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2년 1월 중순이 지났다. 투병 중일 때는 하루가 한 달처럼 느껴질 때도 있었으나, 이후로는 시간이 너무 빨리 가고 있다. 두렵다.
20대에는 꿈을 꾸었고 30대에는 그 꿈을 실현할 수 있을 것 같았다. 뭐든 할 수 있을 것 같았고 자신감이 넘치다 못해 오만해지기도 했다. 그리고, 40대의 시작과 함께 투병생활이 시작되며 삶의 전환점을 맞았다. 홀로 고요히 돌아보고 반성하고 생존을 위해 한발 한발 나아가며, 죽음에 대한 두려움과 삶에 대한 희망이 동전의 양면처럼 느껴졌다. 어느 면을 내 눈앞에 보이게 할 것인지는 나의 선택이라 여겼다.
실패에 대한 두려움, 죽음에 대한 공포, 타인의 시선에 대한 의식, 나도 모르는 부정적 무의식은 호시탐탐 나의 몸과 마음을 갉아먹으며 그 세력을 확장시키려 한다. 그들에게 포위당해 우울해지거나 무기력해진 적도 있으나 그럴 때면 나의 동굴을 찾아 나를 지치거나 멈추게 하는 것들을 돌아본다. 생각한다. 삶의 의미, 목적을 떠올리면 그것들을 다짐했던 순간의 의지와 그 의지를 기반으로 실행에 옮기던 용기가 되살아 난다. 그렇게 내게 부정적인 영향을 주는 의식을 밀어낼 수 있었다. 그렇게 고요해지는 대신, 크게 기쁘거나 크게 슬픈 일들이 점점 줄어들었다. 타인의 시선에서도 많이 자유로워졌다.
표준치료가 종료되고 일상을 회복하고, 다시 일을 시작하고 기본학교에서 공부를 하며 고요했던 마음에 동요가 일고 있다. 나를 들여다보고 내가 가고자 하는 방향과 해야 할 일을 고민하고 실천하는데 집중하는 힘, 에너지를 회사와 학교에 쓰기 시작하며 흔들리고 있다. 사람과의 접촉면이 늘면서, 내가 바라지 않는 나의 모습이 튀어나오기도 하고 타인의 행동 혹은 시선에 불편함을 느끼기도 한다.
새로운 시도로부터 얻는 것과 잃는 것이 있으며 그것들이 뒤섞이고 내 안에서 물리적, 화학적 작용을 하여 좋은 에너지를 만들어 이전과 다른 나로 계속 변화해 나가야 한다. 그런데, 내가 나아지고 있는 것인지 그 반대인지 혹은 상승을 위한 답보상태에 놓인 것인지 알 수가 없다.
내가 사랑하는 이 나라에 대한 답답함과 기업이 놓인 현실에 대한 안타까움은 더 나은 미래를 위해 반드시 필요한 현실인식이다. 그런데 이러한 현실인식과는 결이 다른 두려움이 밀려오는 중이다.
이대로, 아무것도 이루어놓지 못한 채 삶이 끝날까 두렵다. 내가 살던 세상보다 더 나은 세상을 아이들에게 물려주고 싶었는데, 그들이 사는 세상이 지금보다 더 나빠질까 두렵다.
내 삶의 질과 양이 확대되는 과정에서 자연스럽게 일어나는 현상으로 받아들이고, 이 두려움을 안고 그 실체에 대해 생각하고 극복하는 노력을 해야 한다. 상승을 위한 답보상태일 것이라 믿고 싶으나 아닐 수도 있다는 것을 인정하고 나를 들여다본다. 과거와 달라진 점은, 이런 동요 속에서도 일상의 루틴을 지켜간다는 것이다. 루틴이 무너지지 않으면 돌아올 수 있고 나아갈 수 있다는 믿음이 생겼다. 아픔과 배움이 준 선물이다.
내 몸에는 암세포가 있다. 언제 다시 똬리를 틀지 알 수 없다. 나는 그저 나의 면역력이 그들을 이겨내어 그들과 공존하며 삶을 이어가기를 바란다. 마찬가지로, 의식과 감정은 불쑥 찾아온다. 나의 생각이 그들보다 강해져서 부정적인 의식과 감정이 제대로 힘을 쓰지 못하도록 하고 싶었다. 그런데, 이러한 부정적 의식과 감정, 두려움마저도 나를 앞으로 나아가게 하는 에너지가 될 수 있지 않을까? 이런 생각을 하는 중이다. 두려움과 희망은 동전의 양면 같은 것이니 두려움이 커지며 동전이 커지고 그 동전을 뒤집기만 하면 되지 않을까? 그리고 그것을 뒤집는, 그러니까 부정적인 것 마저도 에너지화할 수 있는 것은 생각과 용기가 아닐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