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매거진 독서머신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이태원댄싱머신 Jul 30. 2020

우리가 추구해야 할 피로

 _한병철 「피로사회」

질병을 기준으로 시대를 나누고, 근대를 면역학적 시대로, 현대는 신경증적 시대로 나누는 책이다. 신경증적 시대는 긍정과잉의 사회, 성과사회, 피로사회로 부르기도 한다. (시작하자 마자 어려운 이야기 죄송.) 처음에는 이러한 분류 체계에 깜짝 놀랐다. 여러번 읽고 이제 조금 익숙해지니 해결방법에 눈이 간다.



제(현상)를 보는 방식이 해결방법을 결정한다. 누군가 서울대에 갔다고 하자. 오답노트를 작성하고 긍정적 마인드로 체력관리 하면서 국영수 위주로 성취감을 느끼며 공부했기 때문에 서울대에 간 거라고 생각하는 사람이 있을 수 있다. 서울대에 가고 싶다면 이렇게 하면 된다, 라는 결론이 나온다. 개인의 관점에서 바라본다. 어려운 말로 하면 실존주의다. 다른 관점도 있다. 서울대생의 대부분이 수도권 출신, 그중에서도 대부분이 서울 팔학군 출신이다. 부모님은 중산층 이상 전문직 혹은 대기업 임원이다. 이건 사실상 계급의 대물림이고, 경제적 자본이 문화적 자본을 재생산하는 일이다. 사회문제로 바라본다. 어려운 말로 하면 구조주의다.


피로사회라는 제목에서 알 수 있듯이, 한병철은 사회와 구조를 이야기한다. 우리는 긍정이 과잉인 사회를 살고 있고 스스로가 스스로에게 채찍질하는, 스스로 사장이며 스스로 사원임을 강요하는 사회에 살고 있기 때문에 피로한 것이다.


그렇다면 사회를 바꿔야 하는 게 아닐까? 마르크스는 그래서 노동자들이 들고 일어나야 한다고 말한다. 우석훈은 그래서 토익책을 내려놓고 짱돌을 들자고 말한다. 하지만 한병철은 다시 개인적인 문제로 돌아간다.



멈추라는 이야기를 하지 않는 사회에서 우리는 달리고 있다. 그래서 필연적으로 느끼는 피로를 분열적인 피로라고 부른다. 피곤하면 누구를 이해해주고 싶은 마음도 안 생긴다. 혐오 감정을 가지는 사람들도 대부분 여유 없이 힘들게 살아가는 사람들이다. 그렇게 여유없는 사람들은 분열된다.


한병철을 새로운 피로를 넌지시 제시한다. 이는 근본적인 피로, 우리 피로, 눈 밝은 피로, 깊은 피로로 불린다. 내가 피곤하니까, 너도 피곤하겠지. 아프냐, 나도 아프다, 의 피로다. 다른 사람을 연민의 감정으로 본다면, 혐오 감정도 어느새 사라지고, 다시 우리가 될 수 있을 것이다.


한병철은 깊은 피로로 가자거나, 눈밝은 피로로 전환해야 한다는 말을 하지는 않는다. 그냥 제시만 한다. 대신, 사색의 중요성, 분노와 멈춤의 중요성은 강조한다. 그렇다면 우리의 몫이라는 건가. 사색하고 분노하고 중단하면서 피로사회에서의 분열적인 피로를 연민의 피로로 바꾸는 건 개인이 알아서 할 일로 보인다.


사회의 문제를 개인의 문제로 환원하는 것일까? 자기계발서의 한계가 바로 이 부분이다. 빈부격차라는 사회적 문제를 그대로 두고, 열심히 하면 너도 부자가 될 수 있다, 는 헛된 희망만 심어준다. 한정적인 자원과 무제한의 욕망이 만나면 결과는 뻔하다. 소수가 대부분의 자원을 가지고, 다수는 좌절해서 자기계발서나 읽고 있다.


하지만 한병철의 제안은 조금 달라 보인다. 개인이 각자 열심히 하면 모두 성공할 수 있다는 이지성 스타일의 허무맹랑한 주장이 아니다. 우리의 피로함은 피로사회라는 구조에서 나온 것이다. 하지만 그 구조를 이루는 것은 바로 우리의 욕망이다. 지배자가 되고 싶은 피지배자, 긍정만 찾는 긍정 중독자, 모두 우리 욕망에서 비롯한 것이다. 그렇다면 결국 다시 생각하는 것도 멈추는 것도 우리 개개인에서 시작할 수밖에 없다. 그게 이 책과 자기계발서의 차이점이다.



저자는 간단히 이론만 제시하고 싶었다고 한다. 그래서 이론을 읽고 난 후의 고민은 우리의 숙제로 남는다. 잘 할 수 있을까. 내가 멈추고 중단해서, 다른 삶을 살 수 있을까. 다른 삶을 사는 공동체를 만들어 낼 수 있을까.


그러다 칸트가 생각났다.


자기혐오에 빠지지 않고 진심으로 즐길 수 있는 한 때는 일을 마친 후의 휴식이다.
 _임마누엘 칸트 「인간학」


만족은 피로에서 나온다. 열심히 이태원을 쏘다니면서 맛있는 거 먹고 쇼핑하고 들썩들썩 난리브루스를 춰도 피로해지지 않는다면, 만족감도 느낄 수 없다. 피곤하지 않다면, 몇날 며칠을 쏘다녀도 충분히 놀았다는 생각은 들지 않을 것이다. 열심히 일하고 노곤한 몸을 이끌고 마시는 맥주, 등산하고 나서 마시는 막걸리, 그게 우리가 추구해야 할 피로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