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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시은 Nov 28. 2020

음악적 호흡을 깊이 있게


 음악이 시작하는 순간은 피아노 건반을 눌러서 악보의  첫음이 들릴 때 일까? 나는 음악의 시작은 연주자의 호흡에서 시작한다고 생각한다. 악기를 연주할 준비를 하고 호흡을 음악적 호흡으로 바꾸는 침묵의 시간부터  음악이라고 생각한다.


 이스라엘 출신의 세계적인 피아니스트이자 지휘자인 다니엘 바렌보임은 ‘치유의 음악’이라는 책에서 소리의 시작을 이렇게 설명했다. “우리는 침묵을 중단하거나 혹은 침묵에서 진화하여 악곡을 시작한다”

침묵의 시간에 연주자는 음악적 호흡을 시작해야 한다.  


 레슨을 할 때 나는 호흡을 조절하는 법을 가르치는 것으로 시작한다. 수강생들의 호흡의 속도와 강도는 제각각이다. 호흡이 짧고 빠른 학생도 있고, 느리고 약한 학생도 있다. 간혹 호흡기 질환으로 인해 불편한 호흡을 하시는 분들도 있다. 사람마다 호흡이 다르더라도 음악이 시작되는 순간은 음악적 호흡에 나를 맞춰야 한다. 음악적 호흡은 흐르는 물과 같은 시간에 리듬과 멜로디를 만들며 시간에 생명을 주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우리가 살아있기 위해 호흡을 해야 하듯이 음악을 살리기 위해 음악적 호흡을 해야 하는 것이다.


 악기를 연주함에 있어서 가장 중요한 부분인 호흡을 놓치는 경우를 정말 많이 목격한다. 레슨 하면서 가장 많이 듣는 말이 있다. “혼자 연습할 때는 진짜 잘 됐는데 선생님이 옆에 계시니까 잘 안돼요.” 누가 보고 있다는 불안감에 마음이 긴장되면 근육이 수축하고 원래 하던 움직임이 나오지 않으니 당연한 결과이다. 그리고 또 하나의 이유는 호흡을 연습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호흡을 조절하는 법을 함께 연습하면 긴장을 해도 음악적 흐름에 나를 맡길 수 있다. 하지만 음정과 박자만 연습을 하면 긴장을 하게 되면 눈앞이 캄캄해지면서 모든 게 무너진다.


 한 성인 수강생은 레슨을 시작하면 바로 호흡을 들이켠 채로 끝까지 거의 무호흡의 상태로 보이게 연주하신다.  아마도 이분은 긴장된 상태로 평소에도 생활을 하시는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어느 날은 얼굴이 너무 피곤해 보이셔서 그 사정을 들어보니 내 예상이 맞았다.

 " 남편 성격이 너무 불같은데, 남편이 술을 마시고 들어오는 날이면 언제 터질지 모르는 긴장 속에 밤을 보내요. 너무 힘들면 숨도 잘 안 쉬어 지더라고요. "

 나는 긴장을 풀어드리기 위해서 호흡 연습을 같이 하자고 제안했다.

 “ 먼저 온 몸의 긴장을 푸시고 제가 10을 셀 때까지 호흡을 깊이 들이마셔요.  그리고 10을 셀 동안 호흡을 멈추세요. 그리고 마지막으로 10초 동안 천천히 호흡을 내쉬세요. 하나, 둘, 셋, 넷….”

  호흡을 정리하고 호흡을 내쉬는 순간 연주를 시작하도록 했다. 시작보다 한결 나아진 연주를 할 수 있었다. 음악의 중간은 호흡을 조절하고 통제하여  평온의 상태가 되어야 한다. 사실 나도 극도의 긴장이 오면 호흡이 조절되지 않는 경험을 많이 했다. 대학 입시 실기 시험을 볼 때, 졸업 연주 같은 중요한 연주를 해야 할 때면 호흡이 빨라지면서 조절되지 않는다. 내 호흡이 빨라지면 음악적인 호흡도 같이 빨라지고 머릿속이 하얗게 되면서 손가락만 기계적으로 움직이는 연주가 된다. 음악적 호흡을 통제하지 못한 것이다. 하지만 경력이 쌓이고 연주에 노련함이 생기면서 호흡을 조절하는 힘을 가지게 되었다.


 음악적 호흡은 프레이즈를 표현하게 해 준다. 프레이즈는 음악적인 문장과 같은 것이다. 프레이즈를 만들기 위해서는 호흡을 끊고 다시 시작해야 한다. 이것을 느끼지 못하는 학생도 정말 많다. 혹은 프레이즈를 호흡으로 표현할 여유를 가지지 못한다. 프레이즈가 끝날 때 깊이 들이마시고 천천히 내쉬면서 연주해야 한다. 결국 음악적 흐름에 나를 맡겨야 하는 것이다.


 흐름에 몸을 맡기지 못하는 많은 수강생들을 보면서 살면서 깊이 있는 호흡을 해본 적이 없는 게 아닐까라는 생각이 든다. 호흡이 짧고 얕아서 긴장이 되고 이완이 안 되는 딱딱한 상태로  살고 계신 게 아닐까? 졸졸 흐르는 시냇물 같은 흐름이 아니라 거친 파도와 같은 흐름 속에서 살고 계셨던 게 아닐까. 이분들께 얘기해 드리고 싶다. “숨을 쉬어야 해요! 깊게 숨을 들이쉬고 아주 천천히 내쉬어요! 인생의 짐들은 내려놓고 음악의 흐름에 내 몸을 맡기고 향기로운 호흡을 내뿜으면서 아름다운 소리를 만들어내요.”       


 '치유의 음악'에서 바렌보임이 또 이렇게 설명한다. “ 마지막 음은 뒤따르는 침묵과 반드시 연관되어 있다.” 음악의 마지막도 침묵이다. 침묵에서 시작하고 침묵으로 마친다. 유에서 무로 돌아갈 때까지가 음악인 것이다. 그렇다면 음악이 끝나고 음이 공중에 분해되고 소리가 들리지 않을 때까지 호흡을 멈추면 안 된다. 악곡에서 마지막 음을 치자마자 바로 손을 떼 버리시는 분들이 있다. 이분들은 손가락이 에너지를 쏟는 순간만이 음악이라고 생각하시는 것 같다. 다시 소리가 들리지 않는 세계로 넘어가는 순간까지 호흡을 멈추지 말고 끌고 가야 한다. 음악을 여행이라고 표현하는 것을 들어봤을지도 모르겠다. 여행은 집에서 출발하고 다시 집으로 돌아오는 것이다. 집으로 돌아올 때까지 여행을 끝난 것이 아니다. 음악의 여행에서 다시 돌아올 때까지 음악적인 내적인 호흡을 끝까지 유지하는 것이 좋겠다.


 어둠에서 빛이 시작되는 것과 같은 것이 음악이라고 생각한다. 공허한 세상에서 빛과 같은 기쁨을 주는 것이 음악인 것 같다. 빛의 세상에서는 다른 호흡법을 사용해야 한다. 더 맑고 더 깊이 있는 호흡으로 음악의 세상에 생명을 만들어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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