가만히 서거나 앉아서 바라보며 명상을 하기도 했어. 사실 이때까지도 엄마는 과연 이게 명상이구나 하는 느낌은 받지 못했어. 들숨과 날숨에 집중할라치면 졸음이 쏟아졌고, 잠을 깨려 노력하면 단순한 알아차림이 아니라 이런저런 생각들이 똬리를 틀기를 무한 반복하고 있었지. 그러다 별빛 명상을 체험하게 되었어. 건물 옥상에 가만히 누워 캄캄한 밤하늘에 총총 박힌 별을 보며 들숨과 날숨에 집중하던 중 무언가 내 안의 응어리가 터진 것처럼 눈물이 흘러넘쳤어.
명상 연수에 입과했던 그 해 초 엄마는 자연임신으로 잉태했던 두 번째 아이를 또다시 유산하고 몸도 마음도 많이 지쳐있었어. 그런데도 회사에서는 개인적인 아픔을 드러내지 않는 것이 맞다고 생각해 꾸역꾸역 내 몫의 아니 그 이상의 일들을 해내고 있었어. '현대 마음 챙김 명상의 대부’로 불리는 존 카밧진 작가는 책 《왜 마음 챙김 명상인가?》에서 의지가 강하고 재능 있는 사람일수록 부적절하고 불안정한 감정에 빠진다거나 마음의 상처를 받는 일이 거의 없다는 인상을 주려하고, 이로 인해 스스로 고립되어 자신과 다른 사람들 모두 큰 고통을 받을 수 있다고 지적했어.
당시 엄마는 개인적인 일로 주위에 피해를 주지 않기 위해 모든 감정을 숨긴 채 아무렇지 않게 행동하려 자신을 가혹하게 몰아붙였어. 상처 입은 자신의 마음을 먼저 살피고 따뜻하게 안아줬어야 했는데 말이야. 엄마가 사회적 가면을 쓰고 괜찮은 척, 아무렇지 않은 척했던 행동들이 결국 스스로 만든 굴레에 나 자신을 가두었고, 타인의 위로로부터 나 자신을 고립시켰어. 제대로 슬퍼하는 방법도 몰라 꾹꾹 누르기만 했던 감정들이 풀리지 않고 가슴에 남아있다가 별빛 명상에서 비로소 터져버렸던 것 같아.
그런 경험이 있었으니 짧은 연수였지만 명상의 역할과 효과에 크게 감화될 수밖에 없었겠지? 그 후 명상 요가원을 반년 이상 다니기도 했고, 명상과 관련된 책을 읽고 관련 프로젝트에도 참여하기도 했어. 그런데도 여전히 명상이 내 옷처럼 편하고 익숙하게 느껴지지 않던 차에 지난 3월 임신 27주 차에 들어섰을 때 동일한 과정의 온라인 버전 연수에 입과 하게 되었어. 호흡명상, 먹기명상, 걷기명상, 음악명상, 차명상 등 다양한 명상을 다시 한번 경험하면서 잊고 있었던 4년 전 기억을 떠올릴 수 있었어.
온라인 명상 연수 1일 차 마지막 수업은 컬러테라피 명상이었어. 색채명상이라고도 부르는 이 명상의 방법은 윤곽이 그려진 도면 중 하나를 선택해 자유롭게 색을 칠하며 대상에 집중하는 거야. 엄마는 평소였다면 선택하지 않았을 핑크색 색연필을 제일 먼저 집어 들고 너에게 두런두런 이야기를 하면서 색을 칠하기 시작했어.
"딱풀이는 어떤 색을 좋아할까? 엄마는 사실 분홍색을 그리 좋아하지 않지만 딱풀이가 분홍색을 좋아한다면 엄마도 좋아하게 될 것 같아. 엄마는 어렸을 때 줄곧 노란색을 좋아했었는데 최근에는 보라색이 좋아졌어"
이렇게 너에게 좋아하는 색을 묻는 질문으로 시작된 대화는 다양한 컬러만큼 다양한 재능, 못하는 것이 있으면 또 잘하는 것도 있을 테니 괜찮다는 당부, 시기와 질투에서 여전히 자유롭지 못한 엄마의 결점에 대한 고백, 그리고 다정함과 사랑에 대한 이야기까지 자연스레 이어졌어.
그동안 바쁜다는 핑계로 태교다운 태교를 하지 못했는데 컬러테라피 명상 덕분에 너에게 엄마 목소리를 많이 들려줄 수 있었어. 또 무엇보다 엄마 스스로도 너무 즐겁고 행복했어. 첫 번째 명상 연수는 눈물로 기억에 남았지만, 너와 대화를 나누며 함께 했던 두 번째 명상 연수는 분명 기쁨으로 기억될 거야. 두런두런 너에게 전했던 이야기가 일종의 태담이었겠지? 그래서 과연 너는 어떤 색을 좋아할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