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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태원댄싱머신 May 16. 2020

책을 사면 기분이 좋아진다

_정지혜 「사적인 서점이지만 공공연하게」

오늘은 비가 많이 왔다. 비 오는 날에 압구정에 나온 게 화가 났다. 날씨가 좋은 것도 아니고, 놀러 온 것도 아니고, 일 때문에 압구정이라니. 분노를 참을 수 없어 압구정역 근처 블루보틀에 들어갔다. 성수동에만 있는 줄 알았는데, 압구정에도 있네. 오늘 가지고 나온 책은 「사적인 서점이지만 공공연하게」다. 「사적인 서점」을 운영하던 주인이 썼다. 상담을 하고 나서 책을 처방해준다는, 약국 스타일의 서점. 예전부터 들어본 적 있는데, 특이해서 기억에 남았다. 마침 얼마 전에 서점 공간을 계약해서 더 집중해서 읽었다. 코로나 사태가 끝나가는 줄 알고 계약한 건데, 이태원에서 춤바람이라니ㅠ 이태원댄싱머신으로서 눈치가 보인다.



책의 앞부분은 서점을 하기 전 망설이는 순간을 다룬다. 재미없다. 전전긍긍하는 내용이니 슥슥 넘겼다. 서점을 열기 시작하면서 흥미진진해진다.



수익


서점을 열 예정이라 그런지 아무래도 수익 부분이 가장 관심이 갔다. 저자의 계산은 아주 간단했다. (숫자는 조금 다르다.) 책 한권을 팔아서 3000원 정도 수익이 남는다고 했을 때, 월세와 관리비 플러스 인건비를 하려면 200만원은 벌어야 한다. 그러면 한달에 600권은 팔아야 한다. 매일 20권을 팔아야 먹고살 수 있는 거다. 동네 책방에 가본 사람은 알 거다. 책을 사는 사람이 정말 없다는 걸. 보통 동네 서점에 들어가면, 내가 유일한 손님이다. 만약 내가 책을 산다면, 그게 유일한 매상이다. 안타깝지만 대부분 그렇다. 그래서 동네책방에 그렇게 많이 생기고 대부분 얼마 안가 문을 닫는가 보다.


저자는 그래서 예약제로 운영한다. 사람들이 찾아와서 책을 사는 게 아니라, 미리 신청한 사람만 방문할 수 있고 주인과 한 시간 상담한다. 상담이 끝나면 처방전처럼 책 한 권과 편지를 보내주는 방식이다. 소문이 나서 그런지, 두 달치 예약이 바로바로 차버리는 바람에 월세는 해결되었다고 한다.



아이디어


일본의 서점을 돌아다니며 아이디어를 많이 얻었다고 한다. 나도 몇 가지는 따라해보고 싶다. 일종의 블라인드북이다. 책이 포장되어 있는데, 날짜만 쓰여있다. 저자의 생일이다. 자신과 생일이 같은 저자의 책을 읽을 수도 있고, 생일 선물 하기에도 좋다. 증상만 적혀 있는 경우도 있다. 어떤 증상이면 이 책을 읽으면 되는지 봉투에 적혀 있다. 책의 어떤 구절이 증상을 완화시키는지는 모르겠지만, 일단 소비는 도움이 된다. 블루보틀 드립 커피를 맛도 모르고 호로록 마시는데, 분노가 가라앉는다.


책싸개는 꼭 하고 싶다. 사실 나 혼자 생각한 거라고 착각했었는데, 역시 독창적인 건 없나보다. 집에 있는 책 일부는 따로 만든 책 커버로 쌓여있다. 책 표지가 내 취향이 아니어서 덮을 수도 있지만, 통일성을 주기에도 좋았다. 그러고 보니, 일본 서점에서 에쿠니 가오리 책을 샀을 때도 책싸개로 싸줬던 기억이 있다. 「사적인 서점」에서도 독특한 디자인의 책싸개를 만들어서 싸준다. 구매자에게 신기한 추억이 될 것 같다.



걱정


책을 만드는 게 직업이었던 저자였고, 한동안 서점에서 일했고, 결국에는 서점을 차린 저자다. 책과 관련해서는 어학연수에 봉사활동, 인턴까지 갖춘 스펙이지만, 자신이 책을 추천해줘도 되는지, 누가 욕하지는 않을지 걱정되었다고 한다. 눈치를 보게 되고, 어려워 보이는 책도 슬쩍 진열해놓았다고 한다. 공감이 간다. 숨은 고수들이 천지인 세상이니, 흥 하고 비웃을 수 있는 사람들도 널렸을 거다.



경쟁


완전한 도서정가제가 이루어지지 않았기 때문에, 인터넷 서점은 10% 할인을 여전히 해주고 있다. 동네서점은 비싸게 들여오기 때문에 세일이 쉽지 않다. 경쟁이 안된다.


아마존과 경쟁할 수는 없어요. ... 우리가 같은 방식으로 생각한다면 매번 지겠죠. 가격이나 배송으로는 경쟁할 수 없으니까요. 우리는 완전히 다른 선택지가 되어야 합니다.
 _데이비드 색스 「아날로그의 반격」


완전히 다른 선택지가 되어야 한다. 아늑한 공간도, 흔치 않은 책싸개도, 열정적인 주인도 온라인 서점에는 없는 결을 동네 서점에 만들어 준다.



열정


힘들다는 이야기로 넘쳐나는 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저자는 서점을 하고 싶어한다. 좋아하는 책을 다른 사람에게도 맛보여 주고 싶기 때문이다. 어떤 느낌인지 알 것 같다.


이게 나였다. 무언가에 푹 빠지면 그걸 다른 사람에게도 전해 주고 싶어서 발을 동동 구르는 사람. 그 열정이 나의 가장 큰 재산이었다.
 _정지혜 「사적인 서점이지만 공공연하게」


책을 읽고 독후감을 쓰고 독서모임을 하는 것도 비슷하다. 절반은 '내가 이 책 읽었다'는 자랑이지만, 나머지는 '너도 이걸 느껴봐'다. 서점을 여는 이유도 비슷하다.



압구정 블루보틀을 나와 걸었다. 가로수길이 가까우니 산책 삼아서 걸었다. 비도 오고 우산도 들어야 했지만, 카페 구경이나 하자고 걸었다. 보기만 해도 흐뭇한, 들어가지 않아도 기분이 좋아지는 카페와 공간들이 많다. 알라딘 가로수길점(중고서점)에 들어가서 책을 쓸어담았다. 역시 소비는 기분전환이 된다.



★★★★★ 이렇게 특이한 서점이 살아남아야 한다




좋아하는 출판사1 : 유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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