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의 생각을 궁금해하는 마음에서 철학은 시작됩니다.

<우리 아이는 생각이 없다고 말하는 이들에게>

by 동그래

'우리 아이는 생각이 없어. 내가 시키는 대로 하는 게 좋은가봐.'

'우리 아이도 생각이 없어. 그래서 내가 말해줘야 해.'


엄마들 모임에 가면 이런 말을 종종 듣습니다. 그럴 때마다 '정말요? 정말 생각이 없을까요?'라고 되묻고 싶어집니다. 정말 생각이 없다고 생각하는 건지, 그렇게 생각하고 싶은 건지 그 말에 깔린 생각이 궁금해지기도 하고요. 예를 들어 학급에서 어떤 사건이 일어났다는 이야기를 들은 엄마가 하교한 아이에게 '오늘 학교에서 무슨 일 있었니?' 하고 묻습니다. 아이가 '별 일 없었어.'라고 말하고 방으로 들어가면 '학급에서 별 일 없었구나. 그 사건에 대해 우리 아이는 관련이 없고 생각이 없구나.'라고 여기면 될까요? 아이가 질문에 대해 대답하지 않으면 생각이 없다고 말할 수 있는 걸까요? 우리는 한 번 더 생각해봐야합니다.


잘 표현하지 않는 아이는 세 가지 경우일 때가 많습니다. 하나는 표현이 어렵거나 어색한 경우입니다. 대화하는 것이 익숙하지 않은 아이는 눈을 마주하고 이야기하는 자리 자체가 부담스러울 수 있습니다. 그래서 몰라요, 아니요, 라고 단답형으로 말하거나 아에 입을 닫고 있습니다. 그 때 그 아이는 생각이 없는 것이 아니라 대화가 어색한 것입니다. 두번째는 대화하기 싫은 것입니다. 질문에 답하고 싶지 않거나 답할 필요가 없다고 스스로 생각하는 경우입니다. 이 때 아이는 엄마와 대화하는 것이 싫어서 말을 안 하지만 친한 친구와는 신나게 말할 수도 있습니다. 마지막은 아직 생각이 정리되지 않았을 경우입니다. 한 사건에 대한 자신의 입장을 정리하지 못했을 때는 의견을 말하기가 어렵습니다. 생각중이라고 말하면 어떤 생각인지 꺼내보라고 보채거나 압박할 수 있기 때문에 입을 닫는 거지요. 이 세 가지 경우의 공통점은 대화할 준비가 되지 않은 것이지 생각이 없는 상태는 아닐 겁니다.


그 사람이 생각이 없다고 말하기 전에 그 사람의 생각을 궁금해하는 마음을 가지고 그 사람이 말할 수 있는 대화의 장과 시간을 먼저 마련해주는 건 어떨까요? 생각없는 사람은 (거의) 없습니다. 표현할 수 있는 마음 편한 공간과 기꺼이 내 생각을 들으려고 하는 사람만 있다면 언젠가 그 생각은 열어지고 보여질 것입니다.


어린이와 철학하는 시간은 어린이의 생각을 궁금해하는 것부터 시작합니다. 표현하지 못하고 꽁꽁 감춰진 생각, 다 영글지 못해 꺼내 보여주기 부끄럽다고 여기는 생각, 정답이 아닐 것 같아서 말하지 않을 거라고 하는 생각까지 기꺼이 듣고 싶다고 말하는 것부터 시작합니다. 그래서 아이가 생각이 없다고 생각하는 분들은 어린이와 철학을 할 수 없습니다. 어린이와 함께 철학하는 것은 아이들이 생각할 수 있고, 생각하고 있으며, 대화하며 더 나은 생각으로 함께 나아갈 수 있다는 믿음을 가졌다면 충분히 시작할 수 있습니다.



어린이와 철학하고 싶은 분들, 준비 되셨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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