몇 장의 종이에 사인을 하는 것으로 이십 년 직장생활을 끝냈다. 십여분 정도 소요되었다.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표현할 수 없는 섭섭함과 아쉬움이 밀려왔다. 백일도 안된 아이를 어린이집에 보내고 학교 방학이면 집 앞 백반집에서 점심을 먹이면서도 꿋꿋하게 버텨왔었는데, 둘째가 열 살이 되어 이제 혼자 밥도 할 줄 알게 되었는데, 여기서 멈추게 된 것이다. 지난 이십 년의 직장생활과 그 앞의 십여 년의 학창 시절이 다 사라져 버린 듯한 느낌이었다.
수고했다고 이제 건강만 챙기자고. 부모님과 남편은 나를 위로했다. 그래, 정말 수고 많았다.
대학시절 IMF를 겪었으나 운이 좋게 졸업 전에 취직을 했다. 마음 편하게 4학년 생활을 마치고 입사하여 정말 열심히 일했다. 처음 참석했던 워크숍에서 여자가 나 혼자 뿐이라 엄청나게 큰 숙소를 이용하며 선배들에게 미안해했었다. 결론이 나지 않은 채 끝난 회의인데 얼마 뒤에 해결책이 마련되고 공지가 되는 이해할 수 없는 상황을 몇 차례 겪은 후, 나는 회의가 끝나면 커피를 들고 선배들을 따라 흡연실에 갔다. 그 안에서 많은 의견이 조율되는 것을 나중에 알았다. 동기들과 시스템 접속방법, 선배들이 좋아하는 음식 등 정말 소소한 것들까지 나누며 서로 고마워했었고 새벽 5시까지 술을 마시고 8시에 사무실에 앉았다. 여자가 인정을 받으려면 남자들 세 배는 해야 한다는 말에 월화수목금금금 일하면서도 상사의 칭찬에 웃을 수 있었다. 시키는 일만 하면 안 될 것 같아서 시키지 않은 일까지 하다가 동기들한테 욕을 바가지로 먹기도 했다. 그 동기들은 대리 즈음에 퇴사를 했다. IT업체가 많이 생겨나면서 그리 옮겨가기도 했고, 공부를 하러 가기도 했다. 나는 내 자리를 지켰다.
계속되는 치료에 차도가 없고, 회사는 마냥 기다려줄 수 없기에 어쩔 수 없는 선택이었다.
초중고를 거쳐 대학, 직장생활을 하는 동안 나는 언제나 어딘가에 소속되어 있었다. 00 학교의 학생, 00사의 직원으로. 그런데 이제 소속이 없다. 자유롭고 홀가분하며 불안하고 걱정된다. 직장동료이기 전에 좋은 친구로 내 삶에 많은 영향을 준 선배, 동료들에게 감사드린다. 몇 분에게만 연락을 했다. 바쁘게 살아가고 있을 그들에게 좋지 않은 소식을 전하고 싶지 않았다. 나아서 연락드릴 날이 오리라 믿는다.
삶은 크고 작은 많은 선택들로 이루어지고 나는 오늘 어렵고 큰 선택을 했다. 마음이 공허해지며 몸에 힘이 빠지지만, 시간이 지나면 이 또한 추억이 될 것이다. 살아있음에 감사하며 일상을 보낼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