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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시은 Nov 22. 2020

반 평 남짓한 나만의 공간

마음이 부드러워지는 나만의 시간


 복지관의 피아노 수업을 나오신 지 일주일 정도 된 한 수강생이 기분 좋은 얼굴로 콧노래를 흥얼거리며 피아노실로 들어오시다가 나와 눈이 마주쳤다. 혼자만의 흥얼거림을 들켜 부끄러운 마음에  얼굴이 붉어지신다.  


 “ 피아노 치러 오는 시간이 너무 좋아서 그런지 나도 모르게 콧노래가 나왔는데 선생님께 들켜버렸네요. 하하. 집안일이고 애들이고 아무것도 신경 쓰지 않고  나 혼자 있는 이 시간이 너무 좋아요! 집에서는 혼자 있을 시간도 없고, 여유도 없거든요. ”


 아마도 이 수강생에게는 피아노를 배우는 시간이 인생에서 느끼는 책임감과 삶의 무게를 잠시나마 내려놓을 수 있는 자유의 시간이 아닐까 싶다. 이 자유의 시간은 사실 아주 좁은 공간에서 느낄 수 있다. 복지관의 피아노실은 10개의 레슨실로 나눠진다. 각각의 레슨실에는 업라이트 피아노가 한 대씩 있고, 피아노 옆에는 창문이 있다. 지하에 있어 창문이 없는 레슨실도 많은데, 운이 좋게도 5층에 있는 복지관 피아노실에는 창문이 있어서 시원한 바람과 따뜻한 햇빛을 덤으로 받을 수 있다.


 반 평 남짓한  좁은 공간인 레슨실은 고작 피아노와 창문 그게 전부이다.  답답하게 느껴질 수도 있는 이 작은 공간에서 자유를 느낀다고 하는 것은 어쩌면 모순이라고 할 수도 있겠다. 하지만 나도 좁은 연습실에서 자유를 느끼며 어린 시절을 보냈다. 어린 시절 나는 굉장히 내성적인 성격이었다. 그래서 사람들과 대화하는 게 부담스럽고 힘들었다. 그런 나에게 연습실에 피아노와 남겨진 그 시간은 고독하고 외롭기보다는 오히려  즐거웠다. 말로 표현하지 않아도 되는 자유로움 속에서 오로지 음악과 피아노와 작곡가와 작품만 생각하면 되는 시간이었다. 현실에서 나와 나만의 내면의 세계로 빠져드는 자유의 시간이 너무 좋았다. 레슨실의 공간은 좁지만 내면의 세계는 깊고 넓었다.


  작은 레슨실에서 수강생들이 내면의 '나만의 공간'으로 들어가시면서 딱딱했던 마음이 부드러워지는 것을 자주 목격한다. 항상 무뚝뚝한 표정을 하시는 한 수강생이 짜증 섞인 말투로 통화를 하는 것이 레슨실 밖에 쩌렁쩌렁 울린다.

 “아니, 그게 아니라고요! 이제 피아노 쳐야 하니까 끊어요!! ”


무슨 일인지 모르겠지만 화가 많이 나신 것 같아서 레슨 하기 위해 들어가야 하나 밖에서 한참 망설이다가 조심스럽게 문을 두드렸다.


 “저, 무슨 일이 있으신 것 같은데 레슨을 시작해도 되는지 모르겠네요..”

 “괜찮아요, 시작해도 돼요. 선생님. ”

 화가 난 마음을 진정시키고 피아노에 손가락을 올려 연주를 시작하신다. 그리고 이내 부드러운 표정의 어린아이가 된다. 신나게 동요 ‘과수원 길’을  연주하시는 할머니의 얼굴은 다시 10살의 어린이로 돌아간 듯하다.


 “어릴 때 풍금에 맞춰서 이 노래 많이 불렀었는데, 나 어렸을 때 노래 진짜 잘한다고 선생님이 칭찬하시곤 했어요. 갑자기 그때 생각이 나네요.”


 조금 전의 걱정과 짜증은 잠시 접어 두고, 어릴 적 추억으로 돌아가신 것 같다. 답답한 마음이 잠시나마 숨을 쉴 수 있는 시간이 되었을 것이다.


 때로는 내면의 세계로 들어가기도 하고, 옛날의 나로 돌아가기도 하고, 작곡가와 만나기도 하는 자유의 시간은 시간의 흐름이 잘 느껴지지 않는다.  수업 시간이 지나도록 레슨실에서 나오지 않으시는 분들이 꽤 많으시다. 나도 피아노를 연주할 때는 시간이 얼마나 흘렀는지 느껴지지 않을 때가 많다. 악기를 연주하며 음악에 빠지면 시간의 흐름이 느껴지지 않을 정도로 나만의 느낌의 세계에 집중하게 된다. 그렇게 시간이 지났는지도 모를 정도로 집중한 수강생에게는 문을 두드려 수업이 끝났다고 알려야 한다.


 “아니 벌써 시간이 이렇게나 지났어요? 시간이 너무 빨리 지나갔다. 아, 이제 현실로 돌아갈 시간이네요. ”




 반 평 남짓한 이 좁은 공간에서 떠나는 느낌의 세계로의 여행은 항상 설레고 즐거울 것이다. 잠시 현실에서 벗어날 수 있게 해주는 공간은 넓지 않아도 된다. 내면의 느낌의 세계가 깊고 넓으면 비록 그곳이 좁은 공간이더라도 나에게 자유를 선물해 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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