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매거진 독서머신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이태원댄싱머신 Mar 17. 2020

준준 나아가자

 _박동천 「선거제도와 정치적 상상력」

준준연동형 비례대표제가 시행되었다. 한 달 후에 첫 시험대가 찾아온다. 비례대표제는 알겠는데, 연동형? 거기에 준연동형? 하나 더 붙여서 준준연동형? 복잡해 보이면 기본으로 돌아가면 된다. 선거제도에 대한 책을 읽었다. 요즘 핫한 주제니 트렌디한 책을 읽어야지 하고 책을 폈는데, 2000년 책이다. 내가 원래 책을 사놓기만 하고 잘 안 읽는다. 그래서 조금 감안하고 읽어야 했지만, 그래도 선거제도에 대한 상상력을 확장시키는 데 도움이 되었다.



선거제도 하면 학창시절에 배운 내용이 떠오른다. 소중대 선거구가 있고, 비례대표제가 있다. 알고 있는 게 이 정도기 때문에, 소선거구제가 나쁘면 중선거구제나 대선거구제로 바꾸자는 이야기를 할 수밖에 없다. 아는 게 없으니, 상상력에도 제약이 있다.


저자는 당연하게도 선거제도의 중요성부터 이야기한다.


한 정치사회가 자신에게 알맞은 선거제도를 찾아낼 수 있다면, 권력의 버릇이 지나치게 나빠지기 전에 권력의 참월을 감지하고 그에 따라 권력으로부터 자라나온 비곗덩어리 혹들을 잘라낼 수 있는 자율 조절 장치를 마련할 수 있다. 권력이란 본시 틈만 보이면 자신의 적정 한계를 넘으려고 애를 쓰는 법이다. 그와 같은 간헐적인 참월을 제지하기 위해 일일이 혁명 또는 혁명에 준하는 방식으로 인민주권을 발동해야 한다면 그 또한 매우 피곤한 노릇일 것이다.


다수대표제

단순다수대표제

연기명 중선거구제

제한적 연기명 중선거구제

단기명 중선거구제

선호대체투표제

비례대표제

명부식 비례대표제

다수대표/비례대표 병행제

지역구 불균형 보상식 비례대표제

선호이전식 투표제


저자는 10개의 선거제도를 설명하고 한국과 미국의 선거도 다룬다. 이중에 흥미로운 몇 가지만 간단히 소개한다.


단기명 중선거구제


선거구에서는 두 명 이상의 의원을 선출하고, 유권자는 한 표를 행사한다. 이 경우 특이한 현상이 발생한다. 정당 간 경쟁보다 정당 내 경쟁이 심화된다. 내가 만일 진보정당 후보라고 생각해보자. 내가 아무리 잘 생겼다 해도 보수정당 표를 끌어오기는 쉽지 않다. 오히려 같은 정당의 가장 유력한 후보의 딸을 공격해서 부스러기를 모으는 게 더 효과적이다. 중선거구제는 소수정당에게 더 유리할 거라는 예상과 달리 소수정당은 제살 깎아먹기 경쟁에서 벗어나기 어렵다.


결선투표제


1등이 30% 득표하고, 2등이 25% 득표하면 1등이 당선된다. 하지만 결선투표제가 있다면, 1등과 2등이 한 번 더 붙는다. 인위적이지만, 형식적인 과반수의 지지를 만들어 낸다. 두 번째 투표에서 어마어마한 변화가 있지는 않겠지만, 그래도 유권자들은 첫 번째 투표 결과에서 깨닫는 게 있고, 이를 4년 후가 아니라 며칠 후에 바로잡는다. 만일 첫 번째 투표 결과, 호남은 전부 진보정당이, 영남은 전부 보수정당이 1등을 했다면, 유권자들은 충격을 받지 않을까? 이렇게까지 감정적이면 안된다는 자성의 목소리가 나올 것이다.


결선투표제에서 1차 투표의 결과는 정국 전체의 흐름을 가능할 수 있는 오차 없는 여론 조사에 해당한다. 유권자들은 그 결과를 보고 자신에게 최선의 선택만을 고집했다가 최악의 결과가 초래될 수도 있다는 점을 깨닫게 되어, 결선투표에서는 차선 내지 차차선을 선택할 수 있는 기회를 갖는다.


명부식 비례대표제


각 정당이 비례대표 명부를 제시하고, 유권자는 정당에 투표한다. 그리고 득표 비율에 따라 정당에 의석을 분배한다. 재미있는 건 문턱이다. 우리나라처럼 대표성을 보장하지 못하는 선거제도에서는 의미없지만, 만약 비례대표로 많은 의석을 선출하는 선거제도가 있다면 문턱은 필요하다. 예를 들어 1000명의 국회의원을 비례대표로 뽑는다고 하자. 이론적으로 투표자의 0.1 퍼센트만 지지해도 당선이 된다. 요즘 같이 혼란한 정국에 누군가 신천지를 탄압하자는 주장을 하거나, 외국인을 쫓아내자는 주장을 한다고 하면, 아마 대부분의 사람들은 과한 주장이라고 생각할 것이다. 그런데 극단적인 사람들 한 무리가 똘똘 뭉치면, 히틀러 한 명을 당선시킬 수 있다. 겨우 한 명이라고 방심할 수 없다. 자극적인 주장은 코로나19처럼 사람들을 전염시키기 때문이다. 신천지를 탄압하고, 외국인을 쫓아내자는 주장은 얼핏 들으면 속시원한 이야기다. 그렇게 히틀러는 열 명이 되고, 스무 명이 되어버린다. 그래서 아주 얕은 문턱이라도 필요하다.


항상 정치와 선거에 관심을 가져왔다. 나름의 신념도 있다. 내 생각은 이렇다고, 하면서 주절주절 떠드는 건 잘 할 수 있다. 그래도 다른 선거제도, 다른 가능성에 대해서는 별로 생각을 못해봤던 것 같다. 선거제도를 바꾸는 건 쉽지 않다. 그 어려운 걸 지금 우리가 해내고 있다. 아주 조금이지만, 그래서 준준연동형이라 부르지만, 나아가고 있다. 준준 나아가고 있다.


★★★★★ 선거제도에 대한 기본기를 다지는 의미에서 읽을 수 있다. 저자의 의견에 다 동의하지는 않지만.

매거진의 이전글 심심하다면 놀이터에 가자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