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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태원댄싱머신 May 05. 2020

그림을 그리자, 남과 다르게

_벤 샨 「예술가의 공부」

여러모로 아쉬운 책이다. 저자가 다루고 있는 주제들이 흥미로워서 샀는데, 아주 비효율적인 책이었다. 읽을 만한 이야기는 아주 조금 있는데, 별 의미 없는 자잘한 예시와 구구절절한 생각들이 가득가득한 질소충전 과자였다.



벤 샨이라는 판화가의 책이다. 저자의 작품이 꽤 많이 보여서 보는 재미가 있었다. 색이 들어가지 않은 판화 작품이다 보니 흑백 종이책에 잘 어울렸다.


말솜씨가 없는 건지 전반적으로 지루하긴 했지만, 다루는 주제는 흥미로웠다.



내면의 비평가


작가가 직접 그림을 그리는 과정에서 떠올렸던 생각을 말한다. 괴물이 나오는 그림이었다. 아마 작가의 설명이 없었다면 그냥 붉은 괴물이구나 했을 거다. 들어보니, 여간 복잡한 과정을 거친 게 아니었다. 일단 화재 사건에서 영감을 받았다. 시카고에서 발생한 유명한 화재 사건과 본인 가족이 직접 겪은 화재 사건이 모티브다. 거기에서 느낀 원초적인 공포는 늑대의 이미지로 바뀌었다. 이러한 상상과 연상의 과정에서, 아이디어를 적극적으로 추진하기도하고 스스로 억제하기도 한다. 내면의 비판자가 등장한다.


한편으로 예술가는 상상하는 자이자 생산하는 자입니다. 동시에 예술가는 비평가이기도 합니다. 맥브라이드가 제아무리 인색한 평을 내려도 관대하게 느껴질 정도로 이 비평가는 아주 가차 없는 기준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릴 그림을 단순히 머릿속으로 떠올려 보는 단계에서 벌써 이 내면의 비평가는 회초리를 휘두르기 시작합니다. 예술가가 어떤 아이디어를 생각해 내고 스스로 빠져들라치면 그는 "안 돼"라고 말합니다.



형식과 내용


요즘에는 내용보다 형식이 중요하게 여겨진다. 의미를 추측하면, 그런 의도 아니라고 발뺌한다. 혹시 정치적인 느낌을 받기라도 하면 손사래를 친다. 저자에 의하면 이 둘은 나눌 수 없다.


저에게 둘은 불가분합니다. 형식이란 형상화입니다. 즉 내용을 물질적인 실체로 바꾸는 것, 내용을 다른 이에게 다가갈 수 있게 만드는 것, 내용에 영속성을 부여하는 것, 그리하여 내용을 인류에게 남기는 것입니다.



거리두기와 감정적 몰입


예술가가 작품을 만들려면 일단 세계와 거리를 두고 관조해야 한다. 그리고 동시에 그 속으로 뛰어들어서 마음껏 느껴야 한다. 모순적으로 느껴지는 이 두가지가 다 필요하다. 이 거리두기와 감정적 몰입을 하다보면 자연스럽게 사회 문제에도 관심을 가지게 된다.


그러므로 예술가는 반드시 인간의 기쁨과 절망에 몰입할 줄 알아야 합니다. 예술 작품에 담아낼 감정의 원천이 바로 거기에 있으니까요. 감정은 언제나 구체적이며 결코 일반화할 수 없는 것으로서, 경험하고 느낀 것에 대한 고유의 어휘를 통해 표현되어야 합니다.



비순응


의미 있는 작품을 그린 위대한 예술가는 순응적이지 않다. 시대의 일반적인 조류를 거스르고 사람들을 불편하게 한다.


재미있는 건, 요즘에는 어느 정도의 일탈은 칭찬받는다는 사실이다. 시대적 조류를 너무 따라가기만 하면 뻔하다는 취급을 받는다.


오늘날 우리는 일종의 상투적인 비순응에 갈채를 보냅니다. 우리 시대의 재미있는 모순이죠. 순응성의 증대를 모두 통탄합니다.



예술가의 공부


예술가가 되고 싶어하는 젊은이들을 위해 저자는 말한다. 자신의 그림을 그리라고.


그리고 무슨 수를 써서라도 자기 의견을 가지세요. 예술에 삶에 정치에 휘말리게 되는 것을 결코 두려워하지 마세요. 지금보다 더 잘 그리는 법을 배우기를 절대 주저하지 마세요. 그리고 어떤 종류의 작업이든, 고귀하든 평범하든, 하는 걸 절대로 겁내지 마세요. 단, 남과 다르게 해야 합니다.



252페이지나 된다. 내용에 비해 두껍다. 재미있는 부분만 남기고 편집한다면 절반 정도의 두께면 충분하다.


★★★★ 질소충전 과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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