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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태원댄싱머신 Oct 23. 2019

어른하는 맛

 _임경선 「태도에 관하여」

처음 읽었을 때는 아무것도 건질 게 없는 책이었다. 좋다는 주변의 찬사를 뒤로 하고 나는 '재미없다'는 한 마디로 일축했다. 그러다 다시 한 번 읽고 나니 (왜 나는 재미없는 책을 다시 한 번 읽을까. 굳이...) 마음에 드는 부분이 하나둘 늘어났다. 내가 무언가를 얻으려고 하는 태도였기 때문에, 새로운 논리 하나 없는 책이 별로였던 것이다. 기대 없이 읽어보니, 편하게 읽을 수 있는 에세이였다. 저자의 소소한 에피소드들이 가득가득하고, 단상들이 양념처럼 버무려져 있다. 가볍게 읽기에 괜찮은 책이다.


표지는 정말 마음에 든다. 그동안 버려야지 하고 생각했다가도 못 버린 이유가 이거였다. 사실 한번 훑어보고 버리려고 했던 거였는데...



무리


사랑을 하면, 무리하게 된다. 전혀 바뀌지 않으면 이기적인 것이고, 그렇다고 완전 나를 바꾸려고 하자니 일시적인 거다. 마냥 자유롭게 해준다면 그건 특별한 관계가 아니다. 실천은 쉽지 않다.


연애 초기의 흥분이 가시면 특히 상대가 변했다고 속상해하지만 연애 초기가 특수 상황이고 이젠 상대를 믿고 편해지니까 원래의 모습으로 돌아간 것뿐이다. 상대는 오로지 내가 먼저 변해야만 변할 수가 있다.
역으로 사랑받기 위해 무리하는 것도 곤란하다. 무리한다는 것은 내가 아닌 내가 되는 것이다. 인간관계에서 무리하면 안 되는 이유는 무리한 대가를 언젠가는 상대에게 딱 그만큼 받아내려고 하기 때문이다.
마찬가지로 상대한테 무리하지 않는 만큼 나 자신한테도 무리하지 말아야 한다. 나의 이런 치부가 드러나면 상대는 멀리 가버릴 거야. 라고 생각한다면 그 관계는 거기까지다.
서로를 사랑한다면 힘닿는 데까지 자유롭게 해줘야 할 것이다. 상대의 모든 것을 알 필요가 없으니 상대의 사생활을 지켜준다.


가사


미혼이기 때문에 지금은, 집안일은 다 내가 해야지, 하는 허황된 태도를 가지고 있다. 과연 결혼해서 피곤한 상태로 집에 들어왔을 때 가사와 육아를 얼마나 자발적으로 할 수 있을까. 겪기 전에는 알 수 없을 거다.


"네가 하라는 대로 할게."
마님의 분부만 기다리겠다는 머슴 같은 대사가 그다지 기쁘지가 않다. 그 말의 행간에 스스로가 가사일에 대한 주인의식이 없음이 드러난다. 주도권이나 자발성, 책임을 갖지 않겠다는 얄미운 선언처럼도 들린다. 그러니까 자신은 어디까지나 '협조적인' 비관련자의 입장으로 남고 싶다는 거? 뭐 하나 시킬 때마다 사랑과 존중의 마음으로 '부탁'하고 일을 어설프게 끝내놓은 다음에도 반드시 '칭찬' 해주는 것. 아, 이것 자체도 피곤한 일이다.



상대에게 자신의 몸에 대한 결정권을 맡긴 채, 나중에 관계가 어그러지면 '역시 내 몸이 목적이었냐'는 식으로 자신을 연민하는 것. 자발적인 성관계임에도 연애가 뜻대로 잘 풀리지 않으면 당했다, 라고 피해의식을 앞세우는 것은 스스로가 자신의 몸을 독로 보는 것이나 다름없다.
너무 빨리 몸을 '허락'해서 관계가 깨졌다고 우겨보지만 그건 자신의 몸을, 혹은 연애에 있어서 성을 너무 과대평가하는 것이 아닐까? 중요한 것은 늘 성관계 외에 어떤 것을 나눌 수 있는지, 성적 매력 외에 어떤 인간적 매력이 있는가, 였다.
솔직히, 어른 되어서도 내 몸 '내 마음대로' 할 자유마저 없다면 무슨 재미로 어른 할까.


마지막 문장이 마음에 든다. 맞다. 어른하는 맛이 있다.


처음에 읽었을 때는 마지막에 있는 김현철과의 대담 부분만 읽을만 하다고 생각했다. 이 부분에 대한 감상은 아래에 있다.



★★★★★ 원래 한 개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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