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을 읽다가 동의하기 어려운 구절을 발견했다. 사춘기의 정석을 보여주는 「호밀밭의 파수꾼」이다. 정말 그런가? 잠시 생각했는데, 아니다.
지금도 어느 날 오후가 기억난다. 제인과 내가 서로 껴안을 뻔했던 것은 그때뿐이었다. 어느 토요일이었다. 밖에는 비가 억수로 퍼붓고 있었다. 나는 그녀의 집에 가 있었다. 그녀의 집에는 스크린으로 햇빛을 차단한 큰 베란다가 있었는데, 우리는 바로 그곳에서 체커 놀이를 하고 있었다. 그녀가 킹을 뒷줄에다 박아놓고 움직이려 하지 않았기 때문에 이따금 나는 그녀를 놀렸다. 그렇다고 심하게 놀려대지는 않았다. 제인 앞에서는 아무도 그녀를 놀리고 싶은 마음이 생기지 않을 것이다. 나는 기회만 생기면 여자를 실컷 놀려주는 걸 즐기지만, 제인에게만은 그럴 마음이 생기지 않았다. 내가 제일 좋아하는 여자는 바로 놀려주고 싶은 마음이 생기지 않는 여자다. _J.D. 샐린저 「호밀밭의 파수꾼」
이 책의 주인공인 홀든 콜필드는 중2병 환자다. 머릿속에는 허세와 정신 승리뿐이다. 말투는 거칠고 욕을 달고 산다. 그런 그에게 누군가를 좋아한다는 건 괴롭힘의 반대편인가 보다.
보살피는 것과 괴롭히는 것
나한테 연애는 보살피는 것과 괴롭히는 것이다. 이 두 가지는 모순되는 것 같지만, 그래서 설레기도 한다. 마치 부모처럼 보호자처럼, 먹이고 씻기고 재우고 돌본다. 동시에 다양한 방법을 동원해서 귀여워한다. 귀여워한다는 건 괴롭힌다는 뜻이다. 괴로워하는 모습을 보고 귀여워하고 다시 보살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