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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동그래 Aug 04. 2023

세상이 조용해졌어 엄마와 나만 있는 것 같아

5살 ㅇㅅ




자취할 때부터 혼자 있는 고요함이 싫어서 라디오를 켜 두거나 음악을 들었다. 아이가 태어나고서는 동요를 많이 들었고, 작년부턴 그저 흐르는 시간이 아깝다고 생각하며 여러 팟캐스트나 오디오북을 듣기 시작했다. 하지만 무엇을 말하고자 하는지 다 파악하지도 못한채 그저 소리를 켜 둔 날도 많았다. 돌이켜보니 아침부터 밤까지 난 뭔가를 듣는 사람으로 살았었네.

 

5월의 어느 날, 막내는 낮잠자고 언니와 오빠는 피아노 학원에 간 사이 은수가 좋아하는 동요를 켜두고 빨래를 개고 있었다. 그러다 휴대폰 배터리가 나가 음악이 끊겼고 나는 별 반응 없이 계속 빨래를 갰다. 은수가 아주 조용한 목소리로 "엄마. 세상이 조용해졌어. 엄마와 나, 둘 만 있는 것 같아."라고 말을 걸었다. 우리를 둘러싼 소리가 멈추니 아이의 목소리가 더 잘 들렸다. "정말 조용하다. 어때?" "좋아. 아주 좋아. 엄마랑 나만 있는 것 같아서 더 좋아."라며 씨익 웃는 아이를 보며 함께 웃었다. 고요해진 시간이 되니 내가 빨래를 개고 있는 소리, 아이의 로봇을 갖고 놀면서 내는 여러 의성어들이 귓가에 찰싹 닿았다. 은수가 어떤 말을 많이 하고 있는지, 어떤 로봇들끼리 이야기를 하고 있는지 선명하게 보였다. 마치 누군가의 연주를 들었던 관객의 입장에서 이 시간의 주인공이 된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비록 후질근한 옷에 빨래를 개고 있는 나와 잠옷을 입고 있는 아이가 주인공이라 말하기 민망하지만, 이 공간 이 시간의 주인공이 된 느낌이었다. 그래서 아이가 했던 말을 다시 아이에게 보냈다. "은수야. 조용하니까 참 좋다. 그치? 엄마랑 은수가 주인공이 된 것 같아. 헬로카봇의 카봇처럼."  은수는 "응. 엄마랑 같이 놀고 싶어. 우리 둘이 놀면 좋겠어." 라며 다가왔다. 빨래개기를 멈추고 은수와 함께 로봇놀이를 함께 했다. 아주 재미있진 않았지만 은수와 나, 둘이 함께 존재하는 그 시간을 충분히 누렸다. 주변의 소리를 멈추고 내 곁의 소중한 아이의 소리를 귀기울인 소중한 시간이었다.


솔직히 아이와 함께 하는 시간이 반복되는 하루하루이다보니 소중한 마음을 매번 갖긴 어렵다.  아이의 성장은 눈에 띄게 보이지 않다보니 육아는 홀로 이 시간의 의미를 부여해야할 때가 많다. 그래서 가끔은 아주 우울하고 지루하다. 아이를 벗어난 무엇인가를 하면서 내 시간의 의미를 증명하려고 할 때도 많다. 잘 들리지도 않는 오디오북을 켜두고 책을 읽었다고 착각하는 것처럼 말이다. 하지만 정작 나의 시간을 일으켜세워주는 것은 '아이가 나와 함께 있다는 것이 행복하다.'여기는 마음이 내게 닿을 때다. 음악이 멈추고 아이의 목소리가 들리며 아이와 나의 존재가 만나는 순간. "엄마와 나, 둘만 있는 것 같아서 참 좋아."라고 말할 때였다.


그 날 이후, 음악을 듣지 않는 시간을 의도적으로 가진다. 아이들이 속삭이는 소리, 흥얼거리는 소리를 듣는다. 서로 다른 것을 하고 있지만 서로의 시간을 알차게 보내고 있는 이 시간의 주인공들을 보려고 한다. 그리고 가장 중요한 것은 지금 이 시간에 내 곁에 있는 너희들임을 기억한다.




2022-05 어느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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