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매거진 독서머신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이태원댄싱머신 Mar 19. 2020

아름다움을 벗어던진다

 _윤지선, 윤김지영 「탈코르셋 선언」

막상 탈코르셋 운동이 한창일 때는 신경을 안 썼다. 조금 열기가 식었을 때 즈음, 서점을 돌아다니다가 이 책을 발견했다. 표지부터 아름다움을 거부한 느낌이었다. 언론에 가끔 얼굴을 내미는 윤김지영이 저자로 참여했다. 프랑스에서 철학을 공부하는 분인데, 과연 책은 일상어로만 이루어지지 않았다. 여러 철학자들이 나오고, 관련한 개념으로 탈코르셋을 설명했다. 그래서 이해하는데 조금 시간이 더 걸렸지만, 프랑스 철학과 페미니즘 철학에서는 이런 개념을 사용하는구나.. 하고 깨닫는 재미가 있었다.




탈코르셋이 몸의 해방에서 시작하기 때문에, 당연히 페미니즘에서 바라보는 여성의 몸 이야기를 꺼낸다. 가부장제에서 여성은 '아름다운 여성의 몸'이라는 전형적인 이미지에 맞추며 살아가게 된다.


여성의 몸과 섹슈얼리티는 '남성'이라는 인식주체의 욕망과 시선에 의해서 규정되어 왔습니다. 각종 미디어에서 보여주는 섹시하고 어리고 파릇파릇한 여성의 몸은, 스스로가 발화할 수 있는 몸이 아니라 항상 남성들의 욕망과 욕구에 화답하는 대상으로서 재현됩니다.


꾸밈노동


몸을 끊임없이 갈고닦아야 하는데, 여기에 들어가는 노동을 꾸밈노동이라고 한다. 그런데 우리는 아름다운 여성을 보면, 지난한 노동을 통해서 만들어냈구나, 하고 생각하지 않고, 원래 아름다운 거라고 생각하는 경향이 있다. 반대로 인위적인 노력이 들어간 것처럼 보이면 성괴라고 몰아붙인다. 사실, 자연미인이라는 건 없다.


'늘 젊고 아름답고 매력적인 여성'이란 철저한 꾸밈노동의 산물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세상은 그러한 여성을 그 자체로 아름답게 태어난 존재로 신비화함으로써 인위적 꾸밈노동의 모든 노력들ㅡ 아름다운 젊음을 유지하기 위한 각종 화장술과 시술, 지속적 운동과 고강도 식이요법ㅡ과 사회적 압력들을 단번에 비가시화해 버립니다.


상품


여성은 연애 시장과 결혼 시장에서 거래되는 상품이 되어버린다. 그래서 아름다운 여성이라는 이상적인 상품에서 벗어나면 가차 없는 비난과 비하를 받게 된다.


게다가 남성 욕망경제 매트릭스 안에서 여성은 화장술이나 특정 식이요법 등과 같은 노동수단을 동원해서 자신의 신체자원(노동대상)에 꾸밈노동을 가함으로써 성적 매력과 아름다움이라는 교환가치를 지속적으로 생산해내야 하는 '상품'으로서 존립합니다.


비용


꾸밈노동에는 돈이 많이 들어간다. 아름다운 건 기본값이기 때문에 돈이 많이 들어가는데도 티는 안난다.


둘째, 여성들은 자신들의 내밀한 성적 신체자원마저 외재적 노동대상으로 규정지으며 꾸밈노동이라는 지난한 과정 속에서 소외당할 뿐만 아니라 여성의 성애화된 아름다움을 여성 노동력의 기본값으로 취급하는 차별적 노동시장 조건에 의해서도 이중적으로 소외당하기 때문입니다.
셋째, 여성은 성별에 따른 임금차별로 인한 구조적 빈곤과 더불어 노동생산품으로서의 자격을 유지하고자 꾸밈노동의 수단들ㅡ화장품, 여성의류 등ㅡ을 끊임없이 소비·구입·재투자해야 한다는 점에서 자신의 신체자원 개발을 통한 상품으로서의 기본값 충족과 도달이 주된 목표이며 이를 통한 잉여가치와 부의 창출은 구조적으로 거의 불가능한 상태이기 때문입니다.


취향


여성이 아름다움을 추구하고 꾸미는 걸 개인의 취향으로 치부할 수도 있다. 각자 원하는 걸 이룬다고 볼 수도 있다. 그런데 과연 취향을 온전히 개인의 몫으로 볼 수 있는지에 대해 저자는 반박한다. 취향은 스스로가 결정하는 게 아니라, 개인이 속한 성별, 사회적 지위, 계급, 환경에 의해 결정되기 때문이다.


이를 기반으로 비춰볼 때 여성은 사회화 과정을 통해 자신의 성별 계층성에 의해 침투·각인되어 있는 다양한 습속들ㅡ특정 취향과 기호, 소비성향, 행동방식과 습관, 태도, 말투, 걷거나 앉는 방식, 제스처 등ㅡ의 총체들을 무의식적으로 체화하고 있습니다.


당근


아름다움을 추구하는 여성에게 꾸밈노동은 오로지 부정적인 결과만 주지 않는다. 남들에게 인정을 받고 스스로 만족감을 느낄 수도 있다. 화장을 하지 않고, 바지를 입고, 머리를 밀고, 브래지어를 벗어던지며, 여성스러운 취향을 거부하는 사람들은 이걸 다 포기하는 셈이다.


이상적 여성성을 실행할 때 얻게 되는 달콤한 당근과 수혜를 과감히 포기하는 동시에 남성들의 짧은 머리, 민낯, 안경, 편한 복장이라는 언뜻 똑같아 보이는 요소들을 여성의 신체와 새롭게 접속시키고 재배치함으로써 그 사회적 의미를 전복하고 재구성하는 것입니다.


화장을 지우고 머리를 미는 모습이 다소 충격적으로 다가오기도 한다. 꾸밈노동의 거부가 얼마나 중요한 문제인지 보여주지만, 동시에 여성스러운 취향에 열심히 따랐던 사람들에게 윤리적인 불편함을 주기도 한다. 원래 불편함에서 시작하는 게 맞다. 불편함을 통해서 하나하나 벗어던지고 새로운 나를 찾아나갈 수 있다.


★★★★ 어려운 개념들이 나오지만, 충분히 설명해준다. (아주 충분하지는 않지만)


매거진의 이전글 바나나 이야기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