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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시은 Nov 23. 2020

귀를 열다

소리에 귀를 기울이고


피아노를 연주할 때는 예민한 감각이 필요하다. 손끝의 감각도 물론 아주 중요하다. 중요한 손끝의 감각을 조절하는 것은 소리를 듣는 귀다. 귀를 닫고 연주하면 음악이 아니라 손가락 운동이 되고 말 것이다. 레슨을 하다 보면 손가락 운동을 하는 학생들이 꽤 많다. 악보를 본 후 건반을 눈으로 확인하고 나서  손가락으로 그 건반을 누른다. 소리를 들으면서 피아노를 치는 것이 아니라 정확하게 어떤 건반을 누르는지에 집중하고 있는 것이다.

 “선생님, 눈이 흐릿해서 악보가 눈에 안 들어와요. 돋보기안경 좀 써도 되죠? ”

연령이 높은 분을 레슨 할수록 이런 이야기를 많이 듣게 된다. 다행인 것은 소리가 안 들리는 분들은 본 적이 별로 없다. 88세 수강생도 눈이 안 보이는 것은 종종 말씀하시지만 귀가 잘 들리지 않는다고 하지는 않는다. 물론 젊었을 때보다는 청력이 좋지는 않을 것이다. 예민한 것까지 안 들릴 수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눈으로 악보에 집중하는 것만큼 귀를 열지 않는다는 것이 문제인 것이다. 음색이나 다이내믹을 듣지 않는 것은 그렇다고 해도 음정을 틀리게 치거나, 손을 다른 자리에 놓았는데도 모르고 연주할 때가 있다. 이 것은 잘 안 들리는 것이 아니라 귀를 거의 닫고 연주하고 있다는 것을 증명한다.

 " 어머, 제가 틀린지도 몰랐어요. 어쩌면 이렇게 틀린 줄로 모르고 치고 있었지. 아예 듣지도 않고 치고 있었나 봐요. "

 그럼 왜 피아노 연주할 때 귀를 열지 않게 될까?

 아마도 가장 큰 이유는 마음속 불안함 때문이 아닐까 생각한다. 음정을 틀릴까 봐 불안한 마음에 너무 조심스럽게 건반을 하나하나 확인하다 보니 미처 귀를 열지 못하는 게 아닐까 생각한다. 그 조심성으로 인해 가장 중요한 음악이 사라져 버리고 눈과 손가락의 운동이 되어버린다.

 인간의 청각은 엄마 뱃속에서 가장 먼저 만들어지고 인생의 초기에 발달되며 안정된다고 한다. 그리고 죽을 때도 늦게 소멸한다고 한다. 우리는 태어나기 전부터 지금까지 사용하고 있는 청각을 하루 동안 어떻게 사용하고 있을까? 일상에서 나의 주의를 둘러싼 소리는 정말 많고 많다. 자연의 소리, 사물에서 나는 소리, 왁자지껄 떠드는 사람들의 소리.. 이런 배경적 소리 이외에도 대화를 하며 듣게 되는 언어적 소리가 있고, 마지막으로 음악이 있을 것이다. 우리가 주의를 기울여 들어야 하는 것은 언어적 소리와 음악적 소리가 아닐까 생각한다. 그런데 세상을 살다 보니 듣기 싫은 소리를 들을 때가 많다. 그래서 가끔은 듣는 귀를 닫아버리는 경우가 있다. 나이가 들면서 그렇게 귀를 닫는 일이 점점 더 많아진다. 그러다 보니 습관이 되어서 정말 들어야 할 때도 듣는 감각을 둔하게 만들어 버리는 것이 아닐까 라는 생각이 든다.


 마음속에는 내면의 귀가 있다. 악기를 연주할 때 이 귀가 필요하다. 우리는 소리를 내지 않아도 속으로 노래를 할 수 있다. 이 내면의 속 귀가 음악에서는 매우 중요하다. 악보를 보고 내면의 귀로 소리를 예상해서 만들어 낸다. 그리고 그 소리를 만들도록 손끝으로 건반을 누른다. 그리고 내가 소리를 잘 만들고 있는지 귀로 확인한다. 피아노를 연주할 때 진짜 귀도 열어야 하고 마음속 귀도 열어야 하는 것이다.  이 과정을 통해서 비로소 음악이 만들어지는 것이다.

 “선생님, 제가 치는 피아노 소리는 너무 듣기 싫은데 어떡하죠? ”

 이런 이야기를 하시는 분들은 이미 귀를 열기 시작한 분들이다. 틀린음을 치고도 틀린지도 모르는 것보다는 더 희망적이다. 더욱 귀를 열고 소리를 다듬으면 된다. 불안과 걱정을 떨치고 음악을 만드는데 집중하면 발달된 청각을 가지게 될 것이다. 발달된 열린 귀를 가지게 되었다는 것은 음악인으로 큰 재산을 가지게 된 것이다.   

 세상에는 시끄러운 소리, 듣기 싫은 말들, 참을 수 없는 소음들이 많다. 이런 것들에는 귀를 닫아야 한다. 하지만 음악을 연주할 때는 귀를 열어야 한다. 아주 작은 소리까지 들을 수 있게 예민하게 열어야 한다. 내가 귀를 열고 연주해야 다른 사람의 귀에 좋은 소리가 들도록 연주할 수 있다. 예민한 귀는 손끝을 조절하게 해주고, 손끝은 건반을 조절해서 멋진 음악을 만들 수 있게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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