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 나쁘지는 않았다

by 정원

끝날 때까지 끝난 것이 아니다.

그렇다고

끝나지 않은 것을 붙들고

그보다 큰 많은 것들을 포기할 수 없다.

겪고 싶지 않은 것이나

그 마저도 경험이 되어

더 많은 이해와 감사로

삶을 풍부하게 하리라 믿는다.


치료에 지친 어느 날의 글이다. 지금도 입원 중이다. 이 치료가 언제 끝날지, 그 끝에 내가 살아 있을지 알 수 없으나 지금 내가 이 글을 쓰고 있다는 사실이 중요하다. 나는 현재를 살고 있다. 환자로 살아가는 것은 분명 어려운 일이나 그렇다고 불행하기만한 것은 아니다. 우리의 인생은 수많은 선택의 연속이며 내 마음이 평온한 방향을 향할 것인지 우울을 향해갈지 역시 나의 선택이다. 나는 주로 평안을 찾는 쪽을 택하고 있다.



과거와 이별하다

나는 대학 입학 전부터 아르바이트를 했고 졸업과 동시에 취직해서 쉼 없이 달려왔다. 회사 생활하며 대학원을 졸업했고, 아이를 낳고 출산휴가 3개월 후 회사로 복귀했다. 그랬던 내가 아프고 나서 드디어 쉬고 있다. 아무것도 할 수 없는 날들을 보내며, 나를 만나기 시작했다. 나의 과거는 찬란했으나 창피했으며 뿌듯했으나 힘들었다. 그중에 자만, 슬픔, 좌절, 분노를 소환해 내고 보내주었다.

피아노를 전공하고 싶었으나 포기했던 일, IMF를 맞아 학자금 대출에 아르바이트로 허덕이던 일, 신입사원 첫 출장지 회식자리에서 손목을 잡혔던 일, 회식 때 노래방에서 상사가 도우미를 불러 도망 나온 일, 결혼을 위해 가족과 대립했던 일, 엄마가 되고 회사와 집으로 출근하며 하루 18시간씩 근무했던 날들, 암 진단을 받던 날과 재발/전이 판정을 받던 날 등.


이런 일들을 하나하나 떠올리며 그때의 나를 위로하고 그것들을 놓아주었다.

아들과 화해하다


전이암 판정을 받은 후 아들에게 미안하고 고맙다고 했다. 엄마도 엄마가 처음이라서 잘 몰랐다고. 책도 많이 보고 강의도 들으며 나름대로 공부하고 노력했지만 아들 입장에서 생각하고 아들의 마음을 이해하려는 노력이 부족했다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잘 자라주어 고맙다고. 아들 역시 고맙다고 아프지만 말라고 했다.


남편은 사춘기 아들은 그냥 두어야 한다고 했다. 하지만 가만 두면 게임하는 아이를 나는 보고 있을 수가 없었다. 그런데 환자가 되고 나니, 일단 내 몸 챙기느라 여력이 없고 또 내가 스트레스를 받지 않기 위해 아들 방 문을 열지 않게 되면서 드디어 아들을 가만 두게 되었다. 더해서, 아들을 어른처럼 대해주기 시작했다. 소소한 집안일을 상의하고 어른들끼리 이야기하던 내용들을 조금씩 공유하고 의견을 구하기도 했다. 내가 관리하던 아들의 통장을 넘겨주고 용돈을 온라인으로 송금했다. 용돈을 일주일 만에 다 쓰던 아들이 적금을 들고 돈을 관리하기 시작했다. 그렇게 천천히 우리의 관계는 회복되었다.


사람이 가려지다

사회생활을 하며 인맥은 점점 더 넓어졌다. 늘어나는 지인만큼 마음이 풍요로워지지는 않았다. 사람에 지쳐가던 때 암이 찾아왔다. 치료를 받으며 서로 안부를 묻는 상대가 줄었다. 회사에서 바쁘게 일하고 있을 그들에게 먼저 연락하기도 쉽지 않았고 그들도 마찬가지였을 것이다.


그런데, 신입 때부터 오래 알고 지낸 선배님 몇 분이 꾸준히 응원을 보내주셨다. 언제부터인가 사무실에서 인사만 하던 사이가 되었는데, 응원의 메시지와 책을 보내주셨다. 집 앞으로 찾아와 차를 함께한 분도 계셨다. 작년부터는 정말 소수의 사람들과 일상을 나누고 있다. 서로의 이야기를 들어주고 응원하며 마음을 나눌 수 있는 사람. 그렇게 자연스레 사람이 정리되었다.


딸의 시간을 함께하다

딸이 6살 때 암 판정을 받았다. 병원을 자주 가고 집에서 누워있는 시간이 많았지만 그럼에도 딸아이를 가까이서 오래 볼 수 있어 좋았다. 아침마다 손을 잡아끌며 어린이집에 데려다 주기 바빴었는데, 등원 길에 하늘과 꽃도 보고 함께 그네를 타기도 했다. 어느 날은 모자 쓰는 것을 깜빡하고 민머리로 아이 손을 잡고 나갔다. 모자를 가지러 돌아서는데, 딸이 엄마는 머리카락이 없어도 너무 예쁘다며 그냥 가자고 했다.


함께 책을 읽고 아이가 그림을 그리고 노는 모습을 여유롭게 바라볼 수 있게 되면서 아이가 무엇을 원하는지 아이 입장에서 생각하게 되었다. 그리고 아이와 함께 하는 시간이 쌓일수록 아들에게 미안해졌다. 이 많은 일들을 혼자 하느라 애를 쓰며 때로는 힘들고 외로웠을 아들.


아이가 초등학교에 입학하자 이전과 다른 많은 일들이 생겼다. 엄마가 아프다 보니 등하교 및 준비물 챙기기 등을 아이 혼자 하는 일이 많았다. 하지만 그 모습을 가까이 지켜보며 응원하고 안아주고 아이의 이야기를 들어줄 수 있었다. 지금도 딸의 일상을 나누는 것 자체가 내게는 힘이 되고 있다.


원하는 것을 하다

남편이 운동가는 시간에 일어나 차를 마신다. 기도와 성경필사를 한 후 가계부 정리, 일기, 독서를 한다. 아이들 밥을 챙기고 영어 등 하고 싶었던 공부를 하고 산책을 한다. 정신없이 바쁘게 보내던 일상과 이별하고 이런 차분한 날들을 보내고 있다. 과거, 은퇴 후 여유롭게 살고 싶다며 꿈꾸던 그 일상을 보내고 있는 것이다. 물론, 몸 컨디션에 따라 많은 제약이 있다. 몸이 너무 힘들어서 아무것도 못하는 시간들도 많지만 소소한 일상을 즐길 수 있는 시간이 조금씩 늘어나고 있다.


좋은 일이 꼭 좋지도 나쁜 일이 반드시 나쁘지도 않다는 것을 살면서 터득하는 중이다. 몇 년째 암 치료로 고생 중이나 그 시간들이 다 나쁘지는 않았다. 오히려 가족과 함께 따뜻한 순간들이 많았다. 이 따뜻함이 지속되도록 내 삶을 이어가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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