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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동그래 May 15. 2023

할아버지 할머니는 이야기가 얼마나 많으실까!

11살 은호



가족여행에서 차를 타고 갈 때면 노래도 듣고 오디오북도 들었는데, 아이들이 가장 좋아하는 시간은 엄마 아빠의 어린 시절 이야기를 듣는 거다. "엄마 아빠 어릴 적 이야기해주세요." 라는 말을 5년 이상 듣다보니 이야기가 고갈되어 없던 이야기도 있는 것처럼 말해주는데 아이들은 사실여부를 떠나 그저 엄마 아빠가 나같은 어린 시절이 있었다는 것에 신나하며 즐거워했다. 어떤 날은 할머니 할아버지와 함께 여행을 갔었는데 은호가 "할머니 할아버지는 오래 살았으니까, 70살이시니까 얼마나 많은 이야기가 있을까? 다 듣고 싶어! 이야기해주세요!"라며 신나했다. 그런데 할아버지가 "우린 할 말이 없어." 대답하니 은호는 "어떻게 70년동안의 이야기가 없어요? 그건 말이 안 되요! 생각해보세요. 할아버지 어릴 때가 있었고 결혼 할 때가 있었고 우리 엄마를 낳았고 일을 했잖아요. 아무 거나 해주세요!" 라며 할아버지의 이야기를 꼭 듣고 싶다고 졸라댔다. 나의 아빠는 가만히 생각하시더니 오토바이 사고 났던 날, 그 때 죽었을 수도 있었는데 살아난 건 기적이라고 이렇게 살아서 손주들과 여행하고 있어서 정말 좋다며 신나게 말씀을 이어가셨다. 이야기꾼처럼 유창하게 말씀하진 않으셨지만 그 날을 회상하며 전해주시는 말씀은 나도 처음 듣는 이야기였다. 은호의 질문 덕에 알게 된 아빠의 이야기, 오늘이 기적이라며매사에 감사하며 사는 삶의 이유를 알게 되니 덩달아 행복해졌다. 할아버지에 이어 할머니는 어릴 적 자주 부르던 노래와 친구들이야기를 해주셨고 차 안에서 우리는 참 행복했다.


요즘엔 입으로 전해진 옛이야기들이 책으로 엮어져 나온다. 그러다보니 입으로 전해지는 구전동화가 사실상 없어지고 책의 정선된 언어로 표현되어 이미 굳어진 형태로 살아있는 입말의 맛을 잃은채 전해진다. 옛날 옛날에~하면서 시작되는 할머니의 이야기의 소멸 위기인 것이다. 아무리 글로 재밌게 적었다 하더라도 아이들은 살아있는 사람의 말로 전해지는 살아있는 이야기에 더 열광한다. 살아있는 할아버지의 옛날 이야기가 책보다 더 흥미진진하고 재밌나보다. 그렇게 전해진 이야기의 힘은 세대를 연결해주고, 서로를 이해하는 통로가 된다. 어쩌면 아이가 할아버지의 그동안 살아온 이야기"를 듣고 싶어하는 마음은 할아버지와 더 가까워지고 싶은 마음일지도 모른다. 그저 나를 귀여워해주는 할아버지를 인격적으로 알아가고 싶은 마음, 할아버지의 삶을 존중하는 마음일거다. 기꺼이 이야기를 듣고자 하는 아이에게 기꺼이 이야기를 꺼내는 어른의 마음이 닿을 때 어떤 일이 일어날까? 요즘 아이들이 듣는 귀가 없다고(경청하지 않는다고) 말하기 전에 어른들이 먼저 살아있는 이야기를 입으로 전해주고 너의 이야기도 듣고 싶다고 청해보는 건 어떨까? 이야기가 없다면 어떨까? 정말 살 맛 나지 않을 것 같다. 오늘 하루가 어땠는지 아이에게만 묻지 말고 어른들도 오늘의 일들을 아이에게 말해주자. 솔직히 이야기 없는 사람은 없지 않을거다. 무슨 이야기든 아이에게 먼저 들려주고 서로 이야기를 주고 받는 사이가 되면 좋겠다. 이야기가 흘러 흘러 가는 세상이 되면 좋겠다.




이야기로 연결된 사이, 서로의 이야기를 주고 받은 관계는 단단한 뿌리처럼 연결되어 새로운 이야기를 꽃피울 거다. 좀 더 따스한 관계를 만들고 싶다면 이야기를 만들고 이야기를 말하고 이야기를 듣자.



#아이에게배웁니다

#아이의말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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