냄비를 물을 올리고 끓인다.
양파니 감자니 당근이니
미리 사놨던 아끼는 야채들을 하나둘 꺼낸다
백숙 먹고 남아서 발라놓은 가슴살
삼겹살 구워먹고 남은 몇조각
보쌈 남은 거 족발 남은 것도 넣는다
국자를 저으며
오전에 작성했던 보고서를 생각한다
보쌈이랑 보고서를 다같이 넣고 팀장 같은 국을 끓여볼까
따라하기 쉬운 백종원레시피도 스쳐지나가고
말 안듣는 골목식당 골칫덩이들도 떠오른다
그럴듯한 걸 만들기는 귀찮고
뭐라도 먹어야 할 때 끓인다
중요한 건 그게 아니라고! 돈이 아니란 말이야!!
중요한 것만 인내심 있게 기다리는 강아지처럼.
가운데가 텅 빈 도넛 같은 국을 끓인다.
어느 날 만약 세상 모든 고기가 사라진다면
너도 같이 사라질 거니
진짜 고기 참치를 넣는다
진짜 국물을 생각하기 시작하면 가짜 국물을 끓일 수밖에 없지
잘 끓이고 있냐고 문자가 왔다
응 잘하고 있지
건강이 최고니께
응 알았다니까
건강도 연봉도 미세먼지도 다 넣고 푸르륵 끓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