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에게 바라는 것은 그것뿐이다
아이들에게
어떤 말을 해야 할까. 고민을 많이 했다. 어떻게 사는 게 좋다고 말할 수 있을까.
타인을 위하는 선한 삶을 살라고 말하고 싶었다. 그런데 남을 챙기는 사람들이 정작 자신의 몸을 해치는 경우를 너무 많이 봐왔다. 콩이 하나 남았을 때도 그걸 잘라 나눠먹는 사람이 있다곤 하지만, 그냥 네가 먹어라. 작은 콩이라도 먹고 건강하게 자라라. 먼저 건강해지고, 남들은 나중에 챙겨라.
정의로운 사회를 만드는 삶을 살라고 말하고 싶었다. 그런데 정의로운 사회는, 오기는 하지만, 아주 천천히 온다. 네가 그 빛을 누릴 수 있다면 좋겠지만, 보통 가장 어두운 곳에서 쓸쓸히 죽어가더라. 훗날 의미 있는 평가를 받을 수 있다면 다행이다. 오히려 갑의 대리인으로써 다른 을들을 착취하는 상황에 안주하는 것이 더 쉽다. 그러한 상황에서 폭력을 거부하는 것만 해도 대단한 용기가 필요한 일이다.
성공해서 남들의 부러움을 사는 삶을 살라고 말하고 싶었다. 그런데 나를 포함해서, 내 주변의 보통 사람들은 성공한 사람들을 싫어하더라. 앞에서는 실실 웃지만, 뒤에서 칼을 던진다. 성공할 때 박수 받고, 나락으로 떨어질 때 더 큰 박수를 받는다. 그냥 조용히 행복하게 살아라.
가장 잘하는 일을 찾아서 유능한 전문가가 되라고 말하고 싶었다. 하지만 전문가가 되고 싶어 하는 사람은 많지만, 그 꿈 때문에 많은 사람들이 연습생으로 살아가더라. 네 삶은 그 자체로 완성이다. 너는 언제까지나 준비만 하면서 기다리지 말아라.
소소한 행복에 만족하는 사람이 되라고 말하고 싶었다. 지속적인 불황에는 큰 꿈을 꾸지 못하기 때문에, 모든 사람이 작은 행복만을 찾는다. 유행을 좇는* 사람은 쉽게 불행해진다. 분위기에 너무 휩쓸리지는 말아라. 행복에는 의미가 없다.
바람에 흔들리지 말고 무소의 뿔처럼 혼자서 가라고 말하고 싶었다. 남에게 의지하는 행복은 쉽게 흔들리기 때문이다. 하지만 사람은 약한 존재더라. 홀로 지내는 기간을 오래 버티는 것은 쉽지 않다. 혼자 고깃집 가는 것도 내공이 필요한 일이다. 요즘 편의점 도시락 잘 나온다. 밥은 혼자 먹더라도 말동무는 있으면 좋겠다.
그 어떤 이야기도 쉽게 할 수가 없다. 모든 사람들이 부족해 보이고 불쌍해 보인다. 나도 마찬가지다. 내가 할 수 있는 말이라고는, 둘 중 하나일 뿐이다. 나처럼 살아라. 혹은 나처럼 살지 말아라.
나처럼 살아라. 하고 싶은 것만 하고, 하기 싫은 것은 하지 말아라. 세상은 재미있는 일들로 가득 차 있고, 사는 게 즐거울 거다.
아니다. 나처럼 살지 말아라. 나는 항상 도망치며 살았다. 혼자 행복하다는 것은 언제나 죄책감을 동반하는 일이다. 나만 이렇게 행복한 것은 오로지 운이 좋았기 때문이다. 우연히 배를 곯지 않았고, 우연히 배에 타지 않았다. 우연히 공부를 하고 글을 쓸 수 있었다. 아슬아슬한 삶이지만, 감사하며 살고 있다.
너도 나처럼 행운이 함께 했으면 좋겠다. 생즉고라고 하지만, 그래도 운 좋게 행복하게 살았으면 좋겠다. 너에게 바라는 것은 그것뿐이다.
쉽게 씌어진 시
창(窓) 밖에 밤비가 속살거려
육첩방(六疊房)은 남의 나라,
시인(詩人)이란 슬픈 천명(天命)인 줄 알면서도
한 줄 시(詩)를 적어 볼까,
땀내와 사랑내 포근히 품긴
보내 주신 학비 봉투(學費封套)를 받아
대학(大學) 노-트를 끼고
늙은 교수(敎授)의 강의(講義) 들으러 간다.
생각해 보면 어린 때 동무를
하나, 둘, 죄다 잃어버리고
나는 무얼 바라
나는 다만, 홀로 침전(沈澱)하는 것일까?
인생(人生)은 살기 어렵다는데
시(詩)가 이렇게 쉽게 쓰여지는 것은
부끄러운 일이다.
육첩방(六疊房)은 남의 나라
창(窓) 밖에 밤비가 속살거리는데,
등불을 밝혀 어둠을 조금 내몰고,
시대(時代)처럼 올 아침을 기다리는 최후(最後)의 나,
나는 나에게 작은 손을 내밀어
눈물과 위안(慰安)으로 잡는 최초(最初)의 악수(握手).
_윤동주 「별 헤는 밤」
* 좇다 : 남의 뜻을 따르거나 그대로 한다.
/ 유행을 좇다. 돈을 좇다. 스승의 학설을 좇다.
* 쫓다 : 대상을 잡기 위해 따르다. 떠나도록 내몰다
/ 모깃불을 피워 모기를 쫓다. 어둠 속에서 강도를 쫓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