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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태원댄싱머신 Aug 28. 2019

을과 을

_김민섭 「대리사회」

다툼이 벌어지면 그게 어떤 싸움이든 간에, 결국은 을대 을의 싸움으로 변질되는 경우가 많다.


지금은 택시 업계와 카카오가 전쟁을 치르고 있지만, 얼마 전에 카카오와 대립하던 시장은 대리운전이었다. 카카오는 택시에 앞서 먼저 대리운전 시장에 진출했다. 처음에 대리기사들은 반겼다고 한다. 매출의 30퍼센트 이상을 수수료로 내는 관행이 불합리하다고 느꼈기 때문이다. 카카오는 수수료가 20퍼센트 정도가 되었다고 한다. 당연히 전쟁이 시작되었다.


처음에는 갑대 갑의 싸움인 줄 알았던 게, 갑과 을의 싸움이 된다. 기존 업체에서 카카오 기사들을 색출하고, 페널티를 주는 것이다.


어느 대리기사는 카카오 콜을 받고 손님에게 달려갔더니 기존 업체의 관계자가 그 자리에 있었다고 한다. 배정된 기사의 얼굴과 이름이 공개되는 시스템을 악용한 것이다. 그는 그 자리에서 카카오에서 탈퇴할 것을 종용받았고 그에 따랐다. 그때 그가 느꼈을 모욕감을 나는 감히 짐작할 수가 없다.
 _김민섭 「대리사회」


그러다가 상황은 을대 을의 전쟁이 된다. 카카오 기사들과 기존 업체에서 일하는 기사들 사이에 갈등이 생기게 된다.


자본을 가진 갑과 갑의 전쟁에서 피해자가 된 것은 결국 노동의 주체인 '을'이었다. 너와 나를 구분하고 어느 편에 서야만 했으며, 그렇게 자연스럽게 '갑의 대리인'으로서 참전했다.
 _김민섭 「대리사회」


위 글의 저자 김민섭은 「나는 지방대 시간강사다」라는 책을 썼다. 비정규직 교수의 눈으로 본 대학의 불합리한 점을 고발하는 책이다.


나는 '지방시'라는 글을 세상에 내놓으며 계속 대학에서 강의하고 연구하겠다고 마음먹었다. 사실 그러기 위해서 쓴 글이었다. 교직원이나 보직 교수가 그것으로 트집을 잡으면 그와는 싸워나가고자 마음 먹었다. 하지만 가장 먼저 나를 찾아온 것은 동료들이었다. 같은 연구실의 연구자들이, 같은 교양과목을 강의하던 시간강사들이, 왜 자신들을/대학을 모욕했는지 나에게 물었다. 내 앞을 막아선 것은 갑이 아닌 을이었다. 대학의 구조에 문제를 제기한 순간부터 나는 더 이상 '우리'가 아니었다.
 _김민섭 「대리사회」


한일 양국 간의 갈등이 커지고 있다. 앞으로 양국의 을들이 얼마나 많은 피해를 입게 될까 걱정이다.


그때나 지금이나 민주는 가만히 을을 바라보고 을이 무슨 이야기를 하는지를 들었다. 달라진 것이 있다면 이곳에서 을의 이야기를 듣는 것이 훨씬 더 힘이 든다는 것이었다.
 _박솔뫼 「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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