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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시은 Nov 29. 2020

손 이야기

세월이 흔적이 남아 있는 손

 나의 두 손은 그동안 나와 함께 지내면서 무엇을 했을까? 물론 피아노를 치는데 가장 많이 손을 사용했다. 그리고 오늘도 살아가기 위해서 바쁘게 사용하고 있다. 아마도 내 몸에서 하루에 가장 많이 움직이고 바쁘게 활동하는 게 손이 아닐까 생각한다. 아침에 일어나서 얼굴을 씻고, 밥을 차리고, 밥을 먹고, 옷을 입고, 직장에 나가 컴퓨터 자판을 두드리며 일을 하고, 혹은 글씨를 쓰며 공부를 하기 위해서 손은 하루 종일 바쁘게 움직인다. 그리고 나의 손은 피아노를 연주하고, 학생들을 가르치기 위해서 열심히 움직인다.


 나는 피아노를 가르치며 정말 많은 손을 만난다. 어린아이의 말랑말랑한 손, 학생들의 부드러운 손, 청년의 단단한 손, 일을 많이 해서 뭉뚝해진 손, 거친 손, 길고 예쁜 손가락을 가져 손 모델을 하고 있는 손, 크고 힘이 센 손 등 정말 많고 많은 손을 만났다. 그리고 가끔 불편한 손가락을 가지신 분들도 만난다. 새끼손가락 하나를 잃으신 분, 신경을 다쳐서 몇 개의 움직이지 않으시는 분들도 계신다. 많은 손을 보다 보면 이 분들의 손에 살아온 흔적들이 화석처럼 남아 있는 것을 느낀다. 평생을 회사원으로 일하시다가 퇴직을 하시고 오신 분의 손에서는 평생을 직장에서 열심히 일한 흔적이 있고, 건축일을 하시는 분의 손에서는 치열하게 건물을 짓고, 집을 지었더던 흔적이 남아있다. 병원에서 청소를 하시고 계신 분의 손에는 고생의 손길이 느껴지고, 식당을 운영하고 계신 분의 손에서는 힘들게 음식의 만드는 손길이 느껴진다. 평생 가족을 위해 집안의 모든일을 해온 어머니의 굽어진 손에서는 헌신의 흔적이 남아있다. 손에 남겨진 이 세월의 흔적들은 생계를 위해 그리고 가족들을 위해 얼마나 많은 짐을 두 손에 들고 사셨는지를 느끼게 한다.

 레슨 중 올바른 손 모양으로 피아노를 칠 수 있게 가르쳐야 한다. 그래서 더 집중해서 손을 살펴봐야 한다. 그래서 어느날의 레슨 시간에도 한 수강생의 손을 집중해서 유심히 쳐다보고 있었다.  

 “ 선생님, 내 손이 너무 뭉뚝하고 못생겼는데.. 선생님이 너무 자세히 쳐다보시니까 너무 부끄러워요.”

 “ 제 손가락도 한번 보세요. 저도 손가락이 짧고 굵은 편이어서 못생겼어요. 피아노 치면 길고 예쁜 손가락을 기대하시는데 제 손을 잘 보시면 아마 실망하실 거예요.”

 “아니 선생님은 손이 너무 곱다. 아이고 부드러워라. 아가 손이네 아가 손.”

 손을 내밀어 보여드렸더니 이내 덥석 잡아서 쓰다듬으시며 말씀하신다.

 “나는 옛날에 파독 간호사로 독일에서 고생을 많이 하고 왔어요. 그때 낮에는 일하고 저녁에는 수녀님한테 독일어 배우고 그렇게 살았어요. 말이 안통하니 무시를 하더라고요. 그래서 독일어 배우느라 잠도 거의 못잤어요. 하루 종일 일해서 번 돈은 가족들에게 다 보냈어요. 그리고 다녀와서도 아들들 키우고 지금은 남편도 아프고 그러다 보니 손이 쉴 틈이 없었네요. 그래서 손이 이렇게 너무 못나졌네. 이 못난 손 누가 쳐다보면 부끄럽더라고요.”

  순간 내 손이 너무 부끄러워진다. 그동안 나는 손으로 악기를 한다고 귀하게 아끼며 살아왔다. 피아노를 치다가 연습을 많이해서 손끝이 갈라지고 터져버린 적은 있었지만, 살기 위해서 고생을 한 흔적은 별로 찾아볼 수가 없다. 나의 손이 이렇게 곱게 되기까지 나를 대신해서 우리 부모님은 얼마나 고생을 하신 걸까. 지금 내 앞에 계신 어머님은 가족들을 위해 평생 고생을 하시고 이제야 본인을 위로하기 위해 이 자리에 오신 거구나.


 삶을 지탱하기 위해 치열하게 살아온 손들이 이제 피아노 앞에서 설레는 마음으로 음악을 만들기 위해 기다리고 있다. 평생 일만 해오던 거친 손이 부드러운 음악을 만들기 위해 준비하고 있다. 그동안 지치도록 일만 해왔던 손을 드디어 자신을 위해서 사용하는 것이다. 그리고 손가락이 음악을 만들면 힘들었던 마음이 풀어질 것이다.

 지금 피아노 건반 위에 있는 그동안의 삶의 흔적이 아름답게 남아있는 수강생의 굽고 거친 손이 나에게 말을 거는 것 같다.

 “그동안 바쁘게 일만 해왔는데, 이제는 이렇게 마음을 위로할 수 있다니 너무 기뻐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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