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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시은 Jul 11. 2021

손끝에 집중하는 순간

 "여기로 들어오세요. 이 곳이 피아노 레슨실이에요. 자리에 잘 앉으셨으면 이제 시작해볼게요. 이 곡은 4분의 4박자의 곡으로 왼손과 오른손이 동시에 시작해요. 계이름은 미솔미 레도시도로 시작해요." 

 평소보다 훨씬 더 상세한 설명으로 레슨을 한다. 학생은 더듬더듬 검은 건반을 손끝의 감각으로 찾아낸다. 그리고 나의 설명에 따라 건반을 누르기 시작한다. 나는 시작장애를 가진 이 학생이 마치 악보를 머리속에 그려낼 수 있을 정도로 설명을 한다.

 이 학생을 레슨 하면서 다른 학생과 크게 다른 점을 발견하게 됐다. 그 것은 악보를 보지 못한다는 것이 아니라

손끝의 감각을 느끼기 위해 순간적으로 엄청난 집중을 한다는 점이다. 손끝의 감각과 들리는 소리에 더 집중해서 연주를 하고 있었다.


 피아노를 칠 때 작동하는 근육과 관절은 주로 상체에 있다. 팔을 움직여야 하고 팔꿈치와 손목을 유연하게 사용해야 하고 손가락 관절을 때로는 묵직하게 또 날렵하게 움직여야 할 때도 있다. 물론 앉아있는 부분인 하체의 힘도 중요하다. 그리고 발은 페달을 밟아야 한다. 하지만 몸의 모든 부분 중에서 피아노 건반에 맞닿아 있는 부분은 손끝이다. 결국 손끝으로 건반을 눌러서 소리를 만들어 내는 악기가 피아노인 것이다. 그래서 가장 예민하게 집중해야 하는 부분은 손끝이다. 정확하게 필요한 건반을 정확한 박자에 누르고 강도와 세기를 조절해서 톤을 조절하고 다이내믹을 표현하는 것은 결국 손끝이 다 해야 하는 일들이다.


 레슨을 할 때 가장 유심히 봐야 하는 부분은 손가락과 손끝이다. 손끝의 감각을 제대로 느끼고 있는지 항상 확인해야 한다. 건반의 바닥까지 누르는 에너지를 느끼고 있는지 잘 판단해야 한다. 손끝이 제대로 에너지를 건반에 전달하기 위해서 팔을 움직이고 팔꿈치의 각도를 조절하고 손목을 움직인다. 복지관의 노년의 학생들은 움직임이 아무래도 젊은 사람보다 둔할 수밖에 없다. 아이들의 경우 가르치지 않아도 저절로 자연스럽게 몸이 움직이는 경우가 많은데  성인들은 하나하나 유연하게 만들어야 한다. 팔의 움직임과 손목의 부드러움을 설명하면 이런 것에 집중하느라 손끝을 놓친다. 정말 중요한 것은 손가락과 손끝이니 그것에 집중하면 그만이다.


 그런데 손가락 관절이 잘 움직이지 않는 분은 거의 본 적이 없는 것 같다. 악보가 잘 안 보이고 생각이 빨리 나지 않아서 손이 움직이지 않는 경우는 많다. 혹은 악보를 봤어도 어떤 손가락을 움직여야 할지 훈련이 잘 되어 있지 않아서 움직이지 않는 경우도 많다. 하지만 손가락 관절이 움직이지 않는 경우는 신경을 다치신 분들 이외에는 보지 못한 거 같다. 어느 날 103세 할머니가 모차르트 피아노 소나타를 연주하는 뉴스 영상을 본 적이 있다. 말은 어눌하게 하는데 피아노를 치는 손가락은 아주 날렵했다. 손끝의 감각도 굉장히 예민해 보였다. 손가락의 움직임은 나이와 상관이 없는 것인가? 그럼 왜 복지관의 학생들은 움직임이 느리게 느껴지는 것일까에 대해서 생각하게 됐다. 아마도 손끝에 집중해야 하는 순간을 놓치기 때문이 아닐까 생각한다.


 손끝에 가장 집중해야 하는 순간은 곡의 시작이다. 모든 감각을 손끝에 집중하는 시간이다. 이 순간 다른 생각은 버려야 한다. 곡이 시작하는 중요한 순간에 다른 생각을 하는 분들이 정말 많다. 가끔 피아노를 치는 중간에 생각나는 말을 하시는 분도 있다. 피아노를 칠 때는 손끝에 정신을 집중하는 훈련이 필요하다. 이것은 특히 생각이 너무나 많은 어른들에게 필요하다. 시각 장애를 가진 학생이 손끝에 열심을 다해 집중하는 것처럼 다른 보이는 것들이나 머리에 드는 생각을 거두고 손끝에 집중해야 한다.


 악기를 연주하는 것은  생각 버리기를 연습할 수 있는 가장 좋은 방법이다. 연습이 부족해서 못 칠 것 같고, 집에 무슨 일이 있었는지는 연주하는 이 순간에는  중요한 문제가 아니다. 손끝에 집중하고 다른 생각을 접자.  세상의 걱정은 접어두고 손으로 음악을 만드는 것에 집중하자. 손끝을 예민하게 하고 호흡을 조절하고 우주의 음악적 흐름에 나를 맡기면 된다. 음악이 시작되면 손가락이 작동하기 시작하고 손끝이 건반을 누르는 에너지에 집중하면 아름다운 멜로디가 들릴 것이다.

 “ 자 그럼 이제 시작할게요. 손끝에 집중하세요. 하나, 둘, 셋, 넷, 시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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