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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태원댄싱머신 May 13. 2020

사랑과 혁명

 _스레츠코 호르바트 「사랑의 급진성」

그럴듯한 제목과 산뜻한 표지에 혹했다. 사랑의 급진성이라는 제목이면, 과연 어떤 내용을 이야기하는 걸까, 두근두근하며 책을 읽었는데... 제목이 곧 내용이었다. 급진적인 혁명에서 사랑이 하는 역할에 대한 책이다. 여기서 말하는 혁명은 당연히 공산주의 혁명이다. 예상치 못하게 러시아 혁명, 이란 혁명, 프랑스 혁명에 대한 자질구레한 이야기들을 접하게 되었다. 이해가 안 가서 여러 번 읽었다. 관심 없는 이야기를 심지어 어려운 이론으로 설명하는 책이라니... 덮어버리고 싶은 마음이 몇 번이고 일었지만, 이미 노란 펜으로 밑줄을 열심히 그었기 때문에 다시 팔 수도 없었다. 그냥 계속 걷는 수밖에.



결국 어느 정도 이해했고, 최대한 간단하게 정리했다. 정리하고 보니 약간 뿌듯하기는 하다.



차가운 친밀성


자본주의 시대의 문화를 철학자 에바 일루즈는 이렇게 표현한다. 「차가운 친밀성」 본인의 책 제목이기도 하다. 몸은 섹스하는 육체가 되고, 타인은 섹스 파트너가 된다.


틴더의 공식 웹사이트에 올라와 있는 소개 문구는 <애니 홀>의 문제를 압축적으로 가리킨다. "틴더의 비전은 새로운 관계를 형성하고 기존의 관계를 강화하는 데 걸림돌이 되는 장애물을 제거하는 것입니다." 스무 살 학생 엘리엘 라존은 <르몽드>와의 인터뷰에서 이렇게 밝혔다. "거긴 슈퍼마켓이죠. 가서 쇼핑을 하는 거예요!"
 _스레츠코 호르바트 「사랑의 급진성」


자본주의에서 벗어나고, 자본주의적인 사랑에서 벗어나기 위한 다양한 시도가 있다.



이란의 혁명


호메이니의 혁명은 반동이다. 진보가 아니라 그 반대다. 성과 술과 음악을 금지했다. 일종의 엄숙주의다.



레닌의 혁명


레닌도 성을 경계했다. 혁명 보다 더 중요하게 생각하는 일이 있으면 안 된다. 이란의 혁명과 비슷한 방향이다. 이 재미없는 이란과 레닌 이야기가 책의 절반 이상이다. 헥헥.


여성과 남성의 성적 교환은 사이비 혁명의 찬조하에 이루어지는 부르주아적 교환법칙의 적용에 불과하다.
 _루디 두치케



체 게바라의 혁명


결국 저자는 체 게바라에 동의한다. 사랑과 혁명 중 하나를 선택해야 하는 게 아니라 사랑과 혁명을 선택하는 게 정답이다.


진정한 사랑의 급진성 ㅡ진정한 혁명이 급진성도ㅡ은 어느 쪽의 전제도 억누르거나 지우지 않는 헤겔적 지양에서 찾을 수 있다고 가정할 수 있다. 다시 말하자면 진정한 사랑이 급진성은 혁명의 급진성에서 발견되고, 혁명의 급진성은 진정한 사랑에서 발견된다.
 _스레츠코 호르바트 「사랑의 급진성」



몸의 투쟁


가진 게 몸밖에 없는 혁명가들은 투쟁의 장소로 육체를 활용한다. 대표적인 게 단식 투쟁이다. 수감된 혁명가들은 투쟁을 외치며 굶어죽었다.


우리는 수감되어 있지만, 무장해제된 것은 아니다.
 _마인스 「무기로서의 인간」


감옥에 갇힌 아일랜드 공화국군은 단식투쟁도 진행했지만, '불결투쟁'이라 불리는 시위도 1978년에 일으켰다.


그들은 샤워를 하거나 변기를 사용하기 위해 감방에서 나가는 것을 거부했고 간수들은 감방을 청소할 수 없었다. 그로 인해 권력 역학에 분명한 전환이 일어났다. 여성 수감자들은 청결한 신체 대상이 되는 것을 거부하고 생리혈을 감방에 발랐다. 그들의 육체는 이제 정치적 무기로써 규율과 정상화의 대상이 아닌 저항의 장소로 변했다.
 _스레츠코 호르바트 「사랑의 급진성」



성혁명


몸을 기반으로 하는 투쟁은 어렵고 고통스러운 방식으로만 이루어지지 않았다. 오히려 그 반대였다.


사랑하는 사람에 대해 질투심이 많고 소유적인 태도는 상대를 동료로서 이해하고 그의 자유를 받아들이는 태도로 대체되어야 한다. 질투는 공산주의 도덕이 승인할 수 없는 파괴적인 힘이다.
 _알렉산드라 미하일로브나 콜론타이 「부부 관계 영역 내 공산주의 도덕에 대한 테제」


여성과 남성이 일부일처적인 형태로 관계 맺는 것은 자본주의적 성적교환이다. 당연히 이는 거부의 대상이고, 해방의 대상이다. 독재자가 성을 억압했다면, 혁명가들은 성을 해방하려 했다. 프랑스 코뮌1의 일원이었던 마크 러드는 아래와 같이 말한다.


극단적인 성경험, 모두가 집단 성교, 동성애, 가벼운 성관계를 시도했다. 우리는 과거의 억압에서 벗어나 혁명적 미래로 향하고자 했기 때문이다. ... 섹스는 인간관계에서 가질 수 있는 최고의 친밀함이므로 우리는 일부일처의 부부관계에서가 아니라 모든 구성원들이 그러한 친밀함으로 연결된 정치적 단체를 만들고 있었다.
 _마크 러드 「언더그라운드」



성혁명의 현실


일부일처제에서 벗어나고, 성의 교환에서 벗어나서 다같이 평등한 세상을 만들고 싶다는 취지는 알겠다. 하지만 사람은 바뀌지 않는다. 섹스만 많이 했을 뿐이다. 마크 러드는 회고록에서 고백한다.


나로서는 어떤 공동체에서든 아무 여자에게나 접근할 수 있다는 것은 자유를 의미했다. 그리고 내 대표직 지위가 주는 분위기와 힘 덕분에 나는 거부당하는 일이 거의 없었다. 이로써 내 인생에서 두 번째 환상이 실현되었다. 내가 원하는 아름답고 강한 여성 혁명가들을 거의 모두 가질 수 있었다.
 _마크 러드 「언더그라운드」



★★★★ 이걸 내가 다 읽은 게 혁명이고, 이 책을 안 버린 게 사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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