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매거진 독서머신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이태원댄싱머신 Aug 13. 2019

이 책을 안사는 것은 불가능

 _조르주 바타유 「불가능」

이 나쁜놈들. 책을 세트로 이쁘게 만들어서 세트로 살 수밖에 없다. 무슨 책인지도 모르고 그냥 막 샀다. 심지어 이 시리즈는 비닐이 쌓여 있어서 내용을 훑어볼 수도 없다.



「에로티시즘」이라는 제목의 책이 너무 유명했고, 살짝 훑어본 적이 있어서 저자는 잘 알고 있었다. 사랑과 죽음, 욕망과 타락에 대해 이야기하는 작가다.


이 책은 소설이다. 소설이긴 한데, 이건 어떻게 읽어야 하는지 감이 안와서, 그냥 소설이라는 말밖에는 할 말이 없다. 저자가 느끼는 절망과 고통에 대해서는 잘 알 수 있는 소설이다. 하지만 딱히 서사라고 할 게 없다. 대부분이 저자가 느끼는 좌절을 묘사하는 것으로 채워진다.


재미있다. 이렇게 토해내듯이 글을 뱉어놔도, 책이 팔리고 유명해지는 당시의 시대상은 무엇일까. 이런 글에 공감을 할 수 있는 사회적인 분위기가 있었을까. 아니면 어차피 소수의 지식인들만 책을 읽는 형편이었으니, 이정도의 감성은 지식인으로서 가져야 하는 것일까. 그게 궁금했다.


그러면 지금처럼 전혀 공감 안가는 이야기를 이쁜 표지로 감싸고 세트로 구성해서 교보문고에 올려 놓으면, 사람들이 삼성페이로 결제하고 책장이 세트로 채워지는 지금의 시대상은 무엇일까. 20퍼센트의 호구가 80퍼센트의 책을 사서 인테리어를 꾸민다는 파레토의 법칙*이 대세인 걸까. 이게 궁금하다.


 * 파레토의 법칙 : 이탈리아의 경제학자, 빌프레도 파레토가 주장한 법칙이다. 20퍼센트의 이탈리아인이 이탈리아 국부의 80퍼센트를 차지하고 있다는 이야기에서 나왔다. 좀 더 정제된 용어로 말하면, 20퍼센트의 원인이 80퍼센트의 결과를 만들어 낸다는 걸 의미한다.


아무리 공감이 안 갔다고 하더라도 안 좋았던 부분을 소개할 수는 없으니 깊은 인상을 남긴 문장들을 소개한다. 사실 각 문장으로 따지면 기억에 남는 문장들이 많다. 아주 자극적이고 허세로 가득 찬 느낌이다. 유세윤이 썼다고 하면 그러려니 하는데 나름 시대의 대문호다.


허공에 휘둘리는 빗자루처럼 행복하다.
달 밝은 밤, 부상자들이 울부짖는 들판 위를 부엉이가 비행한다.
그렇게, 나는 한밤중 나 자신의 불행 위를 날아다닌다.

나는 불행한 남자, 외로운 불구자다. 나는 죽음이 두렵다. 나는 사랑을 하고, 또 제각각 다른 방식으로 고통을 겪는다. 그럼 나는 나의 고통을 방치하고는, 고통이 거짓말을 하고 있다고 말한다. 밖은 춥다. 침대 속에서 내 몸이 왜 펄펄 끓는지 모르겠다.
나는 B의 부재를 사랑할 정도로, 그녀 안에서 나의 불안을 사랑할 정도로 B를 사랑한다.
나는 아이가 우는 것처럼 글을 쓴다. 아이는 자신이 눈물을 흘리는 이유를 서서히 포기하기 마련이다.
날이 저문다. 불이 죽는다. 추위로 인해 손을 집어넣어야 하기에, 나는 이제 곧 글쓰기를 멈추어야겠다. 걷혀진 커튼 사이, 유리창을 통해 나는 눈의 적막함을 가늠해본다.


그런데 술 먹고 보면 또 괜찮을 때도 있다. 맥주보다는 위스키에 어울리는 책이다.


★★★★★ 별을 하나만 주고 싶지만, 그러면 나만 이해 못한 것 같으니까 울며 세 개 준다. 인테리어용으로 최고.

매거진의 이전글 마음도 눈처럼 감았다 떴다 할 수 있다면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