_나카지마 요시미치 「사람을 미워한다는 것」
이런 사람은 어째서 자신도 타인을 무심코 또는 몹시 사소한 이유로 미워하면서 다른 사람이 자신을 무심코 또는 몹시 사소한 이유로 미워할 수 있다고는 생각하지 않는 걸까?
포기할 수밖에 없다. 그리고 미움 받고 있다는 것을 받아들일 수밖에 없다. 이 잔혹함 속에서 살아가는 수밖에 없다.
나 자신 또한 똑같이 행동하고 있기 때문이다. 매일 불특정 다수의 사람들에게 차가운 시선을 보내고 있다.
이러한 부자연스러움으로 칭칭 얽힌 구조를 사랑으로 착각하고 있는 사람도 많다는 것도 원인이다. 기대에는 그림자처럼 미움이 따라다닌다.
상대의 악의도 선의로 바꿔 해석하려 하고, 모든 사람을 좋아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들에게 이런 생각은 의지라는 더욱 체감적인 것이기 때문에, 이렇게 생각하지 않으면 진정되지 않는다. 내 주변에도 이런 사람이 있고 대체로 순조롭게 세상을 건너고 있지만, 나는 직관적으로 초조함을 느낀다. '미움'이라는 자연스러운 감정을 근원부터 말리는 기만을 느끼기 때문이다.
상대 앞에서 늘 감사의 마음을 잊어서는 안 된다고 경계하는 사이, 그러한 자신의 노예근성 때문에 마음이 개운치 않다.
그는 그렇게 말하면서 왠지 모르게 자신을 깔보고 있는 듯한 친구를 미워하게 되고, 비굴한 자신도 미워하게 되는 것이다. 그리고 그런 그의 불만은 금세 상대가 알아차리게 되어 '그렇게 해줬는데'라는 불만이 쓱 머리를 스친다.
여기까지 생각해보면 그 불합리함에 깜짝 놀라게 된다. 그러나 인간이란 그러한 존재다. 여기서 '자신에게 잘못이 없다면 미움 받을리 없다'는 단순한 논리를 바란다면 상당히 이상해진다. 당신이 미움 받을 때 자신에게 잘못이 없는 경우가 대부분이기 때문이다.
겉으로는 마치 미움 받고 있지 않은 듯 정신 똑바로 차리고 행동해야 한다. 그리고 안 볼 수 있다면 가능한 한 안 보는 것이다. 그럴 수 없다면 여기서부터는 상식이지만 신뢰할 수 있는 동료 또는 상사에게 그 상대와의 차가운 관계를 털어놓고, 언제까지나 영원히 상대와 서로 미워하면서도 대등하게 지내는 기술을 수련해가야 한다.
당신이 당신에 대한 '미움'이 불합리함에도 마찰을 피하려고 상대에게 복종한다면, 어떤 것도 해결되지 않는다.
... '미움'이 인생을 풍요롭게 만드는 역할을 한다 결론짓고, 그 소용돌이 속에서 살아갈 수밖에 없다. 그것이 성숙한 어른이 살아가는 방식이다. 그리고 그 소용돌이 속에 있어도 결코 자기 자신을 향한 비판의 눈이 탁해지지 않을 때, 그것은 도덕적인 삶의 방식이기까지 하다.
이러한 태도에 기초를 둔 인생은 진실을 두려워하며 행복에 빠져 있는 인생보다 불행할지는 몰라도 훨씬 충실하다고는 생각할 수 있다. 강하고 풍요로운 인생이라고 할 수 있을 텐데, 어떠한가?
거기서 나는 굳이 미움을 억압하려 하지 않고, 그 대신에 미움이 생기는 방식을 구체적이고 냉정하게 관찰하려고 결심한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