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매거진 독서머신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이태원댄싱머신 Apr 25. 2020

텃밭 최고다

_조두진 「소농의 공부」

농사라니. 좋아하는 주제는 아니었다. 예전에는 관심을 가진 적도 있었지만, 친환경주의를 얼마전에 폐기했기 때문이다. 인간주의를 선택했고, 자연은 이용의 대상, 착취의 대상으로 받아들인지 얼마 안 되었다. 인간 문제로도 머리가 아파서 자연까지 생각할 여유가 없기 때문이다. 그래서 고민을 하다, 결국엔 읽었다. 유유 출판사 책이었기 때문이다. (표지는 이상하지만 작고 가볍고 재생지 느낌도 좋다는 뜻) 결과는 대만족이었다. 역시 잘 모르는 분야의 책을 읽으면 얻는 게 많다.




작고 서툰 손의 생산방식


저자는 현대 자본주의의 생산방식을 '컨베이어 벨트 생산방식'으로 규정한다. 노동자들은 정해진 일만 하면 되고 퇴근하고 나면 소비만 하면 된다. 생산자와 소비자가 분리된다. '작고 서툰 손의 생산방식'은 다르다. 효율보다 즐거움을 추구한다. 생산자가 소비자가 된다.


'작고 서툰 손의 생산방식'을 생활에 도입하면 액면가치 평가에서는 잡히지 않는 가치항목, 곧 고마움, 미안함, 유대감, 낭만, 배려 같은 인간적 정서를 확보할 수 있다.


마트에 진열되어 있는 토마토는 가격이 매겨진다. 내가 직접 기른 토마토는 액면가치로 따질 수 있을까. 이 둘을 비교하는 것 자체가 불가능하다.



순응


마트에 가보면 사계절 내내 같은 야채를 보게된다. 과일도 꽤 오랜 기간 진열되어 있다. 하지만 이렇게 날씨를 극복하고 만들어진 농산물은 비용을 발생시킨다.


제철 채소를 더 많이 먹고, 비계절 채소를 조금 덜 먹는 행위는 안전하고 건강한 채소를 더 많이 먹는다는 이점과 함께 사람이 제일이라는 인식, 사람은 무엇이든 할 수 있다는 자연 파괴적 사고에서 벗어나 자연에 순응하는 태도이기도 하다.
겨울에도 우리는 비닐하우스에서 재배한 수박을 먹을 수 있다. 그러나 먹을 수 있다고 다 먹을 필요는 없다. 인간이 할 수 있다고 다 행해야 하는 것은 아니니 말이다.


조류독감이 유행하면 닭과 달걀을 덜 먹으면 된다. 구제역이 발생하면 소고기, 돼지고기를 덜 먹으면 된다. 자연을 거스르는 식습관을 고집할 필요없다.



기만


고추, 무, 토마토, 상추 등 다양한 작물 기르기에 대한 이야기를 들을 수 있다. 평소에 접할 일이 없는 분야라 신기하다. 전업농부는 고추에 착색제를 뿌린다. 자연스럽게 빨갛게 될 때까지 기다릴다면 수익성이 떨어지기 때문이다. 초록색일 때 바로바로 따서 착색제 뿌리고 빨갛게 만들어서 유통시켜야 수익이 난다. 이건 농부가 나쁜 걸까. 아니면 비싼 가격의 농산물을 사지 않고 수입산이거나 약을 뿌렸더라도 저렴하고 색만 이쁜 걸 찾는 소비자가 나쁜 걸까. 확실한 건, 서로 기만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소비자는 이왕이면 값이 저렴하고 겉보기도 좋은 고춧가루를 구입하려 하고, 생산자는 겉보기 좋은 고춧가루를 최대한 많이 생산하길 원한다. 소비자와 생산자 사이에 암묵적으로 '쌍방 기만 계약'이 성립하는 것이다.


서로의 욕망은 동시에 충족될 수 없다. 건강한 야채는 비싸다. 우리가 생각하는 것 이상으로 비쌀 수 있다.



선별


빠알간 토마토는 몸에 좋다고 알려져 있다. 맞는 말이다. 하지만 몸에 좋은 토마토는 우리가 먹고 있는 그런 토마토는 아니다. 일단 물을 주지 않아야 하고, 빨갛게 익은 후에 따야 한다. 이런건 상품성이 없다. 크기와 모양이 일정치 않고 쉽게 무르기 때문이다.


그래서 토마토 생산 농가에서는 100퍼센트 연두색 토마토, 그러니까 익지 않은 토마토를 수확해 선별한 뒤 포장하고 출하한다. 심지어 벌겋게 익기 시작한 토마토는 수확한 뒤 크기별로 분류하는 과정에서 골라낸다. 잘 익은 토마토가 불량품으로 분류되는 것이다. 익은 토마토는 세척, 포장, 유통 과정에서 잘 터지고 쉽게 상하기 때문이다.


아이러니다. 잘 익은 토마토는 불량으로 걸러진다니. 왠지 정규 교육 과정에서 소외받는 잘 익은 아이들이 생각난다.



가뭄


토마토에는 물을 주지 않아야 더 맛있다. 상추도 마찬가지다. 대부분의 농작물은 의외로 물을 주지 않아야 고유의 맛과 향을 낸다. 물론 물을 잘 줘야 잘 자란다. 그래서 전업농부는 물을 많이 준다.


물을 자주 주어야 토양의 거름 성분이 녹아서 작물체로 이동하고, 그래야 크고 튼실한 토마토가 열리기 때문이다. 또 평소에 물을 자주 주면 토마토가 물에 일종의 면역력이 생겨 장마가 닥쳐도 열과가 덜 발생한다.


