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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태원댄싱머신 Jan 11. 2021

개운한 슬픔

 _김중혁 「나는 농담이다」

스탠딩 코미디언이 주인공이다. 공연하는 장면이 많이 나온다. 당연한 이야기지만, 공연은 전부 농담으로 채워진다.


사람들은 컴퓨터를 고치는 일이 시간이 많이 걸린다고 생각하지만 사실은 간단하거든요. 확실한 방법 하나 알려 드릴까요? 껐다가 다시 켜 보세요. 절반은 그걸로 고칠 수 있어요. 사람도 마찬가지입니다. 애인과 헤어져 괴로워하는 친구가 있으면 불러낸 다음 몰래 수면제를 먹여요.
 _김중혁 「나는 농담이다」


공연하는 장면만큼 많이 나오는 부분이 우주에서 메시지를 보내는 상황이다.


관제 센터, 들리나?
고요하다.
사령선은 시야에서 사라졌다. 계기판도 먹통이 됐고, 수신되는 메시지도 없다. 기내 산소량은 25퍼센트. 수동 제어하고 있지만 방향을 확인할 수 없다.
 _김중혁 「나는 농담이다」


어머니가 돌아가시면서 남긴 편지가 있다. 이 편지를 통해서, 코미디언과 우주인은 만난다.


산에 오르면 너하고 조금 가까워진 기분이 든다. 거기에 가면 하늘이 좀 더 잘 보이고, 하늘을 자주 올려 보게 된다. 산에 올랐다가 다시 내려오면, 내려오는 길에서는 늘 같은 생각을 한다. 과거로 돌아갈 수 있다면, 갔던 길을 되돌아서 내려올 수 있다면, 이런 생각이다. 같은 생각을 자꾸 해도 풀리지 않는 문제니까 나는 계속 같은 생각을 하면서 산을 내려온다. 어떻게 너와 헤어질 생각을 했을까. 처음부터 너를 꼭 붙들고 있어야 했던 건데, 산을 내려오면서 나는 자꾸만 옛날 생각을 한다.
 _김중혁 「나는 농담이다」




농담은 기쁨보다는 슬픔에 어울린다. 기쁨은 농담이 필요없다. 짠 음식을 먹고 나면 물을 찾는 것처럼, 우리는 슬픔 이후에 농담을 찾는다.


주인공은 농담이 직업이다. 삶이 슬픔이기 때문이다. 농담의 형식을 빌려, 아버지 이야기도 하고 어머니 이야기도 한다. 그렇게 삶을 살아간다.



코미디는 송우영의 일기장 같은 것이었다. 코미디 대본에다 마음을 적었다. 격렬하면 격렬한 대로, 차가우면 차가운대로 솔직하게 적었고 거기에서 최대한 웃음을 쥐어짜려고 노력했다. 코미디에서 가장 많이 써먹은 소재는 어린 시절과 어머니였을 것이다.
 _김중혁 「나는 농담이다」


소설은 미스터리 형식을 띤다. 어머니의 유품을 발견하고, 사람을 찾아가고, 물을 찾듯 새로운 슬픔을 만난다. 슬픔을 코디미로 만들고 이야기한다. 그걸 반복한다. 우주에 무언가를 쏘아올리듯이, 슬픔을 쏘아올리고 받아들이는 주인공을 보며, 어느새 우리도 응원을 하게 된다. 슬픔을 함께 받아들이게 된다.


엄마는 그날 밤에 돌아왔어요. 돌아와서는 저하고 제대로 한판 붙었죠. 엄마가 두 컵 정도 눈물을 흘리고 나더니, 예, 당연히 와인잔은 아니었고, 위스키 스트레이트잔 정도였죠.
 _김중혁 「나는 농담이다」



슬픈 이야기 맞다. 가슴이 먹먹하기는 한데 그래도 개운한 느낌. 넘어졌지만, 이제 일어나고 있는 듯한 그런 기분으로 책을 덮었다.


★★★★ 개운한 슬픔, 그게 농담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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