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암치료는 어렵다

by 정원

항암치료의 종류는 다양하다. 개인에 맞는 항암제를 만들어 투여하는 개인 맞춤형 치료를 받아보고 싶었으나 병원문턱을 넘지 못했다. 치료 가능한 A병원에 문의를 했으나, 이미 다른 병원에서 수술과 치료를 받은 환자는 받아줄 수 없다고 했다. 나는 삼중음성이기에 암세포만 공격하는 표적치료도 불가능했다. 얼마 전, 삼중음성 유방암 표적 치료제인 린파자(올라파립)가 승인되었으나 당시 나는 폐 전이로 치료받던 중이라 소용없었다. 2016년, 내가 처음 항암치료를 시작했을 때는 이러한 치료제가 없었다. 그래서 나는 암세포와 정상세포를 함께 공격하는 항암제를 썼고 그 마저도 3개월마다 검사를 하고 약물을 바꿔가며 나에게 맞는 것을 찾는 방식의 치료를 받았다.


답을 모르는 상태에서 이런저런 실험을 하여 답을 찾아가는, 환자가 실험대상인듯한 이런 치료는 그야말로 답답하고 힘겹다. 2016~2018년에는 3주 간격으로, 2019~2020년에는 1~2주 간격으로 치료받았다. 그 외에 4번의 수술과 방사선 치료도 있었지만 나는 항암치료가 가장 힘들었다.




속이 메슥거린다. 먹을 수 있는 것이 별로 없다. 무언가 먹고 싶어 남편이 준비해 주면, 냄새를 맡고는 못 먹겠다 하는 등, 입덧과 비슷한데 아이가 아닌 암덩어리를 품고 있었다. 병원에서는 토스트와 식사대용 음료를 추천했고 다행히 토스트는 입에 맞았다. 정제 탄수화물이 좋지 않다는 사실을 알면서도 버텨내기 위해 먹는 현실은 절망적이었으나 그래도 머라도 먹고 움직일 수 있다는 사실에 감사했다. 먹지는 못하는데 살은 찌고 발바닥까지 퉁퉁 부어 땅을 딛지 못하고 마치 둥둥 떠다니는 기분이었다. 못 먹는데 살이 찌는 이유를 물으니 주치의는 스테로이드제의 영향이며 누워있는 시간이 많기 때문이라고 했다. 걸어야 했다. 그런데 발이 부어있으니 신발은 맞지 않았고 발톱은 시커멓게 되어 빠질 듯 아팠고 발바닥은 남의 것 같았다. 기를 쓰고 움직이다 쉬다를 반복했다. 발톱은 아직도 완전히 회복되지 않았다.


말초신경에 이상이 생겨 손발이 저리고 아팠다. 손이 뭉그러진 듯해서 일기마저 쓸 수 없는 날도 있었다. 그러다가 눈이 흐릿해지고 진물처럼 자꾸만 눈물이 났다. 두피에 여드름이 난 듯 울긋불긋해지고 가려웠다. 나에게는 항암치료 부작용 중 가장 별것 아닌 것이 탈모였다. 모자를 쓰면 그만이었으나, 다른 부작용들은 추가로 약을 먹고 그 약은 또 다른 부작용을 낳는 악순환이었다. 그 밖에도 기립성 저혈압, 요실금, 두통 등의 부작용이 있었다.


수술부위인 가슴과 어깨, 팔의 통증은 평생 달고 살아야 하는 것 같다. 치료가 끝난 지금도 그 통증은 계속되어 가끔씩 잠들기 전 진통제를 먹는다. 치료를 받으면서도 내게 맞는 항암제를 찾을 수 있을지, 또 완치가 가능한 것인지 답답한 마음에 무너졌다 일어나기를 반복했다. 처음 암 진단을 받았을 때, 5년만 지나면 완치 판정을 받을 수 있다는 희망이 있었다. 하지만 재발, 전이를 겪으며 지난 5년간 치료를 받다 보니 이제 완치의 희망보다는 그저 암세포와 함께 하되 나의 면역력이 그들을 이기는 상태를 유지하기만을 바란다.




지나고 보니, 몇 가지 아쉬움이 남는다. 스트레스받지 않고 토스트를 먹고 두 치수 큰 푹신한 신발을 사서 두꺼운 양말을 신고 걸었으면 더 나았을 것 같다. 양말 자국 위로 불룩 튀어나온 발목은 걷고 난 후 따뜻한 물에 담그고 발을 높게 올려 혈액순환을 시켜주고, 그래도 안되면 그냥 두면 되는 것인데 말이다. 울룩불룩 엠보싱 몸매는 나만 보면 그만이니.


그리고 가장 중요한 것은 의료진에 저용량 항암치료를 요구하고 표준치료에 대체의학을 더했을 것이다. 저용량 치료는 부작용이 덜 해서 간헐적 단식, 저탄수화물 식이 등을 시도할 수 있다.


아직 끝나지 않았다. 이 시기가 지나고 회복기를 거쳐 새로운 삶이 시작되기를 희망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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