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산 전 마지막 먹부림 그리고 마지막 밤
태교일기 [38w3d] 딱풀이에게 보내는 22번째 편지 (D-1)
의사 선생님은 출산 2~3일 전부터 소화가 잘되는 음식을 먹어야 제왕절개 수술 후 가스가 덜 차고 회복도 빠를 거라며 엄마에게 몇 차례 주의를 주셨어. 책상 하나를 사이에 두고 의사 선생님과 마주한 채 잘 알겠다고 그러겠다고 고개를 끄덕거리며 모범생처럼 대답했어. 하지만 막상 수술 날짜가 다가오니 왜 그리도 먹고 싶은 음식이 많은지. 신의 축복을 받아 모유가 잘 나온다면 맵고 자극적인 음식을 꽤 오랫동안 먹지 못할지도 모르니 어쩌면 마지막일 수 있다는 그럴듯한 핑계가 엄마를 적극적으로 행동하게 만들었어. 세상이 끝나는 것도 죽음을 앞둔 것도 아닌데 마지막이라니 비약도 끝내주지? 어쨌든 그 결과 엄마가 요 며칠 자행했던 먹부림의 실태는 김밥과 핫도그, 햄버거와 감자튀김, 그리고 매운 떡볶이와 튀김. 이렇게 써놓고 보니 민망할 정도로 건강 식단과는 거리가 먼 음식들 뿐이었네. 하루가 더 있었다면 오늘 떡볶이와의 경합에서 아쉽게 탈락한 해물짬뽕과 군만두를 먹었을 거야.
자연분만과 제왕절개 사이에서 여러 날을 고민했어. 아빠의 적극적인 권유로 제왕절개를 선택하고도 후회하지 않을 옳은 선택인지 갈팡질팡했지. 모두가 입을 모아, 심지어 국민 육아서적이라고 불리는 책에서도 태어날 아이에게는 자연분만이 더 좋다고들 하는데 아빠는 왜 엄마에게 제왕절개를 권했을까? 그에게는 그럴만한 이유가 있었어. 엄마는 중국에서 공부할 때 디스크가 터져서 허리 건강을 조심해야 하는 사람이거든. 평소 잠잠하다가도 자칫 잘못하면 허리와 골반이 틀어져버려 꼼짝달싹도 못하기도 해. 실제로 신혼여행 첫날 바닷가에서 아빠와 함께 점프하는 모습을 사진으로 찍다가 허리가 틀어져 2박 3일을 누워만 있기도 했어. 그 모습을 옆에서 지켜보며 병간호를 해야 했으니, 아빠에게 엄마의 허리는 늘 염려와 공포의 대상이었을 거야.
정말 그런지 조금 의문이긴 하지만 육아 서적에 나온 표현을 빌리자면, 태아가 엄마의 자궁을 통과하며 누리게 될 '면역력 샤워'의 권리를 네게 주지 못해 좀 미안하기도 해. 그런데 한편으로 이런 생각도 들어. 어쩐지 너는 엄마가 이럴 줄 이미 알고 있지 않았을까? 엄마의 부족함을 탓하기보다 스스로 보완할 수 있는 방법을 찾지 않았을까? 그래서 뱃속에서 더 잘 먹고 더 잘 자고 더 잘 놀다가 건강한 모습으로 짜잔 등장해주지 않을까? 엄마 혼자만의 경주가 아니라 2인 3각 경기처럼 함께 합을 맞춰 나아가는 경기라는 걸 진작에 간파하고 힘을 비축하고 있지 않을까? 제발 엄마의 상상력이 너무 지나쳤다고 말하지 말아 주겠니?
우리는 이제 몇 시간 후면 드디어 만나게 될 거야. 그래서인지 엄마는 잠이 오지 않아. 이대로 밤을 꼬박 뜬 눈으로 보낼지도 모르겠어. 우리의 첫 대면은 서로에게 어떤 인상으로 남게 될까? 너를 만나는 날을 설레는 마음으로 손꼽아 기다리는 사람이 엄마 하나만은 아니었는지 어제오늘 많은 이들에게 연락을 받았어. 네 할머니와 외할머니는 엄마보다도 더 떨고 계신 것 같았어. 모습을 드러내기도 전부터 많은 이들의 심장을 두근거리게 하다니 너란 존재가 가진 힘이 얼마나 대단한지 너 스스로는 알고 있을까? 지금 엄마가 느끼는 이 강한 꿀렁임은 알고 있다는 너의 대답이려나?
오늘 저녁을 먹고 아빠와 나란히 앉아 <골 때리는 그녀들>이라는 예능 프로를 보다가 아빠 얼굴을 스캔하듯 찬찬히 관찰했어. 이마, 눈, 코, 입, 그리고 턱까지 아빠 얼굴을 하나씩 뜯어보면서 네 얼굴을 다시 그려 보았어. 실제 네 모습은 어떨까? 초음파에서 보았던 것처럼 아빠를 닮은 모습일까? 아~ 그러다 아빠 오른쪽 눈에 다래끼를 발견했어. 제왕절개 수술 후 엄마 병간호를 위해 5박 6일 휴가를 써야 해서인지 아빠는 지난 며칠 계속 야근을 했거든. 회사 일은 일대로 바쁘고, 퇴근해서는 너를 맞이할 준비로 바쁘고. 그러느라 피로가 누적되고 면역력이 떨어졌나 봐. 세상에 태어나 처음 만나는 아빠의 눈이 빨갛게 붓고 충혈된 모습이라도 좀 이해해줘. 너를 만나기 위해 애쓴 결과이니 말이야.
딱풀아~ 네가 보내는 태동의 신비함도 이제 끝이겠구나. 그간 엄마 뱃속에서 무럭무럭 자라주어서 고마워. 그곳에서 보내는 너의 마지막 밤이 편안하길 바라. 우리 서로 건강한 모습으로 곧 만나자!! 사랑하고 또 사랑해~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