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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태원댄싱머신 Sep 28. 2019

인내심이 필요하다

 _한동일 「라틴어 수업」

독후감을 쓴 지 한두 달 된 것 같은데, 사실 나는 다른 사람 독후감을 잘 읽지 않는다. 다른 사람의 요약이나 감상을 보면 영향을 받을지 모른다. 그래서 일부러 검색해서 찾는 경우는 거의 없다. 좋아하는 책이라면, 브런치를 구경하다 눈에 띄었을 때, 반가운 마음에 클릭해서 보기도 한다.



그런데 이 책은, 오늘 검색했다. 다른 사람들은 정말 이 책을 좋아하는지 궁금해서, 여러 개 찾아봤다. 대부분 찬사였다. 욕하는 글은 없었다.


제목부터 내 취향은 아니었다. 지인들이 같이 책을 읽고 이야기하기로 했고, 나를 제외하고는 이 책을 맘에 들어했다. 그래서 나도 따랐다.


계속 의문을 가지고 읽었다. '분명 재미있는 부분이 있을 거야', '분명 깨달음을 주는 부분이 있을 거야' 멈추지는 않았다. 마침 요즘 재미없는 책 읽기에 이골이 난 상태였다.


집에 책이 가득한데, 여자친구는 그게 마땅치 않나 보다. 책을 안 버리면 혼날 것 같아서 열심히 버렸다. 그냥 버릴 수는 없어서 읽고 버렸다. 꾹 참고 빠른 속도로 읽었다. 그래서 최근에 올린 서평을 보면 별 하나 짜리가 많다. 정말 적을 게 없는 책은 안 쓰기도 한다.


그렇게 다져진 인내심으로 읽었다. 역시 근육은 사용할수록 는다. 아주 지루하지는 않았다.


라틴어 구절을 먼저 하나 소개하고, 자신의 생각을 풀어나가는 에세이다. 저자는 서강대에서 초급·중급 라틴어 수업을 했는데,  실제 수업에서 한 이야기들을 모았다. 지루한 라틴어 수업을 듣다가 교수가 갑자기 딴 길로 새서 자기 이야기를 하면 얼마나 반갑고 즐거울까. 부장님 개그보다 재미있을 것이다. 그런데 이 딴 길들을 모아 놓으면... 음. 부장님 없는 자리에서 부장님 개그 녹음을 튼 느낌이랄까. 그러니까, 좋다는 의미다. 좋았다...


그래서 소개한다.


Ego sum operarius studens
에고 숨 오페라리우스 스투덴스
나는 공부하는 노동자입니다.


그런데 '하비투스'라는 말의 유래가 재미있습니다. 이 명사를 살펴보면 '습관'이라는 뜻 외에도 '수도사들이 입는 옷'이라는 의미도 있습니다. 수도사들은 매일 똑같은 시간에 일어나 아침 기도를 바치고 난 뒤 오전 노동을 하고 점심식사를 하기 전 낮 기도를 바쳤어요. 점심식사 뒤에는 잠깐 휴식을 취한 뒤에 오후 노동을 하고 저녁 식사 전에 저녁 기도를 바쳤고요. 저녁식사가 끝나면 잠깐의 휴식 뒤에 잠자리에 들기 전 하루의 일과를 마치는 끝 기도를 드렸습니다. 그리고 모두 일괄적으로 잠자리에 들었고요. 그래서 수도자들이 입는 옷 '하비투스'에서 매일 똑같은 시간에 똑같은 것을 한다는 의미에서 '습관'이라는 뜻이 파생하게 된 겁니다.


저는 공부하는 노동자입니다. 공부라는 노동을 통해 지식을 머릿속에 우겨넣는 것이 아니라 그 과정을 통해 나를 바라보는 노동자입니다. 그리고 그 사실이 싫지 않습니다. 이 책을 읽는 여러분은 과연 어떤 노동자입니다.


Esti Deus non daretur
에트시 데우스 논 다레투르
만일 신이 없더라도.


말이 나온 김에 로마의 인사법에 대해 알려드릴게요. 로마인은 인사할 때 상대가 한 명이면 '살베!' 또는 '아베!'라고 인사하고 여러 명일 경우는 '살베테'라고 인사했습니다. 그 뜻은 모두 '안녕하세요'라는 의미입니다. 우리가 한 번쯤 들어보았을 '아베 마리아'라는 것도 로마인의 인사법으로 '안녕하세요, 마리아'라는 뜻입니다.


사실 저는 로마로 유학을 가기 전까지 욕이란 걸 하지 않았지만, 로마 생활은 저에게 욕의 필요성을 일깨워주었습니다. 로마는 혼잣말로 욕이라도 하고 나면 마음이 한결 편해진다는 것을 깨닫게 해준 곳이었어요. 욕에 이런 순기능이 있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Carpe diem, quam minimum credula postero.
카르페 디엠, 쾀 미니뭄 크레둘라 포스테로
오늘을 잡게, 내일이라는 말은 최소한만 믿고.


Vulnerant omnes, ultima necat
불네란트 옴네스, 울티마 네카트
모든 사람은 상처만 주다가 종국에는 죽는다.


하지만 저는 학생들에게 오늘 할 일 내일로 미루자고 말합니다. 단, 미뤄야 하는 일을 미루자는 말입니다. 잠깐 생각해보세요. ... 만일 누군가가 저에게 미루고 싶은 일이 무엇이냐고 묻는다면 전 주저 없이 대답할 거예요. "절망하고 포기하고 싶은 마음을 내일로 미룰 겁니다'라고요.


Hoc quoque transibit!
혹 쿠어퀘 트란시비트!
이 또한 지나가리라!


★★★★ 왜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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