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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태원댄싱머신 May 09. 2019

빨리 중3이 되고 싶다

_최민석 「미시시피 모기떼의 역습」

시대마다 그 시대에 고유한 주요 질병이 있다. 그래서 이를테면 박테리아적이라고 할 수 있는 시대도 있는 것이다. 하지만 이 시대는 적어도 항생제의 발명과 함께 종언을 고했다. 인플루엔자의 대대적 확산에 대한 공포가 여전히 무시할 수 없는 것이긴 하지만, 우리는 오늘날 더 이상 바이러스의 시대를 살고 있는 것은 아니다. 우리는 면역학적 기술에 힘입어 이미 그 시대를 졸업했다. 21세기의 시작은 병리학적으로 볼 때 박테리아적이지도 바이러스적이지도 않으며, 오히려 신경증적이라고 규정할 수 있다. 신경성 질환들, 이를테면 우울증, 주의력결핍과잉행동장애, 경계성성격장애, 소진증후군 등이 21세기 초의 병리학적 상황을 지배하고 있는 것이다. 이들은 전염병성 질병이 아니라 경색성 질병이며 면역학적 타자의 부정성이 아니라 긍정성의 과잉으로 인한 질병이다. 따라서 타자의 부정성을 물리치는 것을 목표로 하는 면역학적 기술로는 결코 다스려지지 않는다.
 _한병철 「피로사회」


현대사회를 냉철하게 분석하는, 한병철의 저작 「피로사회」는 위와 같은 문장으로 시작한다. 전염성 질병이 유행하던 시대가 있고, 지금처럼 경색적 질병, 즉 우울증이 유행하는 시기가 있다. 시대가 가지고 있는 고유의 특징은 떠도는 질병에 영향을 준다.


페스트 환자가 되는 것은 피곤한 일이지만, 페스트 환자가 되지 않으려는 것은 더욱 피곤한 일이에요. 그래서 모든 사람이 피곤해 보이는 거예요. 오늘날에는 누구나 어느 정도는 페스트 환자거든요.
 _알베르 카뮈 「페스트」


자본가가 노동자를 착취하던 시기에는 남들에게 맞은 상처, 남들로부터 전염된 질병이 우리를 괴롭힌다. 반면, 자기개발서*를 읽으며 스스로를 착취하는 시기에는 내가 스스로를 채찍질한다. 백신보다 자존감이 더 필요한 시대다.


그런데 이 각박한 신자유주의 시대에도 우울증으로부터 안전한 사람들이 있다. 우울증보다 더 강력한 병에 걸린 사람들이다.


1885년, 고종 22년에 제중원이란 이름으로 설립된 이래 오진이라고는 한 번도 남기지 않은 세브라차 병원의 부원장에게 심각한 중2 병이란 진단을 받은 후, 나는 깊은 실의에 빠져 있었다. 특별한 치유법은 없지만, 병세가 악화되지 않으려면 산책을 자주 하라는 의사의 권고를 받았다. 그리하여 일과가 끝나면 한 시간가량 한강변을 따라 산책을 한 후, 매일 가는 바에 들러 칵테일을 한잔 하며 다음 날 쓸 소설을 구상하곤 한다. 당연한 말이지만, 여름에는 반팔을 입고, 무더운 날에는 반바지도 입는다. 역시 당연한 말이지만, 겨울에는 두꺼운 점퍼를 입고, 가을에는 코트도 입는다. 그런데, 여름과 겨울에는 아무런 문제가 없었지만, 유독 코드를 입을 때마다 안주머니에서 이상한 소리가 났다.
"이봐. 큰 걱정하지 마. 너는 전혀 중2 병이 아니야. 너는 중3 병이야."
나는 이것이 일종의 정신착란이나, 자아분열일지도 모른다고 생각되어 다시 오진이 없기로 유명한 세브라차 병원의 부원장을 만났다.
"으음. 죄송합니다. 저희 병원 개원 이래 최대의 실수를 저지르고 말았네요. 최민석 씨는 중3 병이 맞습니다."
부원장은 레지던트와 인턴들과 함께 "면목 없습니다!"라고 큰 소리로 외치며 90도로 허리를 숙여 사죄했다. 나는 '으음. 내가 중3이란 말인가. 그다지 심각하지 않군. 그새 나도 꽤 성장했어'라며 어느 정도 안심했다.
사실 중3 병이라면 꽤 괜찮은 신랑감이다. 알 만한 사람은 알겠지만, 남자가 중3 정도의 자아를 가지기란 그리 쉬운 일이 아니다. 따라서 나는 버거웠던 산책 시간을 어느 정도 줄였는데, (...)
 _최민석 「미시시피 모기떼의 역습」


우울증이 없는 걸 보면, 나는 최소 중2 병이다. 중2 병 남자의 삶도 근사한 편이다.


(...) 물론, 가을이었고, 매일 가던 바에서 "바텐더! 늘 마시던 걸로"라며 바리톤처럼 중저음의 톤으로 주문도 하였고, 험프리 보가트 식의 미소를 옆자리의 여성에게 건네다 뺨을 맞기도 하였다.
"이봐! 날 몰라보는 거야? 나는 자그마치 중3이야!"
그중에 몇 명은 "어머! 너무 동안이라 중2 병인 줄 알았어요"라며 포옹의 사과를 해주었고, 실제로 그게 인연이 되어 몇 명의 여인과 가슴이 콩콩 뛰는 연애 같은 것도 좀 해보았다. 중3 병 남자의 삶이란 근사한 것이었다.
 _최민석 「미시시피 모기떼의 역습」


발달심리학에 '개인적 우화'라는 개념이 있다. 중2 병, 아니 청소년들은 스스로를 우화처럼, 나름의 상상력을 보태서 바라본다. 자존감이나 힐링 서적을 볼 필요가 없는 때다. 나도 힐링 서적 안 본다. 빨리 중3이 되고 싶다.


이런 특성으로 인해 주위 모든 사람이 자신을 지켜본다 생각하고 어떤 불행도 자신은 비켜간다 생각하기도 한다. 특히, 개인적 우화는 여자 청소년보다 남자 청소년에게 훨씬 빈번하게 나타난다. 그래서 '지각을 해도 혼나지 않을 거야', '지금 내가 성적이 안 좋아도 나 정도면 분명히 좋은 대학에 갈 수 있을 거야'와 같은 생각을 하게 된다.
 _이진아 「지금 내 아이 사춘기 처방전」


맞다. 나도 서울대 가는 줄 알았다.




*자기개발서 : 자기계발서와 자기개발서 둘 다 맞다. 이미 가지고 있는 능력을 키우면 '개발', 아직은 없는 능력이지만 일깨워준다면 '계발'이다.




사랑하는 작가1 : 최민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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