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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태원댄싱머신 Oct 30. 2019

갈까? 가자. 그러나 움직이지 않는다.

 _사뮈엘 베케트 「고도를 기다리며」

대학교에서 배운 기억이 있다. 부조리극. 이해할 수 없는 단어와 문장으로 가득하다. 당연히 이해하기 어렵고 재미도 없다. 내용은 온통 기다림뿐이다. 이렇게 기다리고 저렇게 기다린다. 당연히 연극으로 상연되었을 때, 혹평을 받았다. 반면 캘리포니아 교도소에서는 죄수들은 이 연극을 보고 기립박수를 치며 눈물을 흘렸다고 한다.



두 주인공은 고도라는 사람을 기다리면서 서로 이야기를 나누는데, 말이 거의 안 통한다. 고도를 기다리는 것은 맞는 것 같은데, 확실하지 않다. 얼마나 오래 기다렸는지도 모른다. 그냥 떠나자고 말하면서도 움직이지 않는다. 처음부터 끝까지 이런 내용이다. 당연히 지루하다. 하지만 작가는 노벨상을 받았다. 그러니 우리의 무지를 탓하자.


모호한 표현 때문에 다양한 해석이 가능하다. 기독교로 해석할 수도 있고, 내면의 대화로 볼 수도 있다.


세상에는 눈물이 일정한 분량밖에 없어. 다른 데서 누가 또 울기 시작하면 울던 사람이 울음을 그치게 되는 거야. 웃음도 마찬가지지. 그러니까 우리 세대를 나쁘다고 하지 맙시다. 선배들보다 더 불행하지는 않으니까. 우리 세대를 좋다고도 말하지 맙시다. 그런 얘기는 꺼내지도 맙시다.
사람마다 조그만 십자가를 지지. 죽을 때까지. 그리고 기억에서 사라지네.
인간은 모두 태어났을 때부터 정신이 돌았어. 어떤 인간들은 그대로 돌아서 살지.
어느 날 나는 눈이 멀었고 어느 날 우리는 귀머거리가 될 것이오. 어느 날 우리는 태어났고 어느 날 우리는 죽을 것이오. 똑같은 날 똑같은 시각에 말이오.
블라디미르: 우린 여기서 할 수 있는 게 없네.
에스트라공: 어딜 가도 마찬가지지.
블라디미르: 고고, 그런 소리 말게. 내일이면 다 잘 될 거니까.
에스트라공: 잘 된다고? 왜?
블라디미르: 자네 그 꼬마가 하는 얘기 못 들었나?
에스트라공: 못 들었네.
블라디미르: 그 놈이 말하길 고도가 내일 온다는군. 그게 무슨 뜻이겠나?
에스트라공: 여기서 기다려야 한다는 뜻이지, 뭐.
블라디미르: 내일 같이 목이나 매세. 고도가 안 온다면 말이야.
에스트라공: 고도가 오면?
블라디미르: 그럼 사는 거지.


마지막 장면은 아래와 같다.


에스트라공 그럼 갈까?
블라디미르 바지나 추켜올려.
에스트라공 뭐라고?
블라디미르 바지나 추켜올리라고.
에스트라공 바지를 벗으라고?
블라디미르 추ㅡ켜ㅡ 올리라니까.
에스트라공 참 그렇구나.

그는 바지를 추켜올린다. 침묵

블라디미르 그럼 갈까?
에스트라공 가자.

둘은 그러나 움직이지 않는다.


애매하게 표현해서 독자들을 혼란스럽게 한다. 그리고 독자는 생각에 빠진다. 소설은 무엇을 말하는 것일까, 고민하게 된다. 어딘가 답답하고 이상하다. 그런 점이 우리 현실과 닮았다.


★★★★★ 이해 못하는 게 당연하다. 그게 저자의 목적이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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