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유미작가 Jun 07. 2022

코로나지만 강원도 태교 여행 (ft. 뮤지엄 산)

태교일기 [38w1d] 딱풀이에게 보내는 21번째 편지 (D-3)


그때는 주말에 집에 있는 게 왜 그리 불편했는지. 외할머니와 외할아버지 두 분 중 어느 분도 눈치를 주시는 분이 없으셨지만 엄마는 기어코 외출을 했어. 약속이 없을 때는 혼자서 영화라도 한 편 보거나 동네 카페라도 가야만 했지. 생각해보니 주말에는 사람들을 만나느라 바쁘고, 주중에는 주말 약속을 잡느라 바빴던 시절도 있었어. 미어캣처럼 늘 울타리 밖을 살피느라 바빴지. 그래서 엄마는 결혼 전까지 스스로를 굉장히 외향적인 사람이라고 생각했어.

아빠와 만나 결혼을 하고 나만의 공간이 생겨서였을까? 엄마는 더 이상 울타리 밖을 살피고 나갈 기회를 노리느라 바쁜 미어캣이 아니었어. 30년이 훌쩍 넘는 시간 동안 모르고 살았던 내 안의 집순이 기질을 새롭게 발견하게 되었다고나 할까? 난임 휴직을 했던 1년의 기간을 그럭저럭 버틸 수 있었던 것도 아마 그래서였을 거야.

이런 엄마에게도 코로나 기간을 임산부로 버텨내는 일은 쉽지 않았어. 초반에는 혹시나 너를 또 잃을까 하는 걱정이, 안정기에 들어선 이후는 코로나 감염에 대한 불안이 어항 속 물고기처럼 엄마를 집 안에만 머물게 했어. 동네 산책만으로는 해소되지 않는 답답함이 최고조에 이르렀을 때였을거야. 엄마는 드디어 숙소 예약을 저질러버렸어.

그렇게 떠났던 29주 차의 원주 여행은 일종의 태교여행이 된 셈이야. 괌이나 사이판, 못해도 제주도로는 떠나고 싶었던 태교여행의 아쉬움을 강원도의 바람이 날려주기를 바라며. 아빠의 제안으로 외할머니와 외할아버지도 함께하게 된 원주 여행을 위해 외할아버지는 무려 1주일 동안 두문불출하셨어. 그게 뭐 대수인가 싶을 수도 있겠지만, 평소 공사다망하고 약속 많기로 유명한 외할아버지에게 1주일 외출 금지는 정말 엄청난 일이었지.

강원도로 여행을 떠나긴 했지만 29주 차 산모인 엄마가 할 수 있는 활동은 제한적이었어. 그런데도 그저 모든 순간이 즐겁고 행복했어. 숙소 근처의 횡성 한우 전문점에서 맛있게 먹고, 할머니 할아버지께서 준비해주신 선물 개봉식도 하고, 엄마 뱃속에서 열심히 놀고 있을 너까지 함께하는 가족사진도 찍었어. 리조트에 돌아와서는 단지 내 산책로를 천천히 둘러보며 싱그러운 풍경과 그 속에서 느슨해진 우리의 모습을 사진에 담았어. 정원에 마련된 몇 안 되는 놀이기구에 모여든 아이들이 쏟아내는 청량한 웃음소리를 들으며 너와 함께할 1년 뒤, 2년 뒤의 모습도 함께 그려보았어.



둘째 날은 체크아웃을 하고 리조트에서 가까운 '뮤지엄 산'에 들렸어. 제주 본태 박물관과 방주교회에서 엄마가 느꼈던 안도 타다오 건축가의 건축 철학을 할머니 할아버지께도 느끼게 해드리고 싶었거든. 우리는 건축 해설사님의 설명을 들으며 산 능성을 따라 길게 펼쳐진 뮤지엄 건물들을 돌아보았어. 그가 처음 뮤지엄 부지를 방문해 느꼈다던 '도시의 번잡함으로부터 벗어난 아름다운 산과 자연으로 둘러 쌓인 아늑함’이라는 인상이 건축으로 발현된 과정과 결과를 언젠가 너에게도 들려주고 보여줄 날이 오겠지?  역시 모든 게 빠르게만 돌아가는 도시 생활자로 살아가겠지만 느리게 걸을 수 있는 너만의 시간과 공간을 잃지 않기를 바라는 엄마의 바람은 욕심일까?

"네 아빠는 저렇게 '딱풀이'라는 이름만 나오면 계속 웃으신다" 돌담과 처마 사이의 작은 창에서 따뜻하게 쏟아져 내리는 햇빛을 쬐며 잠시 쉬던 엄마는 할머니의 목소리에 네 할아버지를 올려다보았어. 할아버지는 싱글벙글 미소를 지으시며 "1주일 동안 외출금지를 한 보람이 있네"라고 말씀하셨어. 그렇게 친구도 좋아하시고 술자리도 즐기시는 분이 말이야. 할아버지는 딱풀이랑 엄마 아빠가 함께 있는 모습을 한 장이라도 더 찍어주시겠다며 포토그래퍼를 자처하기도 하셨어. 그렇게 남겨주신 사진은 수평이 맞지 않거나 손가락 일부가 함께 찍힌 B컷이 대부분이었지만 피사체를 바라보는 사랑만큼은 가득했지.

뮤지엄 산에는 엄마 말고도 아이를 품어 배가 볼록하게 나온 임산부들이 여럿 있었어. 우리는 서로가 서로를 알지 못했지만 아마도 비슷한 마음을 서로에게 느끼며 스쳐 지나갔을 거야. 새 생명을 품게 된 것을 축하하는 마음, 임신으로 인해 겪게 되는 몸과 마음의 변화를 이해하는 마음, 남은 기간도 무탈하게 잘 보내 예쁜 아기를 만나길 바라는 마음. 그때는 아득히 멀게만 느껴졌던 그날이 이제 3일 뒤로 다가왔네. 엄마가 원주에서 느꼈던 느슨한 아늑함을 품은 너이기를 바라며 남은 3일도 잘 지내볼게. 사랑한다 딱풀아~♡

이전 20화 3번의 만삭 촬영, 착각의 빙하를 깨부수며 얻은 깨달음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