_김연수 「청춘의 문장들」
나는 진짜 글쓰는 재능이 풍부했다기보다는 시간이 너무 많았다. ... 일주일에 몇 시간 되지 않는 학교 수업을 마치고 나면 할 일이 없었다. 만약 주변에 마리화나라도 있었으면 그걸 피우면서 시간을 보냈을 텐데, 손 닿는 곳에 있는 것이라고는 그저 낡은 286컴퓨터뿐이었다.
입대하기 전에는 하루하루가 너무 지겨워 성북동에서 압구정동까지 걸어갔다가 해가 떨어져 다시 버스를 타고 돌아온 적도 있었다. 방위 시절에는 퇴근하고 집에 돌아와 토마스 만의 「마의 산」을 컴퓨터에다 하염없이 입력한 적도 있었다. 내가 뭔가를 쓰게 됐다면 그와 비슷한 이유 때문이었다. 결론적으로 보자면 20대 초반의 나는 시간의 흐름을 견딜 만큼 강한 몸을 지니지 못했다. 그런 이유가 왜 이런 결과로 이어지는지는 모르지만, 어쨌든 그래서 나는 소설가가 됐다.
청춘은 들고양이처럼 재빨리 지나가고 그 그림자는 오래도록 영혼에 그늘을 드리운다.
그해 겨울, 나는 간절히 봄을 기다렸지만 자신이 봄을 지나고 있다는 사실만은 깨닫지 못했다.
다음날, 이삿짐 트럭을 타고 언덕길을 내려가면서 나는 그 언덕에서의 삶이 내겐 봄이었다는 사실을 깨달을 수 있었다.
보통의 남자들이 들으면 나를 향해 비웃음을 던질 테지만, 내 생애를 통틀어 가장 절망적인 시간은 방위병으로 근무하던 시절이었다(아직 방위병 생활의 진수는 보여주지 않았으니 비웃음은 아껴두시길).
그리고 그날부터 나는 대대장 관사에서 밥을 짓고 청소를 하기 시작했다. 인사계를 비롯해 모든 부대원들은 그런 나를 '밥 따까리'라고 부르기 시작했다. 밥이란 남이 해줄 때 의의가 있는 법이라고 생각했던 내게 그건 엄청난 고통이었다. 하지만 나보다 더 큰 고통을 받은 사람은 그 대대장이었다. 대대장은 그 괴로움을 인사계의 정강이에다 풀었고 인사계는 그 아픔을 내 뺨에다 토로했다. 뺨이 얼얼하기는 했어도 그들의 심정만은 이해하지 못할 바가 아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