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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태원댄싱머신 May 14. 2020

벚꽃이 어느새 다 졌다

 _셀린 벨로크 「괴로운 날엔 쇼펜하우어」

※ 주의. 벚꽃이 진지는 한 달이 되어가지만, 글을 쓰기 시작한 것도 한 달이 되어가다 보니, 벚꽃이 막 진 것처럼 호들갑을 떨었습니다.


겨울이 지나고 봄이 왔는지도 모르는 사이 매서운 코로나는 왔다. 코로나가 지나가면서 벚꽃도 어느새 다 졌다. 좋은 시절은 이렇듯 빨리 간다.


책 한 권 들고 카페로 나선다. 「괴로운 날엔 쇼펜하우어」 벚꽃이 지고 나서 읽기 좋은 책이다. 철학자가 나오는 제목, 재미없어 보이는 제목이지만, 표지를 한 번 만져보면 사지 않을 수 없다. 보들보들 매끈매끈 고무 같은 재질의 책이다. 책 표지를 계속 만지며 읽었다.



쇼펜하우어의 사상을 한 권에 요약했다. 번역투(어색하다)에다 철학투(어렵게 꼬았다)여서 쉽게 읽히지는 않았다. 하지만 표지가 이쁘니 계속 읽었다. 고통, 행복, 개체, 순환, 크게 네 가지 이야기가 흥미로웠다.



1. 삶은 고통이다


인생은 전체로 보아도, 부분으로 보아도, 계속되는 기만 같다.
 _아르투어 쇼펜하우어 「의지와 표상으로서의 세계」


쇼펜하우어에 의하면, 삶은 고통이다. 불안과 질병. 가난과 이별, 노후와 직장 등등, 사람마다 형태는 다르겠지만, 고통은 누구에게나 찾아온다. 이러한 고통의 특징은 피할 수 없다는 데 있다.


삶은 그 자체로는 실로 고유한 가치가 없고, 삶이 움직이면서 유지되는 것은 필요와 환상에 의해서다. 그것이 멈추는 순간 실존의 빈곤과 공허는 명백해진다.
 _아르투어 쇼펜하우어 「소품과 부록」


삶에 의미는 없다. 그래서 공허하다.


물론 반론이 있을 수 있다. 삶은 행복한 거 아닌가. 행복을 자주 느끼는 사람도 있다. 하지만 쇼펜하우어에 의하면, 행복은 느끼는 게 아니다.



2. 행복은 생각이다.


행복은 느끼기 어렵다. 행복은 고통의 부재기 때문이다. 고통은 바로 느껴진다. 느끼고 싶지 않아도 피할 수 없다. 고통이 없을 때는 느껴지는 게 없다. 이때는 고통이 없다는 점을 스스로 상기하며 행복하다고 생각해야 한다. 그래서 행복은 느낌이 아니라 생각이다.


행복은 주로 과거에 있거나 미래에 있다. 그때 참 좋았지.. 하며 입맛을 다시거나, 나중에 성공해야지.. 하고 설렌다.


우리의 삶은 얼마나 행복한가! 이것은 행복한 나날들이 불행한 나날들에 자리를 내줄 때만 알 수 있는 것이다. 기쁨이 늘어나는 것에 비례해 그것을 맛보는 능력은 떨어진다. 습관이 된 기쁨은 더 이상 기쁘게 느껴지지 않는다.
 _아르투어 쇼펜하우어 「의지와 표상으로서의 세계」


벚꽃을 보는 순간, 와 행복하다, 외칠 수 있다. 하지만 어느새 벚꽃은 지고 없다. 벚꽃의 행복은 '그때 참 좋았지'가 된다.



3. 개체는 착각이다.


우리는 세계를 바라볼 때, 공간과 시간 그리고 인과적으로 판단한다. 벚꽃과 바람이 있는 공간이 있다. 벚꽃이 피는 시기가 된다. 바람이 불면 벚꽃이 떨어진다. 이게 우리가 생각하는 방식이다. 그래서 벚꽃이 피면 좋아하고 지면 아쉬워한다.


쇼펜하우어에 의하면, 이는 눈에 보이는 형상일 뿐이다. 자연은 그대로 존재하고 있다. 시간과 공간은 인간이 세상을 보는 관점일 뿐이다. 자연은, 우주라는 공간에 영원이라는 시간에 존재한다.


선적인 시간으로부터 구원된 세계를 보는 것, 그 세계에 모든 것이 여러 가능성 형태로 현존하는 것, 이것이 우리는 시간의 압력으로부터 해방시킨다.
 _셀린 벨로크 「괴로운 날엔 쇼펜하우어」


나도 마찬가지다. 세계와 동떨어진 내가 있다는 것은 착각이다. 시간과 공간이라는 제약을 걷어치우면, 나와 타인의 경계선도 사라진다.



4. 자연은 순환이다.


벚꽃은 지고 다시 피어난다. 사람은 죽고 다시 태어난다. 자연에서 죽음은 아무것도 아니다.


아, 만물의 어머니가 자신들을 어떤 보호 장치도 없이 위험천만한 곳으로 내던져도 별로 걱정하지 않는 것은 아마 안심하는 것이 있어서일 것이다. 그렇게 떨어져도 어차피 자기 품으로 떨어지는 것이니 말이다. 떨어진 곳이 곧 피난처요, 그런 낙하는 꼭 장난 같기 때문이다.
 _아르투어 쇼펜하우어 「의지와 표상으로서의 세계」


지는 벚꽃과 새로 피는 벚꽃이 같다면, 죽는 나와 새로 태어나는 타인도 같다. 개별성은 아무것도 아니다.


죽음은 개별성의 상실이자 새로운 개별성의 획득이다. 인간에게 죽음은 자기 고유 의지가 배제된 방향에서 작동되는 변화된 개별성이다.
 _아르투어 쇼펜하우어 「의지와 표상으로서의 세계」


우리는 바닥에 떨어진 벚꽃이다. 시간이 흘러간 것을 아쉬워하고, 하필 하수도에 떨어졌다고 분노한다. 새로 벚꽃이 필 거라고, 걱정하지 말라고, 달래도 마음이 편치않다.


삶은 어차피 하수도고, 다시 벚꽃은 필 거라고 쇼펜하우어는 말한다.



재미있게 읽었다. 역시 원서보다는 이렇게 누군가 쉽게 설명해준 게 좋다. 여러 철학 개념을 풀어설명하거나, 여러 철학자들의 이야기를 모아 놓은 책은 종종 읽었다. 이렇게 한 철학자에 대해 한 권을 꽉 채운 책을 읽은 건 오랜만이다.


★★★★★ 다 읽고 나니, 쇼펜하우어가 조금 좋아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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