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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태원댄싱머신 Apr 23. 2020

문법 걱정 안 하게 만드는 책

_김정선 「내 문장이 그렇게 이상한가요?」

정말 놀랐다. 책에 놀랐고 작가에 놀랐다.



책에 놀랐다.


국어 문법 책으로 보인다. 맞춤법 책, 교정 책으로 보인다. 그런데 읽다 보니, 그게 아니다. 책은 크게 세 부분으로 나뉜다. (어쩌면 두 부분) 문법에 대해 설명하는 부분이 하나다. 그리고 저자가 누군가의 책을 교정하는 내용이 또 하나. 마지막으로 저자의 개인적인 에세이가 하나. 「수학의 정석」을 샀는데, 수학 내용 중간 중간에 저자 에세이가 있는 느낌이다. 문법과 교정에 대한 파트 사이사이 저자의 사적인 글이 위치한다. 독특한 구성이다. 독자의 집중력 환기를 노렸다면, 매우 효과적인 전략이었다. 아무래도 문법은 지루해질 수밖에 없다. 정신을 집중해서 미묘한 차이를 살펴야 한다. 그러다 누군가의 책 이야기가 나오고 서사가 진행된다.


저자에 놀랐다.


간결한 글쓰기를 강조한다. 필요없는 군더더기를 걷어내고, 자연스러운 표현으로 바꾸라고 한다. 그런데 정작 저자의 글은 일반적이고 간결한 글의 수준을 뛰어넘는다. 가볍고 산뜻한 글, 감성적인 이야기를 하다가, 갑자기 깊고 심오한 내용을 현학적인 문체로 늘어놓기도 한다. 읽다 중간중간 하늘을 보고 그 의미를 되새길 정도였다. 그냥 내공으로 쓴 책이 아니다. 모두가 저자가 되는 세상이지만, 전문적으로 글을 쓰는 사람은 다르구나, 고개를 숙이게 하는 내공이었다.



이상


저자는 이상한 글을 고친다. 그리고 교정에 대해 이렇게 정의한다.


모든 문장은 이상합니다. 모든 사람이 다 이상한 것처럼 말이죠. 제가 하는 일은 다만 그 이상한 문장들이 규칙적으로 일관되게 이상하도록 다듬는 것일 뿐, 그걸 정상으로 되돌리는 게 아닙니다.


매혹


우리가 글에 매혹되는 이유는 무엇일까. 매혹적인 글의 특성은 무엇일까.


무언가에 매혹된다는 것은 매혹적인 일입니다. 말장난을 하려는 게 아니라, 이런 식의 동어 반복이 아니고는 매혹에 대해 달리 설명할 길이 없어서 그렇습니다.
그러니 만약 문장이 나를 매혹시킨다면 그건 문장 안에 '현재의 나'가 담겨 있지 않기 때문일 겁니다. 괜스레 심연인 척하지만 실은 허방에 불과한 '나' 대신 주어와 술어가 만드는 거대한 표면이 문장을 이룰 때 매혹을 느끼는 것이죠.


보조


필요없는 부분은 덜어낸다. 없어도 의미가 통하는 부분이 있다면 굳이 길게 쓰지 않는다.


보조 용언, 그러니까 보조 동사나 보조형용사처럼 보조해 줄 낱말을 덧붙일 때는 당연히 이유가 있어야 하고 그 효과를 봐야 한다. 그렇지 않다면 '보조'라고 말할 수 없을 테니 말이다.  차라리 없느니만 못하다면 괜한 짓을 하는 것 아닌가. 한 글자라도 더 썼을 때는 문장 표현이 그만큼 더 정확해지거나 풍부해져야지, 외려 어색해진다면 빼는 게 옳다.


역할


책을 읽으며, 처음에는 문장을 더 간결하게 고쳐야지, 하고 생각했다. 간결하게 고치는 방법을 설명한 책이니까. 그러다 어느 순간, 그런 걱정은 안 하게 되었다. 교정자가 이렇게 열심히 하고 있으니, 나는 내 이야기를 더 재미있게 꺼내는 방법만 생각해도 되겠다, 하고 마음을 놓았다. 교정자가 있는 사실이 든든하다.


저자나 역자, 곧 글쓴이가 확신의 편에 서는 사람이라면, 나 같은 교정자는 의심의 편에 설 수밖에 없는 사람이기 때문이다.



★★★★ 구성이 너무 좋다. 지식도 감성도 깨달음도 다 있다. 저자의 다른 책도 이렇게 좋을까.




좋아하는 출판사1 : 유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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