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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태원댄싱머신 May 23. 2019

낭비는 경기에 좋다

한 때 화환을 재활용한다는 기사가 신문의 여러 면을 장식한 적이 있었다. 새 꽃인 줄 알았는데 재사용한 것이었다고 분통을 터뜨리는 소비자들의 인터뷰도 함께 실려있었다. 올바른 화환 문화를 만들기 위해서, 살 때는 꼭 재활용이 아닌지 물어보라는 충고도 덧붙였다.



그런데 그런 기사를 보며 나는 조금 다른 생각을 했다. 며칠만 사용하는 화한을 새꽃으로 만들면 낭비가 아닌가?


전시회를 하며 화환을 받은 적이 있었다. 받았을 때는 너무 기뻤고, 자랑하고 싶어서 안달이 났었다. 하지만 전시가 끝나고 그 화환을 해체하는 것은 쉽지 않은 일이었다.


화환 가게에서 새 꽃으로 만든 고오급 화환과 재사용하는 저렴한 화환을 다른 가격에 내놓고, 고객에게 선택하게 하는 것은 어떨까. 그러면 분명 적지 않은 사람들이 저렴하면서 낭비도 줄이는 재사용 화환을 선택할 거라고 생각한다. 고객의 선택권을 보장한다는 측면에서도 바람직하다. 만일 다 쓰고 나서 수거까지 해간다면 땡큐다. (철사부터 잎사귀까지 전부 해체한 다음에도 사람 키 만한 나무 지지대가 남는다. 쓰레기 봉투에는 당연히 들어가지 않는다.)


생각이 여기까지 이르러서 '역시 나는 뛰어나다' 하며 자만하고 있었는데, 역시 새로운 생각이란 없나 보다. 실제로 실행에 옮긴 사장님에 대한 이야기를 신문에서 봤다. 그런데 사기 혐의로 고소를 당했고, 다행히도 무죄 판결이 났다는 기사였다.


A씨는 새 근조 화환과 재활용 근조 화환을 구분해 가격을 싸게 판매했고, 구매자 상당수가 재활용 사실을 알고도 저렴한 가격에 끌려 재활용 근조 화환을 선택한 것으로 알려졌다.
성 부장판사는 "피고인에게 신의칙*에 비춰 재활용 화환 제작·판매 사실을 고지할 법률상 의무가 인정된다고 보기 어렵고, 피고인이 피해자들을 속였다는 점도 인정할 만한 증거가 없다"고 무죄 선고 이유를 설명했다.
 _연합뉴스 「장례식장 근조 화환 재활용 잇단 '무죄'…화훼업계 '울상'」 2016-12-03 기사

제주지법의 판결이다. 역시 제주도는 남달라.


*신의칙 : 신의성실의 원칙이다.


재활용을 해서 낭비를 줄이면, 화훼업계는 울상이 된다. 쉽게 해결할 수 없는 아이러니다. 낭비가 줄면 경기는 안 좋아진다.


하지만 경기 생각 안하고 낭비 줄일 생각이나 하고 앉아 있는, 하룻강아지들이 하나둘 사고를 치기 시작했다. 스웨덴의 '카르마'라는 어플은 남은 음식을 소비자에게 저렴하게 판매한다. 근처의 식당에 남는 음식이 있다면 어플로 확인해서 구입할 수 있다.


카르마의 사용법은 간단하다. 소비자가 앱을 깔아두면 스마트폰의 위성항법장치(GPS) 기능을 이용해 이용자 근처의 레스토랑에서 살 수 있는 잉여 식품에 관한 정보를 푸시 알람을 통해 받을 수 있게 된다. 
만약 구입을 원하는 식품이나 메뉴가 있으면 앱으로 간단히 결제한 후 해당 숍에 직접 들러 음식을 가져가면 된다. 이때 음식 값은 무조건 정상가의 절반 이하로 책정된다. 이 때문에 소비자들의 가격 만족도가 높은 편이다. 업체들도 재고를 줄일 수 있어 서로에게 득이 되는 구조다. 
카르마에 등록한 업체들은 특정 시간대에 판매를 개시하곤 한다. 카페와 레스토랑들은 대개 오전 10시 이후에 그날 아침 식사 중 남은 음식을 판매한다. 오후 2시 이후엔 점심 장사로 준비하다가 남은 식사를 판매한다. 제과점들은 전날 팔지 못한 빵을 이른 아침부터 매우 저렴한 가격에 내놓고 있다. 
 _한국경제매거진 「남은 음식과 녹색 소비자, ‘앱’으로 만나다」 2018-08-08 기사


남은 음식을 파는 것은 아주 경제적인 것 같다.


쌀 문화는 역시 좋아, 하고 고개를 끄덕이며 두 입, 세 입 잇따라 먹었다. 그리고 뼈에 붙은 고기를 입으로 가져가려고 할 때였다.
"잠깐!" 갑자기 외치는 소리가 들렸다.
"그건 먹다 남은 음식이에요."
더듬거리는 영어가 이어졌다. 자세히 보니 고기에는 분명 베어 문 자국이 있었다. 밥도 이미 누군가의 오른손에 짓눌린 듯했다. 선향은 썩은 냄새를 없애려고 피운 것이다. ...
"다카에는 부자들이 남긴 음식을 파는 시장이 있어요. 음식 찌꺼기 시장이죠. 도매상, 소매상도 있어요."
 _헨미 요 「먹는 인간」


방글라데시에서 빈민들이 주로 이용한다는 시장이다. 여기는 정말로 먹다 남긴 음식들을 되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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