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춘

_이병률 「바다는 잘 있습니다」

by 이태원댄싱머신

목표를 세우고 계획을 세우고 살아가는 사람들이 있을 거다. 나는 아니다. 쏟아지는 듯이, 채워지는 듯이, 익어 떨어지는 듯이, 되는 대로 살았다.


그래서 이해할 수 없는 것들로 하루를 채워나갔던 것 같다. 당시에는 쓸모 없었던 열정, 필요 없었던 고민들이 결국 과거가 되었고, 미래가 되었다.


그래도 하나 품었던 질문은 있었다. 내가 궁금했고, 세상이 궁금했다. 세상은 조금 알겠는데, 나는 더 모르겠다. 아직도 배울 게 많다.


청춘의 기습

그런 적 있을 것입니다.
버스에서 누군가 귤 하나를 막 깠을 때
이내 사방이 가득 채워지고 마는

누군가에게라도 벅찬 아침은 있을 것입니다.
열자마자 쏟아져서 마치 바닥에 부어놓은 것처럼
마음이라 부를 수 없는 것들이

이해할 수 없는 것들은
이해할 수 없는 것들이어서 버릴 수 없습니다

무언가를 잃었다면
주머니를 가졌기 때문입니다
인생을 계산하는 밤은 고역이에요
인생의 심줄은 몇몇의 추운 새벽으로 단단해집니다

넘어야겠다는 마음은 있습니까
저절로 익어 떨어뜨려야겠다는 질문이 하나쯤은 있습니까

돌아볼 것이 있을 것입니다
자신을 부리로 쪼아서 거침없이 하늘에 내던진 새가
어쩌면 전생의 자신이었습니다

누구나 미래를 빌릴 수는 없지만
과거를 갚을 수는 있을 것입니다

_이병률 「바다는 잘 있습니다」


이병률의 사진집 「끌림」을 봤을 때는 정말 별로라고 생각했다. 이 시집을 보고 생각이 바뀌었다. 굉장히 감각적이다. 사진 이상이다. 사진이라는 한계에 갇히지 않았을 때, 자유로운 어휘구사력이 더 빛을 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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