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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태원댄싱머신 Mar 02. 2020

총을 든 여성

꽃을 든 남자

요즘 매일같이 보는 얼굴이 있다. 질병관리본부장이다. 여자친구보다 자주 보는 것 같다. 한달 넘게 언론 앞에서 브리핑을 해오고 있는데, 요즘은 눈에 띄게 수척해진 느낌이다. 힘내세요 라며 격려하는 댓글도 많이 보인다.



나는 두 가지에 놀랐다. 우선 눈에 띄는 건, 이분이 화장을 하지 않았다는 것이다. 바쁘고 심각한 상황 때문이기도 하겠지만, 스스로 '언론에게 보여지는 꽃'이 아니라 코로나19 컨트롤타워의 책임자임을 자각하는 것으로 보인다.


더욱 놀란 것은 사람들의 반응이다. 변호사가 나오든 국회의원이 나오든 이쁘네, 못생겼네, 국민프로듀서라도 된듯 평가하던 사람들이 언론에 나온 여성 전문가를 전문가로 인식하는 것이다. 일단 여성이 나오면 외모 악플이 주렁주렁 달리는 것을 목격해왔던 나에게는 무척 생경한 광경이다.


'비비까지는 생얼이죠.', '화장 안 했어요. 썬크림만 발랐어요.' 하는 우스겟 소리가 예능에서 심심치 않게 들린다. 화장은 여성에게 기본값이다. 그만큼 여성은 직업이나 역할보다, 보는 외모로 인식되었다. 안 좋은 소식들로 가득한 시기지만, 전쟁 통에도 사랑은 일어나듯이, 우리는 계속 나아가고, 좋은 소식을 주섬주섬 만든다.


그런 면에서 제가 한국에서 겪은 일들은 매우 야만적인 것이었어요. 야만이죠. 아름답지 않으면... 화장을 하지 않고선 외출하기가 두려운 사회란 건요... 총기를 소지하지 않으면 집 밖을 나설 수 없는 사회란 거예요. 적어도 여자에겐 그래요, 지극히 야만적인 사회였어요. 물론 지금은 많이 달라졌지만, 아무튼 말이죠.
 _박민규 「죽은 왕녀를 위한 파반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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