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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유미작가 May 10. 2022

사십 대 산모에게 쏟아지는 현실적인 조언, 산후조리원

태교일기 [34w1d] 딱풀이에게 보내는 17번째 편지 (D-31)

딱풀아, 너에게는 '마흔'이라는 숫자가 주는 중압감 같은 게 까마득하겠지? 마흔이 대수인가 싶지만 주위를 보면 인생의 황금기를 지났다고 자신을 액자 속에 가두는 이들이 많아. 엄마는 얼마 전 <서른 아홉>이라는 드라마를 보았어. 마흔을 코앞에 둔 세 친구의 우정과 사랑, 그리고 삶에 대한 이야기를 담은 드라마였어. 누군가는 이렇게 말하더구나. 서른아홉이라는 숫자가 청년이라고 하기엔 농익었고, 중년이라고 보기엔 아직 어린, 성숙과 미성숙의 아슬아슬한 경계라고.


나무 의사로 널리 알려진 우종영 작가는 《나는 나무처럼 살고 싶다》에서 마흔이 되었을 때 뒤돌아보니 한 일도 없이 나이만 먹은 듯 하얀 백지밖에 안 보이고, 앞을 내다보니 갈 길을 재촉해야 할 것 같아 초조했다고 말했어. 그가 느꼈던 마흔이란 나이의 이중성이 엄마에게도 꼭 그랬어. 아니, 보다 정확하게 얘기하자면 마흔을 목전에 두었을 때 여러 혼란이 들이닥쳤지. 나쁜 일은 몰아서 온다고 했던가? 인간관계도, 가족계획도, 건강도 모두 한 번에 적신호를 보내왔고, 불붙은 열차는 강제로 멈춰 설 수밖에 없었어.


멈추고 나서야 비로소 보인다더니, 쉼표를 찍고 나서야 삶에서 그 쉼표가 가지는 가치를 알게 되었어. 그저 멈추지 않고 빠르게 나아가는 게 능사인 줄 알고 달려왔던 내게 이렇게나마 억지로 쉼표를 찍을 기회가 주어졌던 건지도 모르겠어. 그렇지 않았다면 엄마는 지금까지도 대체 무엇을 위해 어디를 향해 달리는지도 모른 채 계속 전속력으로 달려가고 있었을지도 몰라. 혼란스러운 서른아홉을 보내고 맞이한 마흔에 엄마는 그렇게 나 자신을 정비했어.


그동안 달리느라 마모된 타이어도 교체하고, 연료도 투입하며 잠시 쉬어갔던 마흔을 보냈기에 엄마는 임신을 확인하고도 크게 걱정하지 않았어. 그런데 의사 선생님의 생각은 좀 달랐나 봐. 엄마는 산부인과에서 받아야 하는 온갖 종류의 검진 대상이 되었어. 게다가 출산 후 회복도 더디고 살도 느리게 빠질 거라는 부정적인 예언을 들어야 했어. 엄마 마음이야 현재 진행형 청춘이었지만, 현실적인 조언들을 고려하지 않을 수 없었지. 현실과 이상 사이에서 고민하던 엄마가 가장 먼저 했던 결단과 실천은 산후조리원을 알아보는 것이었어.


우선 그나마 최근이라 할 수 있는 5년 내 출산을 경험한 엄마의 지인들에게 물어보았어. 그들 중 한 명은 집에서, 다른 두 명은 병원 부설 조리원에서 산후조리를 했어. 조리원을 고민하던 그때 코로나가 무섭게 확산되고 있어서 단체 생활을 해야 하는 조리원을 가는 게 옳은 선택일지 조금 망설여지기도 했어. 하지만, 여러모로 집에서는 체계적인 시스템을 갖춘 전문 조리원과 비슷한 수준의 산후조리가 어렵겠다는 생각이 들었어. 조리원 쪽으로 저울이 기울고, 막연하게 두 명의 지인들처럼 병원 부설 조리원을 가야겠다 싶었어. 그런데 네가 태어날 시점에 하필 리모델링 공사가 예정되어 있다지 뭐야.


예상치 못했던 일련의 상황들이 게으른 엄마 아빠를 결국 움직이게 만들었어. 지역 맘 카페 후기를 찬찬히 뒤져 집 근처 조리원 중 몇 곳에 상담 예약을 했어. 이런 걸 사람들은 '조리원 투어'라고 부르더구나. 그동안은 그저 딱풀이 네가 건강하게 자라는 것만 신경 썼는데, 조리원 투어와 함께 출산 준비의 서막이 열린 셈이지. 그때는 미처 몰랐어. 빼꼼하게 열린 문 안쪽에 그동안 엄마가 전혀 경험하지 못했던 어마어마한 신세계가 존재한다는 사실을 말이야. 그리고 그 신세계는 엄마와 아빠에게 끊임없이 선택과 결단을 요구하게 될 것이라는 것도. 사실 주로 엄마에게.


참 엄마는 이번 주부터 새로운 드라마를 보기 시작했어. 바로 지난해 겨울 방영되었던 <산후조리원>이야. 회사에서는 최연소 임원이지만 병원에서는 최고령 산모로 나오는 현진이 느끼는 고충과 고민이 남일 같지 않은 건 결국 나이 때문일까? 비록 엄마가 회사에서 임원은 아니지만 현진처럼 18년 차에 출산을 앞두고 있으니 조난급 산후조리원 적응기를 써가지는 않을까 조금 걱정스럽기도 해. 그런데 드라마 앞에 붙은 '격정 출산 누와르'라는 명칭은 대체 누가 만들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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