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프지만 괜찮아

by 정원

목소리는 너무 좋다. 얼굴만 보면 전혀 환자 같지 않아.


투병 중에 내가 많이 듣던 이야기다. 걱정을 한 아름 안고 지내던 주위 사람들이 막상 통화를 하거나 얼굴을 보면 걱정이 덜 된다고 했다. 치료 가능 여부를 알 수 없는 전이암 치료를 받으면서 나는 일상을 살아갔다. 에너지가 떨어질 때는 쉬었고, 움직일 수 있을 때는 내게 에너지를 주는 것들에 집중했다. 그래서 아프지만 괜찮았다.


움직였다.


병원에서도 나는 독서, 낙서, 영어공부, 병동 걷기 등 내가 할 수 있는 것들을 했다. 물론, 수술 후에는 아무것도 하지 못했지만 항암치료차 입원했을 때는 달랐다. 항암치료 직후에는 많이 힘들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 약 기운이 빠지면 살만해진다. 그럼 다시 항암치료차 입원하는 날이다. 입원 당일, 항암 전까지의 컨디션은 괜찮다. 나는 그 귀한 시간을 그냥 보낼 수 없었다. 입원 전 검사(엑스레이, 심전도, 혈액)를 마치고 입원 수속을 기다리며 근처 카페에 갔다. 며칠 마시지 못할 커피를 한잔하며 그 날의 단상을 적기도 했고 가끔은 친구를 만나기도 했다. 온전히 나를 위해 보내는 시간은 내게 에너지를 주며 항암치료에 대한 긴장감을 풀어준다.


움직일 수 있을만할 때는 움직였다. 내가 열심히 걸어서 꼭 나아야겠다는 마음으로 걷기보다는 그냥 마음을 비우고 걸으려 했다. 코로나 이후에는 집과 병원에만 있었는데 그 한정된 공간에서도 움직였다.


궁금증을 풀었다.


입원 전에 의사에게 물어볼 내용을 미리 정리했다. 주치의는 잠깐 왔다 가는데 얼떨결에 궁금한 사항을 묻지 못하게 되면 간호사나 담당의 통해서 질문하게 되고 그렇게 전달 전달해서 받는 대답은 만족스럽지 못할 때가 많았다. 그래서 미리 적어두고 질문했다.


남편과 함께 공부했다. 환자가 혼자 공부하는 것은 쉽지 않다. 검색하고 정리하고 또 정보를 찾는 과정은 에너지 소모가 크고 머리도 아프다. 남편은 정말 열심히 찾고 내가 알아야 할 사항을 출여서 알려주었다. 벤다졸 요법과 저탄고지 식이요법을 시작하기 전에는 더 많이 공부했다. 궁금한 사항이 해소되고 내가 연구한 결과에 따라 움직이면(보조제 복용 등) 몸은 물론 심리적 안정에도 도움이 된다.


인생을, 하루를 돌아보았다.


앞만 보고 달리던 내게 몸이 아픈 시간은 뒤를 돌아보게 해 주었다. 나의 삶을 돌아보고 감사했고 반성했으며 더 나은 미래를 위해 달라졌다. 물론, 변화를 다짐하고 실천하다가 다시 예전으로 돌아가기도 했지만 살고 싶다는 바람은 나를 잡아 주었다. 책상에 앉을 수 있는 날은 일기를 썼다. 말초신경에 문제가 생겨 손이 뭉그러지는 듯하고 손끝에 힘이 들어가지 않아 펜을 잡을 수 없는 날들도 있었다. 그럴 때는 그냥 누워서 하루를 돌아보았다. 하기로 한 것을 못해서 어떡하지? 하는 자책을 하기보다는 내가 일상을 보냈다는 사실에 감사했으며 간절히 원하면 온 우주가 도와준다는 연금술사의 문구를 떠올렸다.


웃고 울었다.


가족과 함께 시간을 보내며 웃었다. 유머감각 넘치는 남편과 듬직한 아들, 귀여운 딸이 있어 웃을 수 있었다. 친구들과 시시콜콜한 일상과 마음을 나누며 웃었다. 어머님과 통화하다, 남편과 대화화다, 영화를 보다, 어떤 때는 그냥 불쑥 울기도 했다. 나는 내 안의 감정을 표출하는 것을 꺼렸었다. 감추고 드러내지 않고 포커페이스 하는 것이 사회생활에는 적합했겠으나 환자로 살아가는 데는 울기도 하며 감정을 끄집어내어 풀어주는 것도 필요했다. 가족과 친구의 위로로 에너지를 얻었다.


기도하고 명상했다.


아침 기도, 저녁기도, 묵주기도를 했고 여의치 않은 날은 그냥 누워서 주님의 기도를 했다. 예의가 아니나 누워서 성호경을 긋기도 했다. 처음에는 나를 위해서 기도했으나 시간이 지나면서 가족, 친구, 지구 상에 고통받는 아이들과 사회적 약자를 위해서도 기도했다. 마음의 위안이 되었다. 혼자 있을 때 가만히 눈을 감았다. 차를 마시다가, 책을 읽다가 혹은 그냥 눈을 감았다. 그리고 내 안이 잠잠해 지기를 기다렸다. 잘 되는 날도 그렇지 않은 날도 있었으나 개의치 않았다. 설명하기 어려우나 그냥 하다 보면 마음이 편안해지는 지점들이 있고 그것들이 쌓여 에너지가 되었다.




처음 암 진단을 받았을 때부터 혹은 재발 이후 라도 이렇게 살았다면 전이가 되지 않았을까? 그럼 회사에 복귀하지 않았다면 어땠을까? 아무도 알 수 없다. 복귀 후 위에서 나열한 루틴이 많이 무너진 것은 사실이나 그것이 전이에 직접 적인 영향을 준 것이라는 의학적 증거는 없다. 다만, 이제는 이런 루틴을 지키고자 한다. 열심히 하지 않고 매일 그냥 하려 한다. 아직도 열심히 하겠다는 말을 무의식 중에 내뱉지만 그럴 때마다 친구들과 남편은 열심히 하지 말고 그냥 하라고 한다. 제발 뭐든 열심히 좀 하지 말라는 말에 나는 웃는다.


어려서부터 뭐든 열심히 하라고 배웠고, 사회에서는 남자들 3배는 해야 일 좀 하는 여자로 인정받는다고 배웠으니 이 열심히 병이 쉽게 고쳐지지 않는다. 그리고 그 열심히 병 덕분에 이만큼 살고 있다는 사실 역시 부인할 수 없다. 열심히 살다가 재물을 얻고 건강을 잃었지만 세상의 모두는 각자 나름의 아픔과 기쁨을 안고 살아간다. 나 역시 그저 산다. 움직이고 웃고 울고 기도하고 명상하고 하루를 돌아보며 에너지를 얻어 그 에너지를 쓰며 삶을 이어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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