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브런치북 01화

빗자루

by 정원

며칠 전 그릇을 깼다. 싱크대 가장 높은 곳에 있는 그것을 조심스럽게 꺼냈으나 놓쳤다. 스텝 스툴(주방 보조 사다리)을 옆에 두고 나는 왜 그랬을까? 청소기를 돌리기에도, 손으로 줍기에도 애매한 상황이었다.


늘 사용하던 청소도구들 속에서 답을 찾지 못한 나는 베란다 구석에 세워진 빗자루를 들었다. 조심스럽게 쓸어가는데 생각보다 말끔하게 치워졌다. 이 집에 이사오던 날 사용한 것이 전부였던 그 빗자루는 가볍고 전기를 사용하지도 않는다. 내친김에 부엌 전체를 쓸었다.


유선 청소기를 쓰다가 남들 다 쓴다는 무선 청소기를 샀다. 그런데 무선이다 보니 헤더부분에 모터 등 각종 자재들이 붙어있어 팔이 금세 부어버리는 내겐 불편했다. 그래서 오래된 청소기를 사용하고 있다. 나의 청소도구 안에 빗자루는 없었다. 잊혀져가던 그것을 오랜만에 쓰는데 기분이 묘했다.


10년 전이었던 것 같다. 홍보 부서 모 대리가 시스템을 만들어 달라고 요청했다. 임원 몇 분에게 보내는 메일 서비스를 자동화해 달라는 것이었는데 신문기사와 보고서들을 스크랩해서 격주로 메일을 보내는 업무였다. 요청자의 작업 내용을 분석해보니 사람이 기사를 고르고, 메일 수신자 입장에서 기사를 요약하고 일부 재 구성한 후 메일을 발송하는 일이었다. 기사를 스크랩하거나 수정할 수 있는 소프트웨어는 이미 사용 중이었고 사내 인프라로 메일 발송 기능도 이미 제공되고 있는데 한 사람이 몇 명에게 보내는 그 작업을 위해 애플리케이션을 만들고 그 관리를 위한 자원(IT인프라, 인력 등)을 투입하는 것은 아니라 판단하고 반대했는데, 위로 위로 보고를 해서 결국 지시에 의해 만들어주었다. 그리고 몇 달 뒤 요청자마저도 쓰지 않는 것을 확인하고는 폐기절차를 밟았다.


깨진 그릇을 빗자루로 쓸어 담는데 왜 그 일이 떠올랐는지 모르겠지만 무선 청소기를 두 번이나 사고 무게감을 느껴봐야 한다며 매장에 가서 이것저것 들어보던 내가 오버랩되며 웃음이 났다. 그 날은 싸고 가볍고 성능 좋은 빗자루로 청소를 했다. 그리고는 예전보다 디자인도 예쁘고 먼지도 덜 나며 성능도 좋다고 알려진 실리콘 빗자루를 주문했다. 아직 받지 못했는데 기다려진다.


그날 이후로 베란다와 현관 청소는 빗자루를 사용한다. 그리고 새 매거진도 만들었다. 내 주위의 소소한 어떤 것에 대한 이야기로 채워가려 한다. 그릇이 깨져서 다행이다.

keywor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