반면에 물을 적게 준 농작물은 더디게 자란다.


가뭄이 심하지 않다면 파종할 때 일부러 물을 주지 않아야 식물체가 뿌리를 깊이 내리고 튼튼해지는 것이다.
세파농법은 다소 힘들게, 또 더디게 자람으로써 작물 고유의 맛을 내고, 햇빛을 더 많이 품도록 하자는 것이다.



오염


농업하면 먼저 떠오르는 이미지가 자연이고, 친환경이다. 하지만 정말 농업이 자연스러운 것일까. 농업이 친환경일까. 지금까지 설명한 내용만 보더라도, 농업은 인위적으로 식물을 키우는 과정이라는 사실을 알 수 있다. 게다가 농업은 환경을 파괴한다.


어떤 면에서 농업은 지구환경을 가장 크게 파괴하는 산업이라고 할 수 있다. 규모가 클수록 더 그렇다. 생산성을 높이기 위해 화학비료와 농약을 많이 사용할수록 더욱 파괴적이다. 만약 누군가 시골의 푸른 논과 밭을 보면서 아름다운 자연환경을 연상한다면 농업의 속성을 모르는 소리라고 할 수 있다. 단위면적당 논과 밭만큼 심하게 오염된 땅도 사실은 드물다.



도구


아담스미스가 찬양한 분업이 지금 우리의 사회를 지배하고 있다. 못을 만드는 세세한 공정, 유통, 소비, 전부 다 분명하게 나뉘어 있다. 기술을 발달시키고 분야별로 전문화해서, 이루말할 수 없을 정도로 편하다. 분업의 장점이다. 분업화의 대상은 사회뿐이 아니다. 우리도 분업화되었다. 빨래를 세탁기에 맡기고, 요리를 배달의민족에게 맡긴 건 오래전 이야기다. 이제 신발도 전문가가 빨아주고, 술 먹은 후 운전도, 선물과 축하도, 감사와 사과도 누군가의 도움을 받는다.


대부분의 한국인은 자신의 직업과 관련한 노동 외에는 거의 어떤 노동도 하지 않는 경향이 강하다. 의사는 진료행위만, 운전수는 운전만, 교사는 학생을 가르치는 일만, 전기 기술자는 오직 전기 분야의 일만 한다.
그러나 그렇게 발전해 오는 동안 우리는 딱 한 가지만 할 줄 아는 사람이 돼 버렸다. 마치 돼지가 좁은 우리에 갇혀 살을 찌우기만 하면 되고, 양계장의 닭이 종일 알만 낳으면 되는 것과 비슷한 상황이 펼쳐진 것이다.


과장이라 느낄 수 있지만, 사실이다. 우리는 한 가지만 할 줄 안다. 누군가가 가져다 사용하기 쉬운 볼트와 너트다. 인적 자원이 되어버리는 것이다.



간접


요즘 인기 있는 방송 프로그램은 형태가 비슷하다. 연예인이 노는 걸 지켜보는 것이다. 우리가 노래를 부르는 대신, 연예인이 노래자랑 대회에서 눈물 흘리는 것을 본다. 우리 아이를 쓰다듬는 대신에, 연예인의 아이가 짜파구리를 먹는 걸 본다. 뭐든 직접 하지 않고, 간접 체험한다.


나아가 대량생산, 대량소비 사회로 진행하는 과정에서 예술과 노동은 분리되기 시작했고, 생활인인 노동자와 전문 예술가의 경계가 뚜렷하게 구분되었다.
일하면서 문화와 예술을 즐기던 한국인은 이제 문화와 예술을 전문가들에게 맡기고, 텔레비전 앞에 앉아 그들이 들려주는 노래와 이야기를 듣는다.
웃음도 위로도 휴식도 비용을 지불하고 구입하는 전문상품이 되었다.



이런 이야기를 하는 책이다.



아. 중요한 이야기를 까먹었다. 이 책은 텃밭 예찬이다. 읽다보면 당장 베란다 있는 집으로 이사가고 싶을 정도로 텃밭을 꾸리고 싶다. (진짜 텃밭이 있는 집은 언감생심이니) 곁가지들이 워낙 재미있다 보니까 책의 주제를 소개할 틈이 없었다. 요약하자면 이렇다.


1. 작고 서툰 손의 생산방식은 자본주의 문제점, 인간 소외를 보완한다. >> 그러니까 텃밭 최고다.
2. 계절을 억지로 극복하는 대량재배는 비용이고 낭비다. >> 그러니까 텃밭 최고다.
3. 소비자는 절대 충족할 수 없는 욕망을 꾸고, 생산자는 속일 수밖에 없다. >> 그러니까 텃밭 최고다.
4. 물을 많이 줘서 억지로 자라게 한 농작물은 자연 고유의 맛이 없다. >> 그러니까 텃밭 최고다.
5. 대규모 농업은 자연을 파괴한다. >> 그러니까 텃밭 최고다.
6. 자기 전문 분야를 제외하고는 할 줄 아는 게 없다. >> 그러니까 텃밭 최고다.
7. 뭐든 부러워만 하고, 직접 하지 않는다. >> 그러니까 텃밭 최고다.


이런 책이다. 그래서 약간 꼰대 느낌이 나기는 한다. 나도 내가 좋아하는 책을 추천할 때는 조금 막무가내가 되니, 그러려니 한다.


★★★★★ 재미있는 책이고, 지식과 깨달음을 주는 책이다. 텃밭 최고다.




좋아하는 출판사1 : 유유


매거진의 이전글 문법 걱정 안 하게 만드는 책